차세대 자동차시대 삼성은 갑일까, 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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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와 IT의 융합시대다. 삼성이 자동차 부품사업을 그룹 미래동력으로 준비 중이다. 삼성은 이미 연료전지 부문에서 숨은 강자다. 그리고 자율주행차가 개발될수록 IT기술을 활용한 부품의 비중은 더욱 커진다. 삼성이 차량 부품사로 만족할지, 완성차로 도약할지 세간의 주목을 받는 이유다.
삼성전자가 2014년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 전시회에서 BMW 전기차와 스마트 워치의 연동 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 전병역 기자


흔히 자동차는 ‘산업의 꽃’이라고들 말한다. 한국 기업 중에 최고로 삼성을 꼽지만 주력인 IT(정보기술)로는 맏형 노릇하기에 체면이 덜 선다. 반면 현대자동차그룹이 매출 및 이익은 적어도 어깨에 힘을 주는 이유는 고용 창출을 비롯한 후방효과가 가장 큰 자동차사업 덕분이다. 이제 세상이 바뀌고 있다. 삼성과 현대차, 아니 IT와 자동차가 맞부딪치는 국면에 들어섰다. 더 정확히는 두 진영의 융합이다.

2007년 애플 아이폰으로 불붙은 스마트화는 여러 산업 영역을 허물어 왔다. IT를 끌어안은 차세대 자동차는 명실상부한 산업의 ‘꽃 중의 꽃’이 될 것이다. 거꾸로 차는 IT 기기에 가깝게 된다. 과격하게 표현하자면 ‘스마트폰에 모터와 바퀴를 달면 자동차’가 되는 세상이 성큼 다가왔다. 차와 IT. 둘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이 오묘한 관계는 다시 삼성, LG로 대표되는 전자업체와 현대차가 이끄는 자동차업체의 자존심을 건 한판 승부로 넘어가는 중이다.

한 꺼풀 들춰보면 더 짜릿한 볼거리가 생겼다. 경제 거의 전반에서 사실상 갑 노릇을 해온 삼성이 자동차사업에서는 진정한 ‘을’로서 변화에 잘 적응할지가 관건이다. 거꾸로 삼성(물론 LG도)이 차세대 자동차 시대에도 ‘갑 같은 을’ 또는 ‘사실상 갑’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굳이 완성차를 만들지 않더라도 말이다. 여기에 새 도약을 노리는 삼성의 고민이 녹아 있다.



삼성 배터리, 모터 등 핵심 기술력 수준급

삼성이 자동차 부품사업을 그룹의 새 먹거리로 공식화했다. 그동안 배터리를 만드는 삼성SDI 등을 통해 자동차용 전자장비 사업을 해 왔는데, 지난 12월 삼성전자의 부사장급 팀장 한 명을 수장으로 선임하면서 본격적으로 닻을 올렸다. 기존 업계는 이를 선전포고처럼 받아들였다. 비슷한 사업을 이미 수년간 해오며 궤도에 접어든 LG는 물론 터줏대감인 현대차가 안테나를 곧추세웠다. 삼성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아직 차량 전장부품사업팀장 발령을 낸 것 이외에 아무것도 정해진 건 없는데, 세간에서 너무 확대해석한다”며 볼멘소리를 해댄다. 그러나 ‘준비의 삼성’을 감안하면 연막작전일 가능성이 짙다. 내막을 보면 삼성에서 그동안 준비한 것이나 잠재력이 상당하다는 평이 많다.

차세대 차량은 크게 두 가지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폭스바겐 디젤게이트 이후 주목받는 전기차(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 포함), 수소연료전지차 같은 저공해 차로의 전환이다. 다른 하나는 기존 석유엔진차까지 아울러 자율주행 기능이 대폭 적용된 스마트카 쪽이다. 삼성은 전자는 많이 준비돼 있고, IT와의 접목이 중요한 후자는 가능성이 높다는 평을 듣는다. 이 때문에 삼성의 자동차사업 능력을 만만히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연료전지 기술은 삼성이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전기차, 연료전지차의 핵심 부품은 배터리와 전동모터다. 특히 전지 기술이 주목된다.

삼성SDI를 비롯한 삼성 기업들의 연료전지 특허 수가 세계 4위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 분야만 보면 현대차(9위)보다도 높다. 컨설팅업체 헤슬린 로덴버그 패어리&메시티P.C 조사에서 2002~2014년 사이 ‘연료전지 에너지 특허 보유자’ 톱 10 가운데 GM이 831건으로 선두이고, 혼다(700건), 도요타(631건)에 이어 삼성이 495건으로 네 번째다. 현대차는 141건으로 9번째에 올랐다. 삼성은 연료전지 특허를 2010~11년에 집중적으로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가 5년간 미국에서 낸 특허의 3분의 2는 전기차나 전장부품과 관련한 것이다.

그런데 삼성은 확보한 특허는 많지만 실제 적용에는 아직 소극적이다. 지적재산권 전문가그룹 HGF의 2015년 보고서를 보면, 삼성은 2010년에 연료전지 특허 적용 수에서 도요타, 혼다, 파나소닉, 도시바, 닛산, GM에 이어 7위였다. 2012년은 현대차가 4위로 올라섰을 때도 삼성은 7위를 지켰다. 2년 뒤에는 삼성은 톱10 밖으로 밀렸다. 보고서는 특히 “삼성은 톱10 특허 보유자인데도 국제특허로의 활용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져서 국가별로 한국의 순위가 낮다는 건 흥미롭다”고 평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삼성은 연료전지 특허가 많은데도 아직 잘 적용하지 않아 의아스럽다는 뜻이다.

이는 달리 해석하면 당연하다. 아직 전기차 같은 새 시장이 성숙되지도 않은 상태여서 삼성은 세계적 특허를 보유한 채 때를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 된다. 이제 삼성이 차 전장사업 강화로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 같다. 이항구 한국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은 프랑스, 일본에 이어 세계 3위 자동차 배터리 경쟁력을 가진 나라”라며 “삼성SDI, LG화학의 배터리 실력은 최고 수준이어서 차세대 자동차 시대에 준비가 돼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전기 동력차 시대에 배터리를 석유차의 연료탱크에 비유한다면, 모터는 엔진에 해당한다. 삼성이 자동차용 모터 기술력을 얼마나 갖췄는지는 평가하기에 이르다. 대신 최근 상징적인 인사가 있었다. 새해에 삼성전자가 신설하는 전장사업팀 수장에 박종환 부사장이 지난 12월 임명됐다. 박 팀장은 모터 개발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전기 동력차의 엔진인 전동모터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단면으로 볼 만하다. 박 부사장은 삼성전자 생활가전C&M(컴프레서&모터) 팀장으로 세탁기 모터와 에어컨, 냉장고 컴프레서 개발을 맡아 왔다. 게다가 1995년부터 2년 동안 삼성차의 전력담당 실무자로 자동차사업을 경험하기도 했다.

가전과 자동차는 전혀 무관해 보이지만 전기차 시대에는 모터가 연결고리다. 전자업체들은 모터에 대해 많은 노하우를 축적해 왔다. 대표적으로 LG전자는 12월 29일 ‘2세대 스마트 인버터 모터 개발’을 자랑하는 보도자료를 냈다. 1분에 회전수(rpm)가 기존 3만에서 10만까지 늘렸다고 한다. 이것이 더 적은 배터리 사용으로 흡입력은 더 키운 무선청소기를 개발한 비결이다. 단순히 빗대어 보자면, 석유 자동차가 최고 출력이나 최대 토크를 내는 영역은 대체로 분당 회전수 3000~6000대다. 전기차가 의외로 힘이 좋은 이유는 바로 모터에 있다. 제품군은 판이하다지만 전자화될 자동차에서 모터 기술력은 전통 차의 엔진 기술에 비견될 수 있다.

가전업체들이 적용해온 교류~직류 변환장치 인버터도 전기차 등에 쓰이긴 마찬가지다. 전자제품에 가까워진 자동차의 진동, 소음, 효율의 3대 숙제를 푸는 데 삼성, LG 같은 전자업체가 수십년 쌓은 노하우를 낮춰 보기는 어렵다. 현대차 같은 완성차 업체가 들으면 콧방귀나 뀌겠지만, 삼성그룹이 하는 사업을 전기차에 대입하면 거의 완성차에 닿아 있다. 모터는 삼성전자, 배터리는 삼성SDI, 삼성디스플레이는 화면, 삼성전기는 각종 부품을 만든다. 모아서 바퀴만 달면 얼추 전기차가 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삼성이 수년 전부터 차 사업을 준비해온 것으로 보고 있다.




자율주행차 시대, 삼성에겐 큰 기회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곳은 삼성SDI다. 앞서 본 배터리용 연료전지 기술력을 바탕으로 사업을 확장 중이다. 삼성SDI는 그동안 BMW, 피아트-크라이슬러, 포드, 마힌드라 등에 배터리 공급계약을 맺어 왔다. BMW의 전기차 i3와 i8에는 삼성SDI 배터리만 들어간다. 삼성SDI는 2015년 2월 오스트리아의 마그나로부터 전기차용 배터리팩 사업을 인수했다. 회사 측은 “배터리 셀과 모듈뿐 아니라 최종 단계인 팩까지 가치사슬을 완성해 수주 경쟁력을 높였다”고 자평했다. 또 2차전지 핵심 소재인 양극재 생산업체 에스티엠 잔여 지분을 40억원에 사들이면서 100% 자회사로 편입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지난 9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모토쇼에 아우디가 공개한 콘셉트카 이트론(e-tron)의 계기판 등 모든 디스플레이에 AMOLED를 공급했다. 이 회사는 앞 유리창에 정보를 표시해주는 최신형 헤드업 디스플레이(HUD) 같은 차세대 부품을 개발하고 있다.

숨은 강자는 삼성전기다. 이 회사는 자동차용 카메라모듈, MLCC(적층세라믹 콘덴서), 무선충전 부품을 생산하고 있다. 삼성전기는 앞으로 인수·합병(M&A)을 통해 사업을 더욱 확대한다고 밝혔다. 특히 스마트카 시대가 되면 중요해질 카메라, 센서 기능 등을 강화하기로 했다. 예컨대 자율주행차가 되려면 위성항법장치(GPS) 신호도 더 정밀해져야 하지만 지상의 차량이 차선을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차선 감지, 사고 방지를 위한 차량 간격 자동조절 기능 등에 카메라나 센서가 주요 부품이 된다. 삼성전기는 스마트폰 갤럭시S에 공급한 무선충전 모듈도 차량에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가 어떤 영역을 파고들지 구체화된 건 없지만 앞서 본 전동모터, 인버터와 함께 차량용 반도체가 주요 사업분야가 될 것이 확실시된다. 지난 11월 23일(현지시간) 독일 잉골슈타트의 아우디 본사에서 열린 ‘PSCP(프로그레시브 반도체 프로그램)’ 행사에는 김기남 반도체총괄 사장이 참석했다. 삼성은 아우디와 전략적 제휴를 맺어 낸드플래시로 만든 저장장치인 내장형 멀티미디어카드(eMMC)를 공급키로 했다고 밝혔다.

자율주행차에 가까워질수록 IT 기술 접목으로 전장부품은 커지게 되고, 삼성 같은 IT기업에 기회가 더 열린다. 자동차 무선시장만 2018년에 984억 달러, 센서시장은 2015년 221억 달러에서 2020년 352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산업연구원은 전했다. 현재 한국은 자율주행차 경쟁력에서 세계 10위권 밖으로 밀려나 있다. 선두권은 다임러, 아우디, BMW, GM 등의 순서다. 그러나 독일이나 미국 전문가들은 한국이 자동차와 IT산업 경쟁력이 강해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전통의 석유엔진차가 짧은 시간에 차세대 차로 전환되기는 어렵다. 대신 전통차에도 자율주행 기능이 속속 도입되고 있다. 다수 기업은 아예 무인자동차 실험까지 성공시켰다. IT기업 바이두까지 가세할 만큼 한국은 선진업체와의 거리는 멀고 중국과는 가까워졌다.

갤럭시폰의 성장 정체와 수익성 감소로 어려움을 겪는 삼성에 새 성장사업으로서 자동차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특히 기존 차량보다는 차세대 차량 중심으로 새 시장이 형성되는 과도기여서 시장 진입에 부담이 덜한 측면도 있다.

시장이나 정부가 삼성을 주목하는 이유는 단지 현재 기술력이 아닌 미래 가능성이다. 그 근거는 국내 기업 최대 연구개발(R&D) 투자 능력이다. 블룸버그는 삼성이 2015년 141억 달러의 R&D 투자에 나섰다고 전했다. 이는 애플(60억 달러), 구글(98억 달러)은 물론 마이크로소프트(114억 달러)보다 높은 세계 2위 수준이다. 현대차의 투자 여력이 크지 않고, 자율주행차로의 급전환을 대비한다면 IT기업의 역할이 요구된다. 한 차량업체 관계자는 “후발 삼성이 스스로 극복하기 힘든 숙제는 남의 손을 사서 대신 풀 것”이라고 예상했다. 최근 재미를 보는 ‘삼성페이’도 미국 벤처 루프페이를 사들인 것이듯 자율주행 관련 핵심 기술을 M&A할 가능성도 크다. 이는 애플, 구글 등도 마찬가지다.



완성차의 악몽, 부품사로만 남을 것인가

그전에 삼성으로서는 치러야 할 통과의례가 있다. 완성차사업이 남긴 악몽 극복이다. ‘자동차 마니아’로 알려진 이건희 회장의 명으로 1995년 삼성자동차를 세웠으나 2000년 르노에 팔았다. 4조원이 넘는 부채를 내며 IMF 외환위기의 한 원흉이었다는 비난까지 들었다. 삼성에서 ‘자동차사업’은 역린을 건드리는 것으로, 함부러 내뱉을 수 없는 단어다. 그런 삼성이 이제 자동차사업을 한다고 하니 세상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차량 부품사업일 뿐, 완성차는 절대 아니다”라고 손사래를 쳤다.

세계적 IT 공룡인 구글, 애플이 스마트카 시장에 나선 현실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된다. 삼성이 어디까지 사업분야를 확장할지가 가장 관심거리다. 한 차량 전문가는 “삼성이 아무리 기술이나 경험에서 준비가 됐더라도 완성차까지 나가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세계 자동차시장 판도가 급변하면 나중에는 어떻게 할지 봐야 안다”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의결권이 없지만 삼성카드가 지닌 19.9%의 르노삼성차 지분은 늘 주목거리였다.

하지만 장삿속으로 봐도 부품사로 남는 게 훨씬 유리하다는 견해도 만만찮다. LG전자 관계자는 “만약 직접 완성차를 만든다면 부품을 다른 자동차 업체에는 팔기 어렵게 된다”며 “최고 부품을 만들어 세계 여러 완성차 업체와 거래하는 게 더 낫다”고 말했다. 삼성 측도 같은 얘기를 한다.

삼성으로서는 안정적 사업 기반 확보 차원에서 국산 브랜드와 손잡는 게 우선 중요할 수 있다. 이때 내수의 80%를 장악한 현대·기아차와 관계 맺기가 첫 관문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현대차가 LG와는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데 부담이 덜하지만, 삼성의 경우 자칫 ‘범 새끼 키우기’라는 위험성을 의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완성차 도전 전력 때문이다. 또 부품시장을 파고드는 것도 부담이 크다. 현대차는 세계적 부품사인 현대모비스를 거느리고 있다. 여기에도 삼성의 딜레마가 있다. 삼성은 차량 부품사로 크고 싶어도 현대차가 경계한다면 걸림돌이 된다. 일례로 차량 반도체도 현대차는 오트론이란 회사를 세우고 자체 설계력을 키우는 중이다. 반면 삼성전자는 엑시노스8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비롯해 시스템반도체 사업 역량에 자신감을 키웠고, 차량 반도체도 강화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2년 전 모임을 주선해 현대차와 LG가 마주앉았을 때도 비슷한 분위기가 감지됐다. 향후 자동차산업을 놓고 서로 협력할 것을 주문한 자리였다. 한 참석자는 “LG는 적극적인 반면 현대차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시종일관 냉랭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현대차는 차는 자신들의 전문영역이기 때문에 가능한 한 스스로 다 개발하겠다는 쪽이었다. 현대차 관계자는 “배터리와 모터를 단다고 좋은 전기차가 되지 않는 건 자동차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의한다”며 “차량 부품은 가전과 달리 안전성 및 내구성이 한계상황을 넘는 수준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현대차와 삼성·LG의 협력을 주문하고 있다. 앞서 2009년에도 산업부가 나서서 현대의 완성차 노하우와 삼성의 반도체 등 IT 기술력을 더해 시너지를 내달라고 마주앉혔다. 그러나 억지춘향 격인 현대차와 삼성의 동상이몽으로 성과는커녕 신경전만 가열됐다. 산업부는 ‘2016년 스마트카 R&D 전략’ 문건을 통해 “특정 수요 기업에 종속된 국내 시장 생태계 탓에 기업 개발 결과물의 사업화 확산에 한계와 진입장벽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또 “차동차와 IT산업 간 이해 부족 등으로 기존 업체의 체질개선과 기술융합이 어렵다”고 밝혔다. 정부나 전문가의 또 하나 걱정거리는 부품사다. 산업부는 “완성차 업체가 해외 부품을 적용해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으나, 국내 중소·중견 부품업체는 독자 능력이 부족해 자율주행차 시대를 맞아 기반 붕괴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한 재계 임원은 “삼성이 차량 부품사가 된다는 건 현대차를 비롯해 완성차에 ‘을’이 돼야 한다는 뜻”이라며 “삼성이 솔직히 제대로 을이 돼본 적이 있느냐. 이 부분이 아주 흥미롭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을 공급한 을의 자격으로 갑인 애플과 세기의 특허소송까지 벌였다.

정반대의 전망도 나온다. 앞으로 차량이 급속히 IT화하면 현대차의 노하우와 장점이 반감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현대차는 지난 수십년간 노력 끝에 선진업체의 엔진, 변속기 등의 기술을 겨우 따라붙었는데 전기차로 변하면 차별성이 줄어든다. 맥킨지의 2013년 보고서는 자동차 제조원가에서 전장부품 비율은 2010년 35%에서 2030년 50%를 넘을 것으로 예측했다. 차선 감지 같은 새 기술만이 아니라 전통적인 기술도 전자화가 중요하다. 4륜구동의 경우 예전에는 단순히 4바퀴를 굴리는 식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빙판길이나 회전 구간에선 좌우 바퀴, 오르막 내리막에서 앞뒤 바퀴의 힘 배분을 도로 조건에 맞춰 조절해주는 기술로 승패가 나는데, 그 배경에는 IT 기술이 있다.

차세대 차의 핵심인 배터리, 센서, 카메라, 반도체, 디스플레이 같은 기술력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완성차사도 거대 부품사에 끌려가는 처지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이 경우에는 오히려 삼성이 자동차에서도 ‘갑’의 위치에 설 수 있다. 지금도 핵심 부품을 공급하는 보쉬 같은 세계 최대 부품사는 ‘갑 같은 존재’다.

핵심 부품을 세계 수준으로 올려놓은 뒤에는 삼성이 굳이 완성차를 만들지, 말지는 오히려 행복한 고민이 될 것이다. 만에 하나 삼성이 완성차를 만든다면 여론에 떠밀려서일 가능성도 있다. 애플이나 구글이 전기차의 신성 테슬라를 먹는다면 어떤 후폭풍이 미칠까. ‘제발 스마트카가 준비된 삼성이 나서서 완성차로 해외 브랜드와 싸워달라’는 주문이 나올 수 있다. 그 전에 삼성은 절대 먼저 나서기가 힘든 ‘아픈 기억’이 있다.

차세대 자동차 시대에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은 갑이 될까, 을이 될까. ‘역시 삼성이 하니까 다르네’가 될지, 다시 ‘삼성도 자동차는 별 수 없네’가 될지 안팎에서 주시하고 있다.





정의선·구본준·이재용 ‘자동차 신삼국지’


자율주행 기능 강화 등으로 점점 스마트화하면서 전통의 현대차는 물론 정보기술(IT)에 주력해온 삼성, LG까지 자동차사업에 뛰어들었다. 이들 경쟁은 오너들인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46)과 구본준 LG 부회장(65),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48) 간의 미묘한 3각 구도를 그려낸다. 이른바 ‘자동차 신(新)삼국지’다.

차량 전장부품 사업을 선점해온 LG는 최근 삼성의 자동차 부품사업 가세가 주목받자 불편할 법도 하지만 이미 10년 넘게 신성장 동력으로 삼아 키워와서 비교대상이 안 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LG전자는 2013년 차량 전장부품을 전담한 VC사업본부를 신설했다.

LG전자는 차량 텔레매틱스 분야에서 글로벌 시장점유율 30% 이상을 차지하는 업계 1위다. 최근 미국 GM과 차세대 전기차 부품 11종의 공급계약을 맺을 만큼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또 LG는 구글의 자율주행차 프로젝트 협력사로도 선정돼 삼성보다 앞서 있다. 구 부회장은 지난 연말 인사에서 LG그룹 차원의 신성장사업추진단장을 새로 맡았다. 이는 LG전자 차원을 넘어 최대 차량 배터리 업체가 된 LG화학 같은 다른 계열사를 엮어 차량사업을 더 공격적으로 키우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재계에서는 LG가 차량사업을 통해 스마트폰에서 밀린 자존심을 회복하고, 나아가 반도체를 내준 뒤의 수모를 갚을 기회로 살릴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삼성도 삼성SDI 같은 계열사들이 일찍이 준비해 왔지만 본격적으로 나선 것만 보면 돌다리도 두드려본 뒤 따라 건너는 모양새가 됐다. 이른바 삼성이 스마트폰에서도 보인 ‘빠른 추격자(패스트 팔로어)’ 전략이다.

이 부회장이 아버지의 패배를 만회할 수 있을지도 눈길을 끈다. 이 부회장이 속한 삼성전자의 차량 부품은 기존 사업과 연관성이 높아 위험부담이 낮은 쪽이어서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이 부회장은 그동안 BMW·도요타·GM·폭스바겐·포드 등의 최고경영자(CEO)들과 꾸준히 접촉하며 자동차사업에 멍석을 깔아 왔다.

전통의 강자 현대차의 정 부회장은 더 긴장하게 됐다. 현대차는 지난 12월 공개한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 EG900에 국내 처음으로 차선이탈 방지와 차량 간격 조절 기능을 넣으며 자율주행차 가능성을 보여줬다. 현대차는 2018년까지 스마트카, 자율주행 시스템 등의 개발에 2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현대차는 새해 1월 친환경 전용 플랫폼 기반의 첫 하이브리드 모델인 ‘아이오닉’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어 전기, 플러그 인 하이브리드 모델을 새해에 국내외 시장에 차례로 선보이기로 했다.

LG에 이은 삼성의 자동차 부품사업 본격 가세로 기존 현대·기아차와 경쟁하게 되는 데 대해 산업계는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동안 소극적이던 국내 자동차 업계가 전기차, 자율주행차 같은 차세대 자동차 시대로 가속 페달을 밟을 것이기 때문이다. 거대기업 LG, 삼성의 활약은 기존 부품기업들에는 시련이자 기회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국내 경쟁에 국한되지 않고 애플, 구글 같은 IT기업까지 다방면의 미래형 차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부품사까지 아울러 협력과 융합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사업 초반에 현대·기아차는 물론 한국GM, 르노삼성, 쌍용차가 삼성, LG와 어떤 식으로, 어느 만큼 깊이로 손잡을지가 중요해 보인다.
<전병역 기자 junb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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