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북 & 쿡… 출판계 불황 타개 마케팅 진화

글 권재현·사진 김영민 기자

낭독 넘어 공연과 요리 결합도… 성우 연기는 몰입도 높이고

책 밖으로 나온 음식 맛보며 시·청·후각으로 독자와 소통

출판 마케팅이 또 새로운 한 걸음을 내디뎠다. 문자(시각)와 음성(청각)이 어우러진 낭독 콘서트를 넘어 공연과 요리가 결합한 퍼포먼스까지 등장했다. 배우들이 책을 읽어주는 낭독 공연은 몇 차례 있었지만 책 속에 나오는 요리를 관객들이 직접 맛볼 수 있는 ‘쿠킹 클래스’까지 더해진 공연은 처음이다. 도서정가제 시행으로 가격 할인이 어려워진 출판계의 불황 타개 전략이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고 있는 셈이다.

지난 20일 오후 8시 서울 정동 세실극장에선 일본 작가 미야베 미유키의 원작소설을 번역한 <맏물이야기>(북스피어)를 소재로 한 색다른 ‘북콘서트(사진)’가 열렸다. <맏물이야기>는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초봄의 뱅어, 여름의 맏물 가다랑어, 가을의 감 등 계절의 식자재를 기이한 이야기에 버무린 추리물이다. 한 해의 맨 처음에 나는 과일, 푸성귀, 해산물 따위를 일컫는 ‘맏물’이 이야기 곳곳에 배치돼 읽는 이의 입맛을 돋울 뿐 아니라 모든 사건의 실마리가 맏물에서 시작한다는 점이 재미를 더하는 ‘요리 미스터리’ 소설이다.

‘맛’있는 북 & 쿡… 출판계 불황 타개 마케팅 진화

책에 나오는 순뭇국, 감양갱, 유부초밥이 쿠킹 스튜디오 ‘차리다’ 푸드스타일리스트들의 손길을 거쳐 눈앞에 펼쳐지자 관객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추첨을 통해 ‘시식’의 기회를 얻은 관객들은 마치 ‘스타’들과의 악수를 기다리는 팬처럼 들떠 있었다. 책 속에 머물러 있던 ‘음식’은 책 밖으로 나오면서 생명을 얻었다. 한 관객은 “책에서 읽은 음식을 직접 보니 순간 짜릿한 감정이 밀려왔다”며 “이런 느낌일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세실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은 대부분 <맏물이야기>를 읽은 독자들이었다. 북스피어 출판사는 이 책을 구매한 독자들의 신청을 받은 뒤 추첨을 거쳐 200명을 선발했다. 요리 시연 퍼포먼스에 앞서 선보인 낭독 콘서트도 관객들과 하나되는 무대였다. 북텔러리스트로 활동 중인 성우들은 <맏물이야기> 중에서 ‘천냥짜리 가다랑어’ 부분을 낭독 공연 형태로 연기했다. 책을 단순히 읽는데 머무르지 않고 연기를 더해 관객들의 몰입도를 높였다.

대본은 공연에 알맞은 형태로 각색됐다. 그렇게 해서 ‘오디오북’과 ‘연극’ 사이 어딘가쯤 위치하는 무대가 탄생했다. 성우들의 연기는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았다. 연극과 달리 대본을 손에 쥔 채 연기하는 성우들의 모습은 단원들이 악보를 대부분 외웠으면서도 펼쳐들고 연주하는 합창 공연을 떠올리게 했다.

이날 공연은 출판계의 ‘재주꾼’으로 통하는 북스피어 김홍민 대표(39)의 기획력과 인맥이 바탕이 됐다. 김 대표는 마케팅에 드는 돈을 독자들에게 빌리겠다며 ‘독자 펀드’를 모집하는가 하면 독자교정단을 운영하며 주말에 ‘모꼬지’를 떠나거나 ‘독자교정의 밤’을 여는 등 아이디어가 넘친다. 그가 운영하는 북스피어의 모토도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이다.

이번 ‘북&쿡 퍼포먼스’는 지난 2월 출간된 <맏물이야기> 수익금을 고스란히 털어 준비했다. 생각한 걸 해보지 않으면 후회가 밀려올 것 같아 직성이 풀릴 때까지 준비를 했다고 한다. 공연에 참여한 성우들과 푸드스타일리스트들은 모두 그의 지인이다. 김 대표는 “공연을 통해 텍스트에 머물지 않고 시각과 청각, 후각으로 독자들과 소통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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