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씨름·발등 밟기 등 유치한 놀이 하다보면 어느새 대화가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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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5.06.30. 오후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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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기말고사를 일찍 끝낸 서울 아현정보산업고 학생들이 빈 교실에 있는 방승호 교장을 보고 반갑게 몰려들어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같이 사진을 찍고 있다. |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ㆍ‘모험놀이’로 청소년과 소통… 아현정보산업고 방승호 교장

▲ 말보다 놀이로 친밀감 형성

‘자기 감정 쓰기’ 등 통해

자녀에 대한 집착 버려야


“얘들아, 지금 뭐하는 거야?” “교장 선생님이랑 사진 찍는 중.” “정말? 나도 끼워줘.”

‘교장 선생님’이란 말에 지나가던 아이들이 빼꼼 열린 교실 문으로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지난 25일 오전 서울 마포구 아현산업정보고등학교에서 만난 방승호 교장(54)은 아이들이 스스럼 없이 농담을 건네고 장난을 거는 인기있는 오빠이자 형이었다. 이날도 교장 선생님의 새끼손가락에는 미용과 학생들이 해준 빨간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었다.

그 어렵다는 사춘기 아이들의 마음을 어떻게 잘 열까.

방 교장의 비밀열쇠는 ‘모험놀이’다. 방 교장 앞에는 ‘국내 모험상담가 1호’라는 안내말이 늘 따라다닌다.

1988년 중학교 기술교사로 처음 교단에 선 방 교장은 꼭 10년 후 모험놀이 상담의 매력에 푹 빠졌다. 미국 연수 중에 우연히 접한 모험놀이 상담을 통해 본인의 내면이 치유되는 경험을 한 것이다. 모험놀이 상담은 신체놀이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진행하는 상담(ABC·Adventure Based Counseling)을 말한다.

미국에선 주로 야외에서 진행되지만, 방 교장은 한국 상황에 맞게 교실에서 할 수 있는 개인놀이와 집단놀이를 개발했다. 이후 17년간 중학교·공업고·일반고 등에선 담임과 학생부 교사로, 교육청에선 대안학교 상담업무 담당 장학사로, 청소년수련원에선 부원장으로 일하며 다양한 상담을 진행했다. 모험놀이에 대한 체험과 확신이 더욱 강해진 시기였다. 초·중·고교생과 학부모들은 물론 유치원 아이들, 학교폭력 피해·가해자 집단, 영재학생들, 수녀, 목사, 교수들 모두에게 모험놀이는 확실한 효과가 있었다.

결석을 밥먹듯 했던 아이들이 의욕을 되찾고, 게임에 빠져 퇴학 위기에 처했던 학생이 대학에 진학해 즐겁게 생활하게 됐다. 학교폭력 피해 학생이 불안한 마음을 떨치고 학교 생활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게 됐고, 자기만 알던 영재학생이 협동심을 기르고 친구들을 배려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방 교장은 사회복지학과 대학원에서 모험상담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최근엔 그동안 효과를 본 놀이들을 엮은 책 <우리집 모험놀이>를 펴냈다. 모험놀이의 효과는 최근 특허출원을 해 인정받기도 했다.

모험놀이의 핵심은 간단하다. 말 대신 놀이부터 하라는 것, 상담을 할 때도 친밀한 관계 형성이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방 교장은 “작은 감정들이 쌓이고 쌓여 소통이 막히고 왜곡된 부모·자녀 관계가 만들어지는 게 너무 안타깝다”며 “거의 독립운동을 하는 마음으로 학부모들에게 모험놀이를 전파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공부하라고 강요하다가 자녀와 싸우고 말도 안 하게 되고, 결국 나중엔 제발 학교 졸업만이라도 했으면 좋겠다며 눈물짓는 부모들이 적지 않다”며 “말로 설득할 생각은 아예 그만하고 우선 아이들과 놀이로 소통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잔뜩 감정이 쌓인 채 교장실을 찾아온 아이들도 1~2분 간단한 놀이를 하면 응어리진 감정이 풀어지고 속마음이 튀어나오는 모습을 목격한 데서 나온 경험담이다.

방 교장이 권하는 집에서 따라하기 쉬운 ‘4종 놀이세트’는 팔씨름, 발등 밟기, 동전 업다운, 차이점·공통점 찾기다.

이런 유치한 놀이가 정말 효과가 있을까. 기자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방 교장은 “손발이 오그라드는 유치함을 함께 경험하고 나면 아이와의 큰 장벽을 넘게 되고 진정한 대화가 시작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방 교장이 강조하는 또 한 가지는 부모가 자녀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자기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실천 방법으로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침대에서 하루 스케줄을 생각해 보는 것과 종이 한 장에 현재의 감정을 가감없이 쓰는 것을 추천했다. 방 교장은 “어깨가 찌뿌드드하다 등 내면을 그대로 적는 것만으로도 걱정이 덜어지고, 잠깐의 여유에서 아이디어와 통찰력을 얻게 된다”고 말했다.

‘자기와의 아침 데이트 시간’에 써내려간 방 교장의 플래너 앞에는 하고 싶은 일 목록이 하루하루 추가되고 있다. 55가지가 적혀 있었다.

눈에 띄는 것은 재능기부 3000번과 ‘노래 + 상담 콘서트’ 200회다. 방 교장은 올해 3집 음반까지 낸 가수이기도 하다. 학생들의 흡연 문제로 고민하다 직접 가사를 쓴 금연송(노 타바코)은 진정성 담긴 가사로 아이들을 감동시켜 학교 흡연자들을 확 줄였을 뿐 아니라 음원 사이트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6~7년간 주말마다 전국 지역아동센터를 찾아 상담요법 강의를 하고 있는데, 요즘은 요청이 더 많아 3000번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앞으로도 재밌고 쉬운 상담을 학교에 계속 전파하고, 매년 음반도 하나씩 내면서 어렸을 때부터 꿈인 노래도 계속할 겁니다.”

방 교장은 “하고 싶은 일을 먼저 얘기하고 보는 ‘선뻥·후조치’ 스타일”이라면서 “참 신기한 게 얘길 해 놓으면 이뤄진다. 기자님도 한번 해 보세요”라며 ‘하하하’ 웃었다.

<송현숙 기자 s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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