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와 달리 민요로 감동주는건 소리꾼에겐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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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등재되던 날
회의장서 아리랑 세소절만 불렀지만…
의상·소리 모두 너무 좋았단 평가에 안도

명창이 되기위해 한달간 골방서 연습
고행 거친후 알찬소리 내는법 터득
내달 4일 무대서 경쾌한 경기민요 선뵐것



지난해 12월 5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 인류무형문화유산에 아리랑 등재가 확정된 오후 9시50분 “아~~” 하는 아리랑 첫소절이 회의장 단상 끝에서부터 울려 퍼졌다. 무형유산위원회 각국 참석자들의 눈귀는 단박에 의장석 길을 걸어나오는 흰색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한 여성에 쏠렸다.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보유자 이춘희(66) 명창은 “그날 오전 11시부터 한복을 입고 11시간을 기다렸는데, 1초가 아깝더라. 소리를 지르면서 나갔다. 회의석이 ‘확’ 집중되며 호의적인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그 표정을 보니 자신감이 생기면서 소리가 잘 나왔다”며 역사적인 순간을 떠올렸다.

이 명창은 어느 무대에서건 아리랑을 빼놓고 부른 적이 없다. 타고난 목은 장시간 노래를 해도 피곤하거나 잘 쉬지 않는다. 하지만 공연장도 아닌 회의장에서, 시간도 채 1분밖에 주어지지 않아 아리랑의 세 소절밖에 부를 수 없던 그날은 목 상태를 염려할 정도로 초긴장했다. 이 명창은 “공연이 끝나고 나중에서야 의상, 소리 모두 너무 좋았다는 평가를 듣고 한숨 돌렸다”고 털어놨다.

이 명창은 묵계월(92)ㆍ이은주(91) 명창과 함께 경기민요(잡가) 문화재 보유자다. 스승이던 고 안비취 명창의 계보를 이어 1997년 이른 나이인 쉰살에 인간문화재로 지정됐다.

 

일반인은 민요보다 희로애락의 극적인 이야기가 담긴 판소리에 더 감동받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경기민요 명창은 두성, 비성, 덜미성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섬세한 소리로 듣는이를 탄복시킨다.                                                                                 [안훈 기자/rosedale@heraldcorp.com]

경기민요에 평생을 바친 건 “소리에 미쳐서”였다. 그는 집안 대대로 용산구 한남동에서 살았다. 10대였던 1960년대에는 거리에서건 라디오에서건 자주 민요가 들려오던 때다. 이 명창은 “나는 국악이란 단어도 몰랐고, 그저 소리가 너무 아름답고 곱게 들려 좋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황금심이 내 10대 우상이었다”며 “황금심이 라디오 드라마 ‘장희빈’ 주제곡을 불렀는데, 드라마 앞뒤에 나오는 그 노래를 듣기 위해 라디오를 끼고 살았다. 너무 좋아서 죽어서도 하고 싶을 정도였다”고 했다. 소녀의 가슴앓이는 위경련으로까지 이어져 그는 병원 응급실로 실려가기까지 했다. 입원 일주일째 되는 날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해주라”는 의사 권고에 이 명창의 어머니는 딸을 살리고 싶은 심정에 가수의 길을 허락했다.

그 길로 선소리 산타령 인간문화재 고 이창배 선생 학원을 찾아 1966년부터 1975년 안비취 선생 문하로 들어가기까지 10년 가까이 수학했다. 한남동에서 학원이 있던 종로 3가까지 10년을 매일 버스로 오가고 점심은 가장 싼 자장면으로 때우기 일쑤였다. 그는 “금전적 수입이 있는 것도 아니고, 레슨비에 교통비에 감당하기 힘들었다. ‘관둘까’… 수없이 좌절했었다”고 털어놨다. 소리꾼의 길에 확신을 가진 건 1975년 안비취 명창이 인간문화재로 지정되면서였다. 전수생은 스승을 엄마처럼 모셨다. 그는 야멸차게 훈련했다. 한달간 방음장치를 한 골방에서 전화도 받지 않고, 소리만 불렀다. 하루는 유생가만 30회, 다음날은 제비가만 30회 등 하루 다섯시간씩 앉았다 일어났다 소리를 했다. 그는 “판소리는 득음을 위해 피를 토한다, 똥물을 먹는다는데, 내 발성이 구성지고 한스럽고 애원 있게 들려야 하는데 아무리 해도 그게 안됐다. 그래서 두문불출하고 산에도 찾아갔다”고 말했다. 혹독한 고행을 거쳐서야 알 찬 소리를 내는 법을 터득했다. 그는 “민요 한곡이 12~13분인데, 판소리와 달리 단조로운 멜로디로 듣는 이가 감동받게 하려면 부르는 사람은 고통”이라고도 했다. 그는 다음달 4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콘서트 ‘행복’ 무대에서 또 한 번 청중에게 감동을 선사한다. 국악오케스트라와 함께 북한 작곡가 최성환이 곡을 쓴 ‘아리랑 환타지’로 시작해 회심곡, 이별가 등 대표곡과 노랫가락, 청춘가, 태평가, 뱃노래, 자진뱃노래 등 경기 민요로 다채롭고 경쾌한 무대를 꾸밀 예정이다.
 

한지숙 기자/js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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