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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대백과

폴아웃

오지 말아야 할 섬뜩한 미래

[ Fallout음성듣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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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제3차 세계대전에 어떤 무기가 사용 될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제4차 세계대전에선 몽둥이와 돌멩이로 싸우게 될 것이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은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곧 이어 시작된 미국과 소련의 대립과 함께 핵무기 경쟁이 시작되었다. 더 작고 강력한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이 등장했고, 원격으로 핵무기를 ‘배달’ 해 줄 ICBM도 등장했다. 두 강대국은 지구를 몇 번이고 멸망시킬 핵무기를 비축했지만 멈출 줄 몰랐다. 쿠바 미사일 위기, 군비 경쟁, 스타워즈 계획까지 핵무기에 대한 공포감은 그렇게 커져만 갔다.

한편으로 핵무기에 대한 공포감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핵전쟁이 일어나면 이 지구는 어떻게 끝장날 것인가?’를 그린 문학, 영화, TV드라마가 쏟아져 나왔다.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Dr. Strangelove, 1964)나 ‘그 날 이후’(The Day After, 1983)가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핵에 대한 공포는 마침내 새로운 매체인 게임과 만나 명작을 만들어 냈다. 1997년 첫 등장 이후 지금까지 최고의 RPG라는 평가를 놓쳐본 적이 없는 [폴아웃(Fallout)] 시리즈다.

웨이스트랜드의 등장

[폴아웃]의 출발은 1988년에 등장한 RPG [웨이스트랜드](Wasteland)다. ‘바즈테일’(Bard’s Tale, 1985)등 수작 RPG를 내놓으며 명성을 쌓고 있던 브라이언 파고(Brian Fargo)가 제작한 게임이다. 이 게임은 핵전쟁으로 인해 황폐화 된 2087년의 미국 남서부를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핵전쟁의 여파로 기존 정치, 경제 체제는 이미 붕괴했다. 남은 생존자는 띄엄띄엄 정착지를 만들어 생존하는 상황이다.

[웨이스트랜드]는 세기말의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핵전쟁으로 인해 방사능이 뿜어져 나오는 사막은 ‘황무지’로 불리며 온갖 돌연변이와 악당이 설치고 다는 위험한 공간이 되었다. 주인공은 이들에 맞서 미군 ‘잔존세력’인 데저트 레인저(Desert Rangers)의 일원으로 생존을 위협하는 전투로봇, 불한당, 돌연변이를 상대해야 했다.

웨이스트랜드 <출처: gog.com>

중세 판타지 일색이던 RPG 시장에서 [웨이스트랜드]는 확실히 튀는 존재였다. 게임잡지 ‘컴퓨터 게이밍 월드’는 [웨이스트랜드]를 ‘핵전쟁 이후 세계를 제대로 그려낸 유일한 게임’이라 평가했다. 이 독특하면서도 매력적인 세계관에 많은 게이머가 주목했다. 마침 이 시기는 1983년 전략 방위 구상, 1986년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등으로 핵에 대중적 관심이 쏠려있던 시대였다.

세계관뿐 아니라 [웨이스트랜드]의 게임 시스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대단히 직관적이면서도 흥미로운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었다. 다른 RPG처럼 랜덤으로 캐릭터의 지능이나 힘 같은 능력치를 정해야 했는데 이 능력치에 따라 캐릭터가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이 결정되었다. 또한 게임 내에서 행동할 수 있는 자유가 비교적 컸다. 예를 들어, 잠긴 문이 있다면 ‘자물쇠 따기’ 스킬을 이용해 따고 들어가거나 힘으로 밀어붙여 강제로 열거나 심지어 대전차무기를 이용해 문을 화끈하게 폭파시키는 것도 가능했다.

당시 많은 RPG는 캐릭터가 일단 화면을 넘어가면 이전 지역 몬스터의 배치나 아이템 위치가 리셋되는 시스템이었다. [웨이스트랜드]는 한 번 게임 속 세계를 변경하면 어디로 가든지 그 결과가 게임 내에 그대로 남아있는 시스템을 사용했다. 위에서 예를 들었던 잠긴 문의 경우 일단 열었다면 그 문은 다른 곳을 다녀와도 그대로 열려있었다. 지금이야 당연하게 여기는 부분이지만 이 당시만 해도 정말 드문 시스템이었다.

동료나 NPC와의 상호작용도 놀라웠다. [웨이스트랜드]에는 동료가 주인공이 내리는 명령을 거부하기도 하고, 선택지에 따라 NPC가 주인공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등 풍부한 상호작용이 도입되었다. 대화도 키워드를 찾거나 유추해서 직접 키보드로 입력해야 했다. 사막에 있는 수상한 동굴의 정보를 알고 싶다면 NPC에서 ‘CAVE’라고 직접 물어보는 방식이다.

[바즈테일]과 [웨이스트랜드]는 연이어 성공했다. 게임을 만든 브라이언 파고와 그가 1983년 세운 ‘인터플레이 프로덕션’은 본격적인 성장을 시작했다. 10명 남짓하던 직원으로 시작된 자그마한 회사가 1990년대 중반에 이르자 600명이 넘는 중견 기업으로 성장해 있었다.

고난과 역경의 폴아웃 개발

1990년대 중반은 RPG 장르에 있어서 시련의 시기였다. 대작 RPG가 말라붙은 와중에 브라이언 파고는 엉뚱한 계획을 세웠다. 300만 달러 정도의 예산으로 [웨이스트랜드]의 후계자격인 게임을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사실상의 후속작이지만, [웨이스트랜드]의 상표권은 당시 유통사인 EA에 있었으므로 법적분쟁을 피하기 위해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 이것이 [폴아웃] 시리즈의 시작이다.

[폴아웃]의 제작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모회사인 인터플레이 인터렉티브는 자금난을 겪고 있었다. 제작자 팀 케인(Tim Cain)은 개발 초기 자금이나 인력 지원도 없이 홀로 [폴아웃]에 사용할 엔진을 만들어야 했다. 인력은 곧 충원되었지만 다 합쳐도 30명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팀 케인. 2011년 옵시디언 엔터테인먼트에 합류했다. <출처: (cc) Official GDC at flickr.com>

[폴아웃] 개발이 완전히 중단될 뻔한 위기도 있었다. 인터플레이는 유명 TRPG ‘던전 앤 드래곤’의 ‘포가튼 렐름’, ‘플레인스케이프’ 세계관 사용권을 따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폴아웃] 개발팀에는 ‘던전 앤 드래곤’을 이용한 게임 개발을 계획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팀 케인은 회사 상층부에 거의 애원하다시피 해 겨우 게임을 개발할 수 있었다.

시련은 계속되었다. 1996년 말 블리자드의 [디아블로]가 출시되었다. [디아블로]는 ‘핵&슬래시’로 큰 명성을 얻었다. 인터플레이 경영진은 [폴아웃] 개발팀에게 [폴아웃]을 [디아블로] 처럼 실시간 전투로 바꾸고 멀티플레이까지 추가하라고 요구했다. 부족한 인력과 자원으로는 불가능한 목표였고 [폴아웃]의 방향과도 맞지 않았다. 다시 한 번 팀 케인이 경영진을 설득해 이 결정도 없던 일이 되었다.

가장 큰 문제가 남아 있었다. 본래 [폴아웃]은 TRPG ‘GURPS’의 룰을 사용한 시스템으로 개발되고 었다. 그런데 [폴아웃]의 개발버전을 본 ‘GURPS’의 원작자가 자신의 룰을 이런 잔인하고 폭력적인 게임에 사용할 수 없다는 반대 의사를 내놓았다. 최종적으로 저작권 협상이 결렬되었고 [폴아웃]에 사용했던 ‘GURPS’ 시스템을 완전히 뜯어고쳐야 했다.

마지막 순간에 닥친 위기였다. 팀 케인과 크리스토퍼 테일러는 급히 기존의 [폴아웃] 시스템을 수정했다. 개발진들도 ‘우리가 어떻게 뜯어고쳤는지 모르겠다’고 회상할 정도로 혹독한 작업이 이어졌다. 결국 S.P.E.C.I.A.L. 이라는 독자적인 시스템으로 변경하면서 게임은 3년 만에 세상에 나왔다.

폴아웃 <출처: vrworld.com>

세계가 핵전쟁으로 멸망했다는 [웨이스트랜드]의 설정은 [폴아웃]에서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졌다. 부족한 자원으로 인한 갈등 끝에 미국과 중국은 2052년부터 25년간에 걸친 자원전쟁을 벌인다. 중국군이 알래스카에 상륙하고 미국이 캐나다를 합병하는 등 전쟁은 점점 더 막바지로 치달아간다. 2077년, 누가 먼저 발사했는지 모를 핵전쟁이 시작되었고 단 몇 시간 만에 전 세계가 멸망했다.

[폴아웃]의 이야기는 전쟁 후 84년이 흐른 핵 방공호 ‘볼트 13’에서 시작된다. ‘볼트 13’의 관리자는 정수장치의 부품을 구하기 위해 제비 뽑기로 뽑힌 주인공을 반 강제로 황무지로 내보낸다. 이 주인공이 정수장치의 부품을 구하기 위해 황무지를 떠도는 모험담이 [폴아웃]의 기본 배경이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은 다양한 동료, 적, 그리고 도덕적 딜레마에 직면하게 된다.

온갖 고난 끝에 등장한 [폴아웃]은 크게 성공했다. 대부분의 게임언론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고 1997년과 1998년에는 ‘올해의 RPG’ 상도 수상했다. ‘정통’ RPG를 원하던 게이머에게 [폴아웃]은 단비와도 같았다. 그들은 [디아블로]와는 다른 정통 RPG가 등장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상업적으로도 나쁘지 않은 성과를 거뒀다.

잡음이 많았던 폴아웃2

문제는 [폴아웃2]에서 시작됐다. [폴아웃]이 거둔 성과에 고무된 인터플레이는 개발팀에게 차기작의 개발을 독촉했다. 회사가 기울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차기작 개발은 무리였다 그러나 경영진은 계속해서 2편을 내놓기를 독촉했다. 결국 참다 못한 주요 개발자들은 인터플레이를 떠나고 만다.

가장 먼저 떠난 사람은 [폴아웃]의 주역이었던 팀 케인이었다. 사실상 [폴아웃]의 엔진을 혼자 만든 것이나 다름 없었던 그는 [폴아웃2]에서도 무리한 요구가 이어지자 주저 없이 회사를 떠났다. 동료인 리오날드 보야스키와 제이슨 D. 앤더슨도 같이 인터플레이를 떠났다. 이들은 트로이카 게임즈라는 새로운 회사를 차렸다.

주요 개발자가 떠나자 인터플레이는 남은 [폴아웃2] 개발팀을 ‘블랙 아일 스튜디오’로 묶어 RPG 전문 개발팀으로 만들었다. 이들은 후에 [플레인스케이프: 토먼트], [아이스윈드 데일] 등을 내놓으며 RPG 명가로 우뚝 섰다.

하지만 인터플레이 경영진이 요구한 개발 기간은 너무나 짧았다. 남은 개발 기간은 1년뿐이었다. 일정을 늘려 완벽한 게임을 만드느냐, 아니면 일정에 맞춰 이익을 노리느냐의 기로에서 인터플레이의 경영진은 이익을 선택했다. 이것이 [폴아웃2]에는 치명적인 결정이었다.

폴아웃2

우여곡절 끝에 1998년 가을 [폴아웃2]이 등장했다. [폴아웃2]는 볼트에서 추방당한 전작 주인공이 세운 아로요(Arroyo)라는 마을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전직 주인공의 손자인 선택 받은 자(Chosen One)가 촌장의 부탁으로 기근에 시달리는 마을을 구원할 ‘GECK’라는 도구를 찾아 나서는 모험 과정을 그리고 있다.

1년 만에 등장한 [폴아웃2]도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전작만은 못했다. 짧은 개발 기간은 [폴아웃2]의 발목을 계속 잡았다. 기본적인 시스템은 전작의 엔진과 SPECIAL 시스템을 재활용해서 해결했다. 하지만 짧은 개발 기간으로 인해 본래 기획했던 컨텐츠의 상당부분이 잘려나가 버렸다. 이 잘려나간 [폴아웃2]의 미완성 컨텐츠를 복원하는 패치가 게이머에 의해 만들어졌을 정도다.

중간에 개발진이 바뀌면서 전작과 분위기도 달라졌다. [웨이스트랜드]도 그렇고 전작 [폴아웃]도 사람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황무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2편은 생존자들이 세운 ‘도시’가 등장하며 심지어 핵전쟁 후 세워진 새로운 ‘국가’도 등장했다. 전작보다 ‘멸망한 세상에 홀로 살아남은’ 느낌이 크게 줄었다는 평이 많았다.

이것만으로도 팬들의 반발은 컸는데, 짧은 개발 기간으로 인해 게임 진행을 방해하는 버그도 산적해 있었다. [폴아웃] 시리즈가 대대로 수많은 버그로 유명했지만 [폴아웃2]의 경우에는 특히 두드러졌다. 게임 진행이 불가능한 버그도 채 수정하지 못할 정도로 출시일의 압박을 심하게 받았던 것이다. 그나마 중요한 버그는 이후 ‘블랙 아일 스튜디오’에서 패치를 내놓으며 진정됐지만 자잘한 버그는 패치 이후에도 여전했다.

이런 저런 잡음이 많았지만 [폴아웃2] 역시 성공을 거두었다. 잘려나간 부분을 제외해도 [폴아웃2]는 괜찮은 RPG였다. 패치를 거듭하면서 치명적인 버그는 상당수 사라졌다. 엔진이나 시스템은 대부분 전작을 재활용한 수준이었지만 배경설정은 한층 더 확대되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몇몇 소도시와 ‘국가’도 [폴아웃2]에서 새로 등장했다.

특히, 자신들이 미국 정부의 정통 후계자임을 자칭하는 ‘엔클레이브’라는 악당들이 등장했다. 놀랍게도 이들은 핵전쟁 직전 자신들만 살겠다고 도망친 미국 정부 고위 관계자들(!)의 후손이다. 정말로 미국 정부의 정통 후계자를 완전히 악역으로 그려놓은 셈이다. 이들은 [폴아웃2]에서 중요한 악역을 맡음과 더불어 이후 작품에서도 비중 있는 역할로 등장한다.

블랙 아일 스튜디오는 [폴아웃2]에 이어 대작 RPG를 연속으로 내놓으며 선전했다. [플레인스케이프: 토먼트(1999)]와 [아이스 윈드 데일(2000)], [아이스 윈드 데일2(2002)]을 내놓으며 좋은 평가를 받았다. [폴아웃]의 차기작도 물밑에서 진행되었다. [폴아웃3]은 (프로젝트명 반 뷰렌, Project Van Buren)이란 가칭으로 개발되고 있었다. 그러나 [폴아웃] 시리즈는 다시 한 번 풍파를 겪게 된다.

베데스다 소프트웍스로 이적한 폴아웃3

1990년대 말에 접어들자 인터플레이 엔터테인먼트는 큰 곤경에 처하게 된다.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자금압박은 점점 심해졌다. [폴아웃2]의 부실한 출시도 인터플레이의 자금 사정이 원인이었다. [웨이스트랜드]를 제작했으며 당시는 인터플레이 엔터테인먼트의 CEO로 있던 브라이언 파고도 경영권 분쟁 끝에 2000년 회사를 떠났다.

점점 악화되는 모회사의 경영 상태에 블랙 아일 스튜디오의 주요 개발자들도 손을 들었다. 이들은 2002년 [아이스 윈드 데일2] 출시 직후 대부분 회사를 떠났다. 블랙 아일 스튜디오는 껍데기만 남은 상태로 2년을 더 버티다가 2004년 해체되었다. [폴아웃3]를 비롯한 여러 프로젝트는 그대로 공중분해 되었다.

이 시기 [폴아웃]의 지적 재산권을 활용한 외전 격인 턴 전략 [폴아웃 택틱스(2001)]와 액션 RPG [폴아웃: 브라더후드 오브 스틸(2004)]을 발매했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결국 끊임없는 자금난에 시달리던 인터플레이는 블랙 아일 스튜디오 해체와 더불어 최고이자 최악의 결정을 내렸다.

개발이 중지된 프로젝트 반 뷰렌

인터플레이는 [엘더스크롤] 시리즈로 유명한 베데스다 소프트웍스(Bethesda Softworks)에 [폴아웃3]의 지적 재산권을 최소 120만 달러의 로열티를 받고 판매했다. 이외의 [폴아웃4]와 [폴아웃5]의 개발 권리도 각각 최소 100만 달러의 로열티에 판매했다. [폴아웃 온라인]의 권리는 인터플레이가 계속 보유하기로 했다.

2004년 [폴아웃3]의 권리를 사들인 베데스다는 그 해 바로 [폴아웃3]의 개발을 시작했다. 하지만 [엘더스크롤4: 오블리비언]이 2006년 출시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폴아웃3]의 개발은 우선순위에서 미뤄졌다. 차일 피일 미뤄지는 [폴아웃3]에 대해 많은 게이머가 ‘듀크 뉴켐 포에버 마냥 안 나오는거 아니냐’고 비아냥거릴 정도였다.

폴아웃3 <출처: fallout.bethsoft.com>

2008년 10월 드디어 [폴아웃3]이 등장했다. 베데스다에서 개발을 이어 받은지 4년, 전작 이후 10년 만의 후속작이었다. 그러나 [폴아웃3]은 출시되자마자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철저히 PC를 기반으로 제작된 전작과는 달리 PC, Xbox360, PS3 모든 기종으로 출시되었고 인터페이스는 패드를 기반으로 한 콘솔에 많은 부분이 맞춰져 있었다.

[폴아웃3]은 워싱턴 D.C.에 존재하는 볼트 101을 배경으로, 아버지가 탈출해서 자신도 볼트의 규칙에 따라 쫓겨나게 된 외로운 방랑자의 모험담을 그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워싱턴 D.C.에 남아있는 전작의 악역인 ‘엔클레이브’가 다시금 등장한다. 주인공은 아버지의 흔적을 쫓으며 이들의 음모를 막고 ‘프로젝트 퓨리티’를 완성한다.

시대에 맞게 풀3D로 게임이 제작되었으며 시점도 FPS와 TPS를 오가는 형태로 변경되었다. 게임의 상당부분은 폐허가 된 도심지와 근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전투도 V.A.T.S.라는 고유한 시스템을 도입했다. 너무나 많은 변화에 팬들의 반응은 극과 극을 오갔다.

폴아웃3의 전투 시스템인 V.A.T.S.

게임언론은 [폴아웃3]에 높은 점수를 주었고, 그 해와 이듬해 각종 게임상을 줄줄이 휩쓸었다. 문제는 [폴아웃]과 [폴아웃2]를 즐긴 올드팬에게는 너무나 이질적인 게임이라는 점이었다. ‘이건 폴아웃이 아니라 엘더스크롤: 폴아웃이다’라는 폴아웃 팬의 혹평이 줄을 이었고, 반대편에서는 ‘너무나 훌륭한 RPG다. 폴아웃의 명성을 잇기에 충분하다’는 찬사도 있었다.

어쨌든 발전된 기술 덕택에 [폴아웃3]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핵전쟁으로 완전히 폐허가 된 워싱턴 D.C. 및 주변 지역의 모습이 사실적인 3D로 묘사되었다. 캐릭터를 조작해 검게 그슬린 콘크리트 더미를 걷다 보면 영화의 한 복판에 서 있는 듯한 강렬한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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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데스다 소프트웍스의 토드 하워드는 최대한 원작의 느낌을 살리는 방향으로 개발했다고 밝혔다. ‘핵전쟁으로 멸망한 황량한 세상에서의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방향이 [폴아웃3]에는 잘 드러나 있었다. 팀 케인 같은 전작 개발진도 [폴아웃3]을 직접 해보고 이런 부분을 호평했다.

[폴아웃3]은 시리즈의 명성에 비해 볼륨은 상당히 작은 편이었지만 그래도 시리즈에서 항상 제시된 방향인 ‘선과 악의 선택과 그에 따른 도덕적 딜레마’ 역시 여전했다. 예를 들어 주인공(게이머)의 선택에 따라 멀쩡한 한 마을이 핵의 화염에 휩싸일 수도 있으며, 악역인 ‘엔클레이브’에 동조해 황무지인을 몰살하는데 동참할 수도 있다.

[폴아웃3]는 발매 된 그 해 450만장이 팔리며 시리즈 사상 최고의 판매량을 올렸다. 특히 대작 RPG 타이틀을 원하던 Xbox360 유저들의 호응이 컸다. 2009년 ‘게이머가 가장 많이 플레이 한 Xbox360 게임’을 차지하기도 했다. 베데스다의 품 안에 들어간 [폴아웃]이 드디어 진가를 발휘한 것이다.

블랙 아일 스튜디오의 재림? 폴아웃: 뉴 베가스

[폴아웃3]의 성공으로 베데스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베데스다는 3편의 인기를 이을 차기작을 내놓고 싶었다. 그러나 회사는 [엘더스크롤5: 스카이림]의 제작에 들어가 있어 여유 인력이 없었다. 베데스다는 결국 옵시디언 엔터테인먼트에 후속작 제작을 맡겼다.

옵시디언 엔터테인먼트는 블랙 아일 스튜디오를 떠난 주요 개발자인 퍼거스 어커트, 크리스 아벨론과 조쉬 소여 등이 모여 설립한 회사다. [네버윈터 나이츠2(2006)]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인터플레이에서 [폴아웃2] 개발에 참여한 개발자들이 모여있다는 것이었다. [폴아웃3]에 깊은 감명을 받은 이들은 베데스다와 [폴아웃] 차기작의 제작 계약을 맺었다. 한동안 방황했던 시리즈가 원래 주인을 만난 겪이다.

[폴아웃3]의 엔진을 그대로 사용했기 때문에 [폴아웃: 뉴 베가스]의 개발은 비교적 빨리 진행되었다. [폴아웃: 뉴 베가스]는 18개월 만에 완성되었다. 마침내 2010년 가을 [폴아웃: 뉴 베가스]가 등장했다.

폴아웃: 뉴 베가스 <출처: fallout.bethsoft.com>

옵시디언은 블랙 아일 스튜디오에서 [폴아웃] 차기작을 만들지 못한 한을 [폴아웃: 뉴 베가스]를 통해 풀었다. 스토리를 맡은 크리스 아벨론은 물론이고 주요 개발자인 조쉬 소여부터가 취소된 [폴아웃3](프로젝트명 반 뷰렌)의 핵심 디자이너였다.

실제로 많은 부분에서 [뉴 베가스]는 [폴아웃2]를 계승하고 있다. 배경도 기존 [웨이스트랜드]와 [폴아웃] 시리즈의 배경이었던 남서부 네바다 사막으로 설정했다. [뉴 베가스]의 주요 무대인 라스베가스는 [폴아웃2]에 나왔던 향략 도시인 ‘뉴 레노’의 분위기와 흡사하다. 심지어 [폴아웃2]에 등장했던 동료인 마커스도 다시 등장한다. [폴아웃] 시리즈를 즐겨온 사람이라면 향수를 불러일으킬 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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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아웃2에 등장했던 마커스가 뉴 베가스에도 등장한다

뉴 베가스에도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 가득하다

[뉴 베가스]의 외적인 면은 사실 [폴아웃3]과 그다지 차이가 없다. 대신 [뉴 베가스]는 스토리 면에서 좀 더 치밀해졌다. 황량한 남서부 사막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다양한 세력이 등장한다. 이 세력들은 무법지대인 남서부 사막을 각자 자신의 것으로 하기 위해 움직인다. 멸망 이후 생존자들이 모여 ‘체제’를 재건하는 과정을 그려냈다.

밋밋한 결말로 끝나던 [폴아웃3]을 의식했는지 [뉴 베가스]에는 다양한 엔딩을 추가했다. 각 세력과 주인공의 우호도, 퀘스트 수행 여부가 엔딩을 결정짓고 동료들 역시 이 엔딩에 따라 운명이 갈린다. 좀 더 다양한 관점에서 스토리를 즐길 수 있고, 다양한 엔딩을 볼 수 있다.

[뉴 베가스]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발매 두 달 만에 500만장이 팔리며 3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옵시디언이 의도했던 대로 [폴아웃2]의 느낌을 살렸다는 점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짧은 개발기간으로 인해 버그가 많았다는 것이 옥의 티다. 제작진은 게임 발매 이후 버그를 잡기 위해 지속적인 패치를 했다.

아직 오지 않은, 오지 않아야 할 섬뜩한 미래

이런 세상에 남겨진 당신이라면 무엇을 할 것인가? <출처: fallout.bethsoft.com>

팀 케인이 [폴아웃] 개발의 첫 삽을 뜬지 어느덧 20년이 지났다. 개발사가 해체되고 회사가 바뀌며 저작권 분쟁에 휘말리는 등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폴아웃] 시리즈는 결국 생존에 성공했다. 수 백 만 달러를 들여 [폴아웃] 저작권을 구입한 베데스다 소프트웍스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폴아웃]은 잔혹한 게임이다. 핵전쟁으로 얼굴이 녹아버린 인간(구울)에서부터 식인종, 돌연변이, 학살, 야만적인 살인 등 맨 정신으로 보기 힘들 정도의 잔혹한 묘사가 끊임없이 등장한다. 또한 [폴아웃]의 세계는 우울하다. 핵전쟁으로 기존 문명은 완전히 파괴되었으며 재건의 길은 멀어 보인다. 법이 아닌 힘과 야만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폴아웃: 뉴 베가스]에 나오는 퀘스트 중 선택에 따라 부모를 잃은 아이를 노예상인에게 팔아버리고 보상을 받는 것도 있다. 이 정도 되면 우리가 생각하는 가치관 마저 파괴한다.

War. War never changes. – 폴아웃 시리즈를 관통하는 캐치프레이즈

[폴아웃]에는 ‘핵전쟁 이후에도 인간의 탐욕적이고 이기적인 본성은 바뀌지 않는다’라는 냉소와 더불어 ‘잔인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인간미와 선량함은 살아있다’는 희망이 함께 존재한다. 그리고 모든 것은 게이머의 선택에 달려있다. 앞서 예로 든 퀘스트에서도 노예상인에게 아이를 팔아버릴 수도 있고, 유일한 혈육인 고모에게 데려다 주고 아이의 행복한 미래를 볼 수도 있다.

[폴아웃]은 끊임없이 묻는다. ‘이렇게 잔혹하고 끔찍한 세상에서 너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단순히 물음에 그치지 않고 게이머의 ‘행동’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 결과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문학도, 영화도, 음악도 아닌 오로지 게임만이 할 수 있는 부분이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폴아웃]에 묘사된 황무지의 이야기는 우리가 아직 선택하지 않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다. 혹은 우리의 선택으로 오지 않게 해야 할 미래다. 핵전쟁이 수십억의 사람을 죽이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야만이 지배하는 황무지를 떠도는 그런 섬뜩한 미래. [폴아웃]은 그만큼 선택이 중요한 게임이고, 우리는 그에 매료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참고자료

· 위키피디아, Fallout (series)
· Polygon, Fallout: The game that almost never was
· Winterwind Productions, An Interview with Damien "Puuk" Foletto
· IGN, Bethesda Softworks Announces Successful Launch of Fallout 3
· Fallout.wiki.com
· VR World, ANALYSIS: Is Interplay Set To Lose The Fallout Lawsuit?

발행일

발행일 : 2015. 03. 09.

출처

제공처 정보

  • 김경래 게임어바웃 기자

    초등학교 시절 구입한 14400bps 모뎀이 달린 386PC와 PC통신 ‘천리안’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어스토니시아 스토리]를 비롯해 [심시티2000]과 [적색경보] 등 다양한 게임을 즐겼으며, 폭넓고 다양한 게임의 역사와 문화적 의의 발견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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