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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중산층에 줄 생계지원금 고용유지로 돌려라

입력 : 
2020-03-31 00: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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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소득 하위 70% 가구에 대해 100만원(4인 가구 기준)의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코로나발 경제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각국 정부가 파격적인 재정 집행에 나서고 있는 것과 궤를 같이하는 결정이다. 그러나 재정 집행의 우선순위와 효과 면에서 동의하기 어려운 대목이 있다.

첫째, 생계 지원과 소비 진작 중 어느 쪽에 무게를 둔 정책인지 불분명하다. 바람직한 것은 두 가지 목표가 선순환해 경기 상승 효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무조건 돈을 푼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필요한 타이밍에 필요한 곳에 써야 효과가 있다. 코로나19로 소비가 급감한 것은 사실이다. 실업 및 영업활동 위축으로 소득이 감소한 영향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까지는 감염에 대한 두려움, 사회적 거리두기로 소득이 있어도 소비가 움츠러든 것이 더 큰 원인이라고 봐야 한다. 코로나 방역은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지만 언제 안전해질지 기약하지 못한다. 아직은 정상 소비활동을 재개할 상황이 아니고 따라서 돈을 푸는 만큼 소비 진작을 기대하기 어렵다. 긴급재난지원금의 우선 목표는 이번 사태로 소득이 끊겨버린 취약층에 대한 생계 지원이 돼야 한다.

둘째, 그런 점에서 4인 가구 기준 월 소득 712만원 이하 중산층까지 지원 대상에 포함한 것은 과도하다. 거듭 강조하지만 이들 중산층은 지금 쓸 돈이 없어서 소비를 자제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들에게 월 100만원 상당의 쿠폰과 상품권을 지급한다고 해서 그만큼 소비가 늘어난다고 보기 어렵다. 어차피 지출해야 하는 필수 생계비 항목에 현금 대신 쿠폰을 사용한다면 경기 진작 효과는 없는 셈이다. 재난기본소득 논의 초기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엇박자가 날 수 있다"고 말한 것은 이 점을 경계한 것이다.

셋째, 정부가 돈 써야 할 일은 이것 말고도 많다. 문재인 대통령은 30일 "경제 충격, 고용 불안, 기업 유동성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재정 여력을 최대한 비축할 필요가 있다"며 지급 대상에서 제외되는 국민들의 이해를 당부했다. 재정 여력을 걱정한다면 지원 대상을 이처럼 넓게 가져가서는 안 된다. 일자리가 급속히 줄고 있지만 대량 실업 사태는 아직 본격화되기 전이다. 고용유지지원금과 실업급여 신청이 무섭게 늘어날 것이다. 중소기업에 이어 대기업까지 유동성 위기에 몰리고 있다. 정부가 지원하지 못하면 도산과 대규모 실직 사태가 온다. 중산층이 일자리를 잃는 시점이 진짜 위기의 시작이다. 정부와 국회는 향후 추경 심사에서 소득상실 계층에 대한 지원은 더 심화시키되 소득을 유지하고 있는 중산층 지원은 고용 유지로 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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