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전용' 대 '한자 혼용'…끝없는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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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4.10.09. 오전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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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9일은 한글날' (서울=연합뉴스) 이정훈 기자 = 한글날을 하루앞둔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이야기 전시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한글창제 관련 전시물들을 살펴보고 있다.

언어·교육·문화 등 여러 영역에서 견해차 뚜렷

혼용 옹호 측은 '국어기본법 위헌' 헌법소원까지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 한글 전용이냐, 국한문 혼용이냐.

1970년 정부가 강제로 한글 전용정책을 시행한 이래 국어학계에서 끊임없이 계속되는 논쟁이다. 알파벳을 비롯한 다른 문자를 두고는 이런 논란이 별로 없지만, 오랫동안 한국 역사와 함께 존재한 한자에 대해서는 첨예한 주장이 맞선다.

한글단체들을 중심으로 한국어를 한글로만 표기해야 한다는 시각이 있고, 2005년 제정된 국어기본법도 그와 같은 원칙을 따른다. 반면 한자를 배제한 결과 국민의 언어생활과 문화에 막대한 장애가 생겼다는 지적도 꾸준히 나오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국한문 혼용론자들은 한글 전용을 규정한 국어기본법에 대해 헌법소원을 냈고, 한글 전용론자들은 최근 교육부가 내놓은 초등학교 교과서 한자 병기 확대 방안에 강하게 반발하는 등 이와 관련한 움직임이 끊이지 않고 있다.

568돌 한글날을 맞아 한글 전용을 둘러싼 논란의 주요 쟁점들을 정리했다.

◇ 한글만으로는 한국어를 제대로 쓸 수 없나

알려졌다시피 한국어 어휘에서 한자어는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국립국어원이 2010년 발간한 '숫자로 살펴보는 우리말'을 보면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린 표제어 약 51만개 가운데 한자어가 58.5%다. 고유어는 25.5%로 한자어의 절반 이하다.

이는 한글만으로 한국어를 온전히 표기할 수 없다는 주장의 중요한 근거다. 이를테면 서울에 있는 북한산(北漢山)은 '한강(漢江) 북쪽에 있는 산'이라는 뜻이지만, 한글로만 표기하면 자칫 '북한(北韓)의 산'으로 오해할 수 있다는 식이다.

아울러 국한문 혼용론자들은 한국어에서 고유어와 한자어가 담당하는 영역과 기능이 서로 달라 한자어를 고유어로 대체하기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복잡한 사물이나 추상적 개념을 압축한 문자가 한자이므로 한자어의 정확한 의미는 한자를 통해서만 제대로 전달할 수 있다는 뜻이다.

국한문 혼용을 주장하는 박상수 어문정책정상화추진회 사무국장은 "과거처럼 한자로 문장을 쓰는 교육을 하자는 뜻이 아니라 우리말을 더 정확히 하려면 한자가 필요하다는 뜻"이라며 "특히 전문용어는 90% 이상이 한자어인데 개념어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학문이나 언어소통을 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한글 전용에 찬성하는 측은 이런 주장을 일축한다. 낱말의 뜻을 파악하는 데 필요한 것은 체험과 독서, 토론 등을 통한 맥락의 이해이지 꼭 한자어를 한자로 표기해야만 뜻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이들은 반박한다.

말하자면 '애국가'(愛國歌)가 '사랑 애'와 '나라 국'자로 이뤄졌다고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나라를 사랑하는 노래'임을 충분히 알 수 있다는 논리다.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상임대표는 "한자어가 어떻게 구성됐는지 알려줄 필요는 있지만 한자를 꼭 표기해야만 한다는 법은 없다"며 "한자를 표기하지 않아 뜻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지금까지 언어생활을 어떻게 해 왔겠는가"라고 되물었다.

한글 전용론자들도 한국어 어휘에 한자어가 많고 이를 무조건 배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어려운 말은 줄이고 한자어라도 쉬운 말로 바꿔 쓰는 방향이 옳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혼용론자들과 견해를 달리한다.

◇ 한글 전용이 언어와 문화를 망가뜨렸나

국한문 혼용론자들은 언어와 인성, 문화 측면에서 한글 전용이 상당한 악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다. 여기에는 한자와 한자어가 오랜 세월 민족의 사상과 정서를 전승하는 도구였으므로 전통 문자와 언어로 인정해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그러나 한자를 배제하면서 국어가 황폐해지고 국민 언어능력이 전반적으로 하락했다고 이들은 지적한다. 한국의 성인 문해력 수준이 학력에 비해 낮다거나, 한글 덕분에 단순 문맹률은 낮지만 실질 문맹률은 높다는 조사 결과 등이 근거다.

어린 학생들이 한자를 배우지 않아 한자를 매개로 선조들의 교양과 윤리, 삶의 지혜를 알 길이 없어지면서 인성교육이 부실해졌다는 주장도 편다. 대학생과 대학원생들이 한자를 읽고 쓰지 못해 학문이 퇴보한다는 한탄은 이미 오래된 얘기다.

반면 한글 전용론자들은 전통문화와 학문의 수준을 지킬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그 해법을 한자 혼용에서 찾는 데는 반대한다. 해결책이 못 될뿐더러, 전통문화 계승이라는 차원에서는 번역의 활성화가 급선무라는 반론이 나온다.

이건범 대표는 "한자를 공부한다고 온 국민이 한자로 쓰인 고전 원서를 해석할 수는 없다"며 "전통문화는 한글로 번역하고 적절한 주석을 달아서 읽게 하는 식이 돼야 계승할 수 있고, 역사학이나 국문학 전공자처럼 그런 일을 맡아야 하는 사람에게는 대학에서 강도높은 한자교육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국어교육이 문제'라는 인식에는 동의하지만 그 원인을 한글 전용에서 찾지는 않는다. 젊은 세대의 국어능력에 문제가 있다면 이는 읽기·독해·문제풀이에 치중하는 입시 위주의 국어교육에서 비롯했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 한자 공부는 언제부터 해야 하나

한자 혼용론자들은 현재 한자교육이 이뤄지고 있는 중·고등학교에서는 물론 초등학교에서도 한자를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초·중·고등학교의 모든 교과서에 한자 혼용이 금지돼 있고 초등학교에서는 아예 한자를 가르치지 않으며, 중·고등학교에서조차 선택적으로 한자 교육을 하는 현 공교육 제도는 한국어 이해에 큰 장애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글단체들은 최근 논란이 된 초등학교 교과서 한자 병기 확대 방안만으로도 한자 사교육을 부추기고 학생들의 학습 부담만 늘릴 뿐이라며 "시대를 한참 역행하는 처사"라고 비판한다.

이건범 대표는 "초등 교과서에도 한자가 들어가면 한자를 가르친다며 낱말의 총체적 개념을 가르칠 시간이 더 줄어들 것"이라며 "중학교부터 교육하는 정도면 충분하고, 지금의 제도가 제대로 운용되는지를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puls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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