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의 녹색 거짓말 ‘위장환경주의’

2019.06.08 14:01

지난 6월 5일, ‘세계 환경의 날’이 무색하게 서울 도심의 미세먼지는 나쁨 수준을 보였다. 무심코 넘겨본 페이스북 타임라인에는 “초미세먼지 시대, 그냥 맥아로도 만들 맥주였다면 지구 반대편까지 가지도 않았다”는 말로 시작하는 하이트진로의 새로운 맥주 브랜드 ‘테라’의 광고가 올라왔다.

미세먼지 자욱한 도심에서 청정지역인 호주 ‘골든트라이앵글’ 지역의 광활한 보리 경작지로 화면이 바뀌는 과정은 시원스럽기까지 하다. 테라는 지난 3월 21일 출시한 이후 초기 반응이 좋다. 5월 초 기준으로 130만 상자가 팔렸다. 다른 국내 브랜드와 초기 판매 속도를 비교하면 가장 빠른 수준이다. 미세먼지에 대한 불안감을 파고든 광고가 한몫했을 것이다.

‘청정라거’ 시대를 열었다는 선언과 달리 일부 환경운동가들은 이 광고에 마뜩잖은 시선을 보낸다. 최재성 녹색소비자연대전국협의회 정책센터장은 “공기 좋은 곳에서 생산한 맥아로 만든 맥주를 먹는 것과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며 “사회문제를 광고의 영역으로 끌고와 마케팅에 사용한 사례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만 이란현 란양강에서 큰제비갈매기 한 마리가 지난 6월 1일 부리에 걸린 플라스틱 조각을 털어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동료 새들이 날아와 날개를 퍼덕이며 걱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EPA연합뉴스

대만 이란현 란양강에서 큰제비갈매기 한 마리가 지난 6월 1일 부리에 걸린 플라스틱 조각을 털어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동료 새들이 날아와 날개를 퍼덕이며 걱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EPA연합뉴스

여전한 기업들의 ‘녹색 거짓말’

기업이 경제적 이윤을 목적으로 친환경적 특성을 허위·과장해 상품을 광고하거나 홍보하는 행위를 ‘그린워시’라고 한다. 1986년 미국의 환경론자 제이 웨스터벨드가 처음 사용한 말로 ‘녹색’과 ‘세척’의 합성어다. ‘위장환경주의’라고도 한다.

캐나다 환경조사업체 테라초이스는 숨겨진 모순, 증거 부족, 모호성, 부적절한 정보 제공, 유해성의 축소 등을 그린워시의 유형으로 제시했다. 숨겨진 모순은 종이 재활용처럼 만드는 과정에서 유해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경우 친환경적이면서 동시에 환경파괴적인 모순이 존재함을 뜻한다.

테라가 주장하는 ‘청정’이 생산과정까지 포함한다면, 호주에서 한국까지 맥아를 해상운송하면서 발생한 미세먼지나 온실가스를 고려할 때 모순이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제품을 소비함으로써 미세먼지와 같은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테라의 광고는 그린워시라기보다는 친환경의 이미지를 차용한 정도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사업의 속성상 친환경을 내세울 수 없는 기업이 친환경을 내세우거나 친환경을 약속하면서도 뒤로는 기후변화 대응에 반대하는 로비활동을 하는 기업들이다. 전자의 사례로 네슬레를 들 수 있다. 이 회사의 캡슐커피 ‘네스프레소’는 알루미늄과 플라스틱 재질로 이루어져 환경피해가 크다.

<위장환경주의>(카트린 하르트만 지음·에코리브르 펴냄)에 따르면 네슬레의 네스프레소에서 배출하는 빈 알루미늄 캡슐 쓰레기만 매년 최소 8000톤에 달한다. 알루미늄은 보크사이트라는 광석에서 얻는데 이를 얻기 위해 호주와 브라질, 인도네시아의 열대림이 사라지고 있다. 1톤의 알루미늄을 생산하는 데 2인 가구가 5년 넘게 사용할 수 있는 전기가 든다.

네슬레의 홈페이지에는 ‘지속가능한 품질’이라는 이름 아래 “한 잔의 커피는 사회와 환경에 많은 가치를 더합니다”라고 홍보하고 있다. 또한 “책임감을 가지고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네슬레는 그 연장선에서 알루미늄 캡슐 재활용률을 2020년까지 100%로 올리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수거는 오로지 고객들의 몫이다. 현재 재활용한 알루미늄을 얼마나 쓰는지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네슬레가 지난해 생산한 플라스틱 포장재도 170만톤으로 전년보다 13% 증가했다. 지난해 10월 환경단체 브레이크프리프롬플라스틱의 조사에 따르면 네슬레는 코카콜라, 펩시코에 이어 가장 많은 플라스틱 쓰레기를 배출하는 기업으로 나타났다. 그린피스 측은 “소비재 기업들이 플라스틱을 100% 재활용 소재와 재사용 가능 용기로 바꾼다고 하지만 일회용 플라스틱을 완전히 포기하는 게 아니고 재활용과 재사용에도 한계가 많은 상황에서 마치 굉장한 걸 하는 걸로 홍보하고 있다”고 밝혔다.

프랑스 아마존, 재고 상품 300만개 폐기

대기오염 저감장치가 있는 석탄화력발전을 ‘깨끗한 석탄’으로 홍보하는 것도 위장환경주의의 한 예이다. 그러나 그린워시의 최악의 사례를 꼽는다면 정유회사를 들 수 있다. 영국 석유 대기업인 브리티시 페트롤륨(BP)은 재생에너지와 청정에너지에 투자를 늘릴 것이라고 말하지만, 기후변화 대응을 늦추기 위한 로비활동에만 지난해 5300만 달러(약 624억원)를 썼다. 기업의 로비활동을 추적하는 데이터 조사기관 인플루언스맵의 지난 3월 보고서에 따르면 BP와 로열더치셸, 엑손모빌, 쉐브론, 토털 등 상위 5개사가 쓴 로비자금을 합하면 2억 달러가 넘는다.

<모두를 위한 환경개념사전>(2015·한울림)의 공저자인 신지혜 박사는 “자동차나 정유 등 화석연료가 기업의 주된 사업인 회사에서 개발 방식을 친환경적으로 하거나 온실가스를 덜 배출하거나 신에너지 개발에도 일정 부분을 투자하겠다고 하면서 마치 자신들이 환경을 생각하는 기업인 것처럼 선전할 때 그린워시에 속한다”고 말했다.

아마존은 2030년까지 배송물량의 절반에 대해 이산화탄소 배출을 제로 수준으로 억제한다는 목표를 밝혔다. 하지만 이렇게 친환경을 내세우면서도 프랑스 아마존에서만 지난해 재고품 300만개를 파기했다. 아마존 창고에 제품을 보관하는 수수료는 ㎥당 26유로에서 6개월 후 500유로, 1년 후 1000유로로 급증한다. 판매자가 재고품 파기를 요청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비슷한 관행이 독일과 영국, 중국에서도 보고됐다. 멀쩡한 제품을 불태울 바에야 차라리 기부하라는 비판이 저절로 나왔다. 논란이 커지자 프랑스에서는 판매되지 않는 재고와 미사용 제품의 폐기를 금지하는 법안이 준비되고 있다.

애플 역시 환경단체의 감시망을 벗어나지 못했다. 환경을 생각한다면 재생에너지 사용에만 공을 들일 게 아니라 수리를 용이하게 하고, 내구성을 높여 제품의 수명을 연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애플의 무선이어폰 에어팟이 도마에 올랐다. 전자기기 수리 용이성을 분석하는 아이픽스잇의 3월 조사결과를 보면 에어팟2는 전작과 함께 수리 용이성에서 0점을 받았다.

아이픽스잇은 “에어팟2는 장치에 손상을 주지 않고는 내부 부품에 접근할 수 없고, 배터리 교체도 불가능해 제품을 ‘소모품·일회용품’으로 만든다”고 설명했다. 자가 수리가 불가능해 공인 수리업체에서 최소 5만9000원을 들여 수리하거나 새 제품을 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인성 그린피스 캠페이너는 “전자제조사들이 재생가능에너지와 재활용 원료를 사용해 제품을 제조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수리와 업그레이드로 제품을 오래 사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설계해야 한다”며 “애플의 경우 재생에너지와 재활용 원료에 대해서는 선도적이지만 제품의 수리성과 관련해선 여전히 매우 보수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린워시의 위험성은 크다. 그린워시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면 정말 친환경적인 실천을 하려는 기업과 소비자들의 노력이나 의지까지 의심받게 된다. 이인성 캠페이너는 “기업들이 환경 비전을 발표하는 것만으로는 진정성을 증명하긴 어렵고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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