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촛불 3년,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나

2019.10.28 20:36 입력 2019.10.28 20:37 수정

2016년 10월29일 오후 6시 서울 청계광장에 3만개의 촛불이 켜졌다. 닷새 전 최순실이 태블릿PC로 국가기밀인 대통령 연설문 44건을 주고받은 게 공개되고, 다음날 박근혜 대통령이 “개인적 인연”을 시인하며 대국민사과를 한 뒤 성난 민심이 폭발한 것이다. 퇴근길 시민들이 가세하고, ‘대통령 탄핵’ 구호가 시작된 날이다. 주말마다 전국을 밝힌 촛불은 11월12일 100만명을 넘었고, 국회 탄핵소추를 앞둔 12월3일엔 232만명에 달했다. 광장엔 세월호 참사부터 백남기 농민 사망, 역사교과서 국정화, 노동 차별과 교육 특혜까지 온갖 적폐들이 쏟아졌다. 정치권력을 바꾸고, 미생(未生)이 없는 ‘나라다운 나라’를 꿈꾸며, 평화롭게 행진한 촛불은 다음해 4월29일까지 23차례 이어졌다. 독일 에버트재단은 2017년 ‘촛불집회에 참여한 대한민국 국민’에게 인권상을 주며 “가혹한 겨울 날씨에 거리로 나와 민주주의에 대한 의지와 헌신을 모범적으로 드러냈다”고 반추했다.

1700만 촛불의 함성이 터진 지 3년. 시민들은 답답하고 착잡한 심정을 숨기지 않는다. 국정농단·정경유착·사법농단 세력의 ‘당연한 단죄’를 넘어 세상과 삶이 달라지길 바랐던 그 겨울의 꿈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촛불의 첫 지향점인 공정과 정의는 ‘조국 사태’라는 돌부리에 걸렸고, 대통령 취임사에 담긴 적잖은 정책들은 유실되거나 표류하고 있다. ‘노동존중사회’를 표방했던 정부에서 비정규직 제로-최저임금 인상-근로시간 단축 로드맵은 궤도를 벗어났다. 산재 악몽은 끊어지지 않고, 노사정의 사회적 대화는 아직도 겉돌고 있다. 촛불광장에서는 6가지 민생 요구가 있었다. 교육비·주거비·의료비·통신비·교통비·이자비용 인하였다. 정부가 답을 주지 않으면, 사회적 약자일수록 이 땅에서의 삶이 버거워질 문제들이다. 민주주의 확장도, 뒤늦게 시동 걸린 검찰개혁과 선거개혁도 민생의 첫 단추를 끼울 때만 공고히 나아갈 수 있다.

진보성향 시민단체들은 28일 3년 전 촛불을 들었던 광화문광장에서 “반민주 반민생 반평화 적폐들을 일소하고 사회의 전면적 개혁을 통해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달라는 게 촛불이었다”며 정부의 ‘대오각성’을 촉구했다. 촛불 민의 실현이 지체되고, 역주행 조짐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촛불 깜빡이’를 켜고 우왕좌왕하고, ‘큰 개혁’을 하지 못하는 정부를 향해 호루라기를 분 셈이다. 촛불의 분열과 위기는 초심에서 멀어진 정부가 자초했다. 주도면밀한 개혁을 못했다는 각성, 벼랑 위에 섰다는 비상한 각오가 없다면 ‘촛불개혁’과 ‘촛불정부’를 명예롭게 쓸 수 있는 시효도 머지않았다는 것을 정부는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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