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요즘 시대, 이웃을 만나는 방법

2020.05.15 16:16 입력 2020.05.15 19:00 수정
이인규

삭막할 줄 알았는데 ‘동네 친구’가 생겼다

서울 송파구의 한 오피스텔 입주자들은 ‘오픈채팅방’을 통해 거주 환경을 이야기하고 일상을 나누며 ‘이웃’이 되어가고 있다. 입주자들이 제공한 사진과 들려준 일화를 바탕으로 채팅방 이미지를 재구성했다.

서울 송파구의 한 오피스텔 입주자들은 ‘오픈채팅방’을 통해 거주 환경을 이야기하고 일상을 나누며 ‘이웃’이 되어가고 있다. 입주자들이 제공한 사진과 들려준 일화를 바탕으로 채팅방 이미지를 재구성했다.

얼마 전, 친구가 독립했다. 자주 연락을 주고받는 절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SNS로 늘 접하던 그의 안부가 통 보이지 않자 조금씩 걱정이 되었다.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인데 낯선 동네, 낯선 집에서 혼자 지내는 게 외롭거나 무섭지는 않을지 걱정이 들었다. 친구에게 오랜만에 연락해 안부를 물으니 다행히도 “새 동네에 적응 잘하고 있답니다!”라는 반가운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고는 생각지도 못한 ‘오피스텔 이웃 자랑’을 시작했다. 그가 이사 간 오피스텔에 사는 주민들의 ‘단톡방’이 있는데, 거기서 동네 맛집 정보도 교환하고, 잘 안 쓰는 물건이나 음식을 나누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오피스텔은 삭막하고 무섭다고만 여겼던 나의 기억과는 너무 다른 ‘귀여운’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요즘 같은 시대에도 이런 이웃 관계가 가능하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고 반가웠다. 그래서 그분들의 이야기를 글로 쓸 수 있도록 부탁드렸고, 고맙게도 다들 흔쾌히 수락해주셨다. 단, 나 역시 본명이 아닌 ‘닉네임’으로 들어오라는 조건이었다. 덕분에 오픈채팅방에 들어가 ‘요즘 시대의 인터뷰’를 진행해 보았다.

입주 문제 논의 위해 만든 ‘단톡방’
1인 거주자 중심 커뮤니티로 변모
공동구매·음식 나눔·일상 공유도

■ 오피스텔에서 만난 ‘동네 친구’

이들이 사는 곳은 서울 송파구 ‘문정 법조타운’에 새로 지어진 오피스텔 중 하나다. 원룸, 복층형 원룸, 그리고 흔히 ‘원룸 원거실’이라 불리는 작은 규모의 공간들이 주를 이루다 보니 1인 혹은 2인이 살아가는 가구가 대부분이다. 동네 자체가 새로 조성된 곳이다 보니 다들 비슷한 시기에 타지에서 이주해 와서 이 지역에 적응 중이다.

입주민들의 온라인 모임이 생기게 된 계기는 오피스텔 상가 내 교회 입주를 반대하는 주민 의견을 모으기 위해서였다. 소음과 주차 문제로 거주민들이 받게 될 피해를 우려해 누군가 오픈채팅방을 열고 그곳으로 들어갈 수 있는 QR코드를 프린트해 엘리베이터에 비치해두었다. 덕분에 같은 건물에 사는 이들이 하나둘 온라인 공간에 모이게 되었고, 대책 회의를 위한 오프라인 모임도 진행됐다. 다행히 교회의 내부적인 문제로 입주는 무산되었고, 이미 만들어진 주민들의 단톡방은 사라지지 않고 건물 하자 문제나 오피스텔 관리실에 건의할 사항 등을 논의하며 계속 이어졌다. 최근 새로 이사 오는 이들은 오피스텔 관련 정보를 검색하다 카페와 오픈채팅방을 알게 되어 뒤늦게 합류하기도 한다.

특정 지역이나 단지의 주민들이 온라인상에 모임을 만드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이미 익숙한 일이긴 하다. 아파트 단지의 입주자 모임이나 재건축조합의 온라인카페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 오피스텔 모임의 다른 점은 참가자들의 연령대가 낮아지고 온라인채팅이 보편화되면서 실시간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오픈채팅’으로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변화되었다는 것. 그리고 재산 증대를 위해 집중하는 ‘소유자’들의 모임이 아닌, ‘거주 환경’을 이야기하고 ‘일상’을 나누는 데 더 집중하는 ‘거주자’들의 모임이라는 것. 그리고 주로 ‘1인 가구’가 주축이 되었다는 점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 함께 사는 1인 라이프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물어보니,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쏟아져 나왔다. 제일 먼저 줄줄이 이어진 것은 ‘공구(공동구매)’ 목록이었다. ‘대구꿀호떡’을 시작으로 감자, 아스파라거스, 닭강정, 고구마, 에어서큘레이터, 마카롱, 꽃게까지! 사람들이 모이니 1인 가구는 엄두를 내기 쉽지 않은 ‘10㎏ 상자 단위’를 과감하게 주문할 수 있게 되었다. “김치찌개 많이 했는데 드실 분?”이라는 글에 “저요!”라고 답하면 갓 끓인 김치찌개를 나눠주기도 하고, 낚시가 취미인 입주자는 직접 잡아온 생선을 회 떠서 돌리기도 한다.

음식이나 물건뿐만 아니라 각자의 소소한 일상도 공유한다. 인터뷰하는 동안에도 운치 있는 풍경 사진을 단톡방에 올리며 친구랑 캠핑 왔다는 소식을 전하는 이가 있었고, ‘우리 송이 미용했어요!’라며 단발머리가 된 귀여운 강아지 사진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어서 파란 눈이 매력적인 고양이 ‘쉐리’ 사진, 테이블 위에 자리한 꽃 두 송이 사진 등 함께 사는 반려견, 반려묘, 반려식물의 사진을 공유했다.

온라인에서의 연결은 오프라인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강아지 ‘송이’를 알아보는 이웃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게 된다고 한다. 비상 엘리베이터 홀의 문이 안쪽에서는 열리지 않는다는 걸 몰랐던 누군가가 갇히는 일이 있었는데, 단톡방에 도움을 요청해서 무사히 탈출한 적도 있었다. 갑자기 화재경보기가 울렸을 때에는 단톡방도 활성화되어 다 같이 안전하게 대피했다고 한다.

이들에게 이 모임은 어떤 느낌을 주고 있을까. 서울 생활은 처음이라는 ‘히롤’님은 서로 따스하고 선한 영향을 주고받는 게 너무 좋다고 했다. 낯을 많이 가려서 아직 오프라인으로는 누구도 만난 적 없다는 ‘명란마요’님은 모르는 동네로 이사 와서 초창기에 도움을 많이 받았다면서 “익명의 친구들이 있는 기분이라 외로운 기분도 덜하고, 같은 건물에 사는 사람들이다 보니 공동의 ‘무언가’가 생기는 것 같기도 해요. 만약 그냥 막연한 동네 모임인 ‘문정동 오픈톡’이었으면 좀 달랐을 것 같아요”라며 이 모임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payday’님은 “얼굴을 본 적 없는 사이라도 친해질 수 있고, 가벼우면서도 필요한 인간관계를 충족시킬 수 있다”면서 ‘현대사회의 새로운 커뮤니티 생활상’인 것 같다고 이 모임을 평했다.

여전히 서로 낯을 가리긴 하지만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고 교류하는
가볍고 넓은 관계의 ‘새로운 이웃’

■ 낯 가리는 훈훈한 사이

흥미로운 건, 이들은 여전히 서로 낯을 가린다는 점이다. 몇 호에 사는지 정확하게 아는 경우는 드물고, 그러한 정보를 노출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각자의 나이, 성별, 하는 일 등은 계속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드러나기도 하지만 일부러 밝히지는 않는 분위기다. ‘나눔’을 진행할 때도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전해주기보다는 ‘비대면’을 선호한다. 예를 들어 감자 10㎏을 여덟 사람이 공구했다면, 이를 8개로 소분하여 특정 장소에 놔두고 “4층 비상 엘리베이터 앞에 뒀어요”라고 글을 올린다. 그러면 공구에 참여한 사람들이 와서 조용히 가져가고 온라인으로 입금하는 방식이다. 조금 친해져서 몇 호에 사는지 아는 사이가 되면 서로의 우편함에 넣어주거나 집 문고리에 걸어두기도 한다. 여기서 좀 더 가까워지면 오프라인에서 삼삼오오 만나기도 하지만, 대대적인 ‘정모’나 ‘벙개’는 열리지 않는다고 한다.

오피스텔 입주자 전체가 모여 있는 오픈채팅방은 150명에 가까울 정도로 규모가 크고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한 방에 모이다 보니 선거철이거나 젠더 이슈, ‘n번방’ 같은 사회문제가 주제일 경우 때로 날선 말들이 오가기도 한다. 또한 실제로 대화에 참여하는 사람은 15~20명 정도에 불과해 말하는 사람보다 지켜보는 사람이 많다보니 아무래도 일상 얘기를 마음 편히 하기에는 불편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마음이 잘 맞는 이들끼리 자연스럽게 따로 방을 개설하기도 한다. 이 인터뷰도 새로 만들어진 별도의 방에서 진행되었다. 남녀 비율이 1대 3 정도 되는 입주자 20여명이 소소한 일상을 나누고 있었다.

이처럼 ‘서로 모르는 사람들의 모임’이 요즘 점점 늘어가고 있다. 지역을 기반으로 동네 친구를 연결해주는 애플리케이션도 있고, 독서, 운동, 영화 등 취미를 중심으로 한 모임도 성행하고 있다. 하지만 지역별 모임은 개인정보를 인증해야 해서 꺼려진다는 의견도 있었고, 모임의 원래 목적보다는 ‘이성(異性) 만남의 장’으로 노리고 접근하여 물을 흐리는 이들도 많아서 불편해지는 경우가 잦다고 한다. 또 익명을 악용해 사기를 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고 괜찮은 사람을 가려가며 교류하는 것이 중요해지는 이유다. 이처럼 송파구의 한 오피스텔 입주자들은 ‘요즘 시대에 관계를 맺는 새로운 방법’에 관한 각자의 노하우를 쌓아가고 있었다.

■ 익명의 공간을 바꾸는 익명의 관계

10년 전쯤 오피스텔 원룸에서 산 적이 있다. 맘에 드는 공원이 바로 앞에 있고 회사도 가까워서 좋았다. 하지만 굳게 닫힌 현관문이 줄지어 이어지는 오피스텔의 긴 복도는 누가 사는지 알 수 없는 ‘익명의 공간’이었고, 그곳에 내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 나에겐 두렵고 부정적인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만약 그 오피스텔에도 지금 이들처럼 가볍고 일상적인 교류를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그럴 수 있는 누군가가 가까이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기만 해도’ 한결 마음을 놓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 이런 모임은 무엇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을까? 언뜻 ‘이웃’이라는 말이 연상됐지만, 우리 사회에서 이웃이라고 하면 흔히 ‘숟가락 개수도 아는 사이’라는 관용구를 떠올리게 되다 보니 이웃은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들에게 직접 물어보았다. 당연히 ‘이웃’이 잘 어울린다는 의견이었다. 다만 예전처럼 깊고 좁은 관계가 아니라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가볍고 넓은 ‘새로운 이웃’의 개념인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사람들은 도시 속에서 낱알로 흩어져버린 듯한 느낌을 받지만, 어쩌면 우리는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관계와 삶의 방식을 만들고 배워가는 과정인지 모르겠다. 이번에 초대받은 오피스텔의 오픈채팅에서 마주한 따뜻한 활기에서 작은 희망을 느낄 수 있었다.

▶필자 이인규

[안녕, 둔촌 프로젝트 이인규가 만난 다른 집](7)요즘 시대, 이웃을 만나는 방법


둔촌주공아파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곳에서의 좋았던 시간과 기억을 간직하기 위해 <안녕, 둔촌주공아파트>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다큐멘터리 영화 <집의 시간들>을 공동기획했다. 그동안의 작업을 통해 집에 대한 고정관념에 ‘작은 균열’을 냈다는 것에 작은 의미를 느끼며, 이제는 비슷하게 ‘작은 균열’을 내는 이들을 찾아가 ‘당신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가요’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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