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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국회 열리자마자 쏟아지는 졸속법안들 걱정된다

입력 : 
2020-06-11 00: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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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국회가 문을 연 지 열흘 만에 발의된 법안이 300건을 넘어섰다. 속도전 양상이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10일 오후 3시 기준 발의된 법안은 326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은 2만4141건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지금 같은 추세라면 이 기록을 쉽게 뛰어넘을 것으로 보인다. 의원들이 경쟁적으로 속도와 양에 치중하면서 졸속·부실 우려가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텔레그램에 여당 의원 176명이 참여한 단톡방을 개설하고 법안 발의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정 의원이 법안 요지서를 띄우면 단 2분 만에 동료 의원들이 공동발의에 동의하는 식이다. 법안 발의 최소 요건인 공동발의자 10명을 채우는 데는 1시간이면 충분하다고 한다. SNS를 법안 발의 소통 창구로 사용할 수는 있다. 그러나 숙고와 논의 없이 SNS를 '입법 자판기'처럼 활용하는 것은 편의주의에 빠져 입법 가치를 망각하는 것이다. 입법은 발의나 동의에 있어 신중해야 하는데 품앗이하듯 무성의하게 이뤄지고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이전 국회에서 폐기된 법안을 짜깁기하거나 일부 수정해 재활용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여야 간 줄다리기 때문에 처리가 안 된 민생 관련 법안이야 재발의할 수 있지만 지난 국회에서 폐기된 처리 가능성이 낮은 법안을 문구만 바꿔 '건수 부풀리기'에 활용하는 것은 낯 뜨겁다. 이 같은 입법 남발을 막기 위해서는 의정활동 평가를 법안 발의 건수로 하는 관행부터 없애야 한다.

졸속 입법 증가의 가장 큰 문제는 법안 처리의 실효성을 떨어뜨린다는 점이다. 20대 국회가 발의한 법안 가운데 통과율은 36%(8799건)로 역대 최악이었다. 발의 법안이 폭증하다 보니 중요 법안에 대해 진지한 논의와 심사를 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힘든 것이다. 법안을 많이 발의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질 높은 법안을 제출하는 것이다. 성급하게 만들어진 법의 피해는 오롯이 국민에게 돌아온다. 졸속 논란이 일었던 'n번방 방지 통신 3법'은 산업계를 옥죄는 규제를 담고 있는데도 결국 20대 국회에서 처리돼 부작용이 예고되고 있다.

의원들 스스로 보여주기식, 실적 채우기식 졸속 법안 발의는 자제해야 한다. 개개인이 독립된 입법기관이라는 점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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