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회적 비난에도 여전한 재벌의 ‘일감몰아주기’

2019.09.05 20:39 입력 2019.09.05 20:41 수정

일감몰아주기 규제의 사각지대에서 이득을 챙기는 기업이 줄지 않고 있다. 5일 공정거래위원회는 ‘2019년 공시대상기업집단 주식소유 현황’을 발표했다. 공시대상기업집단이란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의 기업을 말한다. 일단 대상기업으로 지정되면 대주주와 그 일가는 일감몰아주기를 통한 사익편취에 대한 감시와 규제를 받게 된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대주주 일가의 지분 30% 이상 기업이 대상이다.

문제는 현행법의 맹점을 악용해 대주주의 지분을 30% 아래로 유지하면서 규제를 회피하는 회사들이다. 이른바 ‘사익편취규제 사각지대 회사’다. 이번 발표를 보면 규제대상은 47개 대기업집단의 219곳이다. 지난해보다 12곳 줄었다. 그러나 사익편취규제 사각지대 회사는 지난해와 같은 376곳 그대로다.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피해 혜택을 누리는 곳들이다.

재벌의 일감몰아주기를 문제 삼는 이유는 불공정성 탓이다. 외부 기업이 가질 수 있는 공정한 사업기회를 빼앗고, 그에 따른 이익을 총수일가가 독식하기 때문이다. 부당한 이익은 재벌 대물림용 자산이 된다. 예컨대 현대차그룹의 차기 승계자인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은 2001년 그룹 물류를 담당하는 현대글로비스 설립 때 30억원을 투자해 지분을 매입했다. 그러나 일감몰아주기로 회사가 커지면서 현재 지분가치로 볼 때 500배 이상의 차익을 보았다. 현대차그룹은 ‘0.01%포인트 차’로 규제를 회피했다. 현대차는 ‘총수일가 지분 30% 이상’이란 기준을 피하기 위해 현대글로비스와 현대이노션 지분을 29.99%로 맞추었다. SK D&D, 롯데쇼핑, 롯데제과 등도 유사한 방법으로 규제를 피해가고 있다.

그러나 법망을 비웃는 재벌기업에 대한 규제는 지지부진하다.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안이 지난해 11월 발의됐다. 일감몰아주기 대상이 되는 총수일가 지분을 20%로 낮추고, 규제대상을 자회사로 확대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10개월이 넘도록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는 ‘대기업 일감의 적극적인 개방’을 강조했다.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재벌개혁의 시급한 과제로 생각한 것이다. 재벌의 일감몰아주기 규제는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니다. 정치권은 공정거래법 개정에 적극 나서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실질적인 재벌개혁으로 나가는 길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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