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사이언스] 신약성서의 역사성을 입증하는 10가지 고고학적 발굴들(하)
[WIKI 사이언스] 신약성서의 역사성을 입증하는 10가지 고고학적 발굴들(하)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0.06.14 07:11
  • 수정 2020.06.14 07: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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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고고학을 전문으로 다루는 웹사이트 ‘바이블아키알러지리포트(biblearchaeologyreport.com)’는 연구자 브라이언 윈들이 간추린 내용을 바탕으로 신약성경의 기록들이 실재했다는 고고학적 증거 10개를 제시했다. (상편에서 이어집니다)

6) 성전 비문(경고문과 나팔부는 장소)

예수와 초기 교회 신도들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보낸 시간을 고려하면 이 유대인들의 성지와 관련된 발굴은 무엇이든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제2성전(헤롯 성전)은 AD 70년 로마인들에 의해 파괴되었다. 파괴는 철저했고, 뒤이어 이뤄진 성전산(Temple Mount) 정상에서의 새로운 건축이 폭넓은 지역에 걸쳐 이루어졌기 때문에 1세기에 자리 잡고 있던 원래 성전의 흔적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와 성전산 그 자체에 대한 발굴이 제한되어있다는 이유가 합쳐져서 제2성전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유적들은 매우 드물다. 하지만 드물기는 해도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1세기 성전의 복합단지 내에 있었던 특이한 비문이 발견된 적이 있다.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 중인 경고가 담긴 성전 비문. 비문 내부의 붉은 흔적은 이 비문의 글씨들이 한때는 아주 붉게 칠해져있었음을 보여준다.(사진 출처 : oncenawhile / Wikimedia Commons / CC-BY-SA-3.0)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 중인 경고가 담긴 성전 비문. 비문 내부의 붉은 흔적은 이 비문의 글씨들이 한때는 아주 붉게 칠해져있었음을 보여준다.(사진 출처 : oncenawhile / Wikimedia Commons / CC-BY-SA-3.0)

a. 성전의 경고성 비문

성전 복합단지 내에는 ‘이방인의 궁정(court of the Gentiles)’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자리는 이방인들이나 의식(儀式)적인 면에서 불결한 사람들이 성전 자체에 접근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장소였다.

이 이방인의 궁정과 성전 안뜰 사이에 벽이 설치되어있었다. 유대의 역사가 요세푸스는 이 벽에 대해 자세한 기록을 남겨 놓았는데, 벽 위에는 ‘이방인이 넘어오면 사형에 처한다’는 경고문이 헬라어와 라틴어로 새겨져있었다고 한다.

1871년 프랑스의 고고학자 찰스 클레르몽 가뇌는 7줄의 경고문이 새겨진 석회석판을 발견했다. 요세푸스가 묘사했던 바로 그 벽의 일부분이었다. 그 경고문은 다음과 같다.

‘이방인은 성전 주위의 난간과 울타리를 넘을 수 없다. 만일 넘어오다가 붙잡히는 경우 누구라도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또, 1935년에는 경고문이 새겨진 또 다른 비문이 사자의 문(Lion’s Gate) 인근의 예루살렘 구시가지 외곽에서 발견되었다.

예수와 제자들은 여러 차례 이 경고성 비문을 지나쳐서 통과했을 것이다. 성전의 경고 비문은 왜 유대인들이 바울을 보고 흥분했는지를 설명해주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유대인들은 바울이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를 성전 안뜰에 데리고 들어와서 성전을 욕보였다고 착각했던 것이다(사도행전 21장 28-29절). 바울이 에베소서 2장 14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분리의 벽’이 허물어졌다고 쓴 사실을 보면 바로 이방인의 궁정과 성전 안뜰을 구분 짓는 분리의 벽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성전산(Temple Mount) 기저에서 발견된 비문에는 ‘나팔을 부는 장소’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이로써 이 비문이 사제들이 나팔을 불었던 장소에서 출토되었음을 알 수 있다.(사진 출처 : Talmoryair /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성전산(Temple Mount) 기저에서 발견된 비문에는 ‘나팔을 부는 장소’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이로써 이 비문이 사제들이 나팔을 불었던 장소에서 출토되었음을 알 수 있다.(사진 출처 : Talmoryair /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b. 나팔을 부는 장소의 비문

1968년 고고학자 벤자민 마자르는 AD 70년에 파괴된 성전 잔해 더미 속에서 3피트 높이의 벽돌 하나를 발견했다. 이 벽돌에는 ‘나팔을 부는 장소(To the place of trumpeting)’라는 의미의 미완성 문장이 새겨져있었다. 이 벽돌은, 요세푸스가 묘사했듯이, 분명히 사제들이 나팔을 부는 난간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었을 것이다.

위 두 가지 비문들은 제2성전의 실재를 입증하는 틀림없는 고고학적 증거가 되고 있다. 나아가 1세기 유대인들이 최고로 숭배하던 성스러운 장소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자료가 되고 있다.

예수 재판을 주도했던 대제사장 가야뱌의 유골함. 이 안에서 60살 먹은 남성의 유골이 나왔다.(사진 출처 : deror_avi / Wikimedia Commons / GNU License 1.2)
예수 재판을 주도했던 대제사장 가야뱌의 유골함. 이 안에서 60살 먹은 남성의 유골이 나왔다.(사진 출처 : deror_avi / Wikimedia Commons / GNU License 1.2)

7) 가야바의 납골함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흔적과 유적을 발견하는 일은 언제나 의미심장하다.

1990년 한 건설팀이 예루살렘 인근에서 워터파크를 조성하다가 1세기 묘지의 상석(上石)을 건드렸다. 급히 고고학자들이 투입되어 1세기에 사용되었던 다양한 종류의 납골함들을 발굴했다. 이 중에는 ‘가야바의 아들 요셉’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화려한 납골함이 하나 있었다. 이 납골함 안에는 60살 먹은 남성의 뼈를 포함해서 모두 6명의 유골이 들어있었다. 전문가들은 이 노년의 남성이 가야바라고 믿고 있다.

복음서에 따르면 가야바는 예수의 재판을 주도했던 대제사장이었다(마 26:3, 57 ; 눅 3:2 ; 요 11:49). 고대 유대의 역사가 요세푸스는 가야바의 풀 네임이 요셉 가야바(Joseph Caiaphas)이며, AD 18~36년 사이 대제사장을 역임했다고 기록하고 있다(「유대 고대사」 18:35 & 18:95 ).

가야바는 그의 가족 이름(성씨)인 가야바로 널리 불린 듯하다. 이는 마치 헤롯 대왕의 많은 아들들이 그냥 단순히 헤롯이라고 알려진 것과 같다(헤롯 안티파스, 헤롯 아켈라오 등등).

많은 학자들은 이 납골함이 예수 재판에서 주요한 역할을 했던 대제사장의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가야바의 납골함과 유골들은 성경에 등장하는 중요한 인물이 실재했음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징표이다. 가야바의 납골함은 예루살렘에 있는 이스라엘 박물관에 전시되어있다.

고린도에서 발견된 에라스도의 비문. 7인치 높이의 비문은 한때 청동으로 채워져 있었다.(사진 출처 : Farrell Jenkins)
고린도에서 발견된 에라스도의 비문. 7인치 높이의 비문은 한때 청동으로 채워져 있었다.(사진 출처 : Farrell Jenkins)

8) 에라스도 비문(Erastus Inscription)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서 로마 사람들에게 편지를 쓸 때 그는 ‘도시의 재무관인 에라스도’가 인사를 보낸다고 적었다. 헬라어로 재무관은 oikonomos라고 하는데, ‘책임자’나 ‘집사(재산 관리인)’를 의미한다. 이 oikonomos라는 용어는 도시의 고위 관리나 심지어는 가정의 ‘집사’ 일을 맡아보는 노예에게도 붙일 수 있었다. 사도 바울은 이 용어를 에라스도의 공식 직함보다는 에라스도가 하는 일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듯하다.

1929년 고린도에서 발굴 작업 중이던 고고학자들이 극장 옆에서 커다란 포석(鋪石) 위에 새겨진 비문을 발견했다. 1세기 중엽에 제작된 이 유물에는 ‘자비(自費)로 도로를 깐 조영관(造營官) 에라스도를 기념하며’라는 문구가 새겨져있다.

7인치 높이의 비문 음각글씨 내부는 현재는 비어있지만 한때는 청동으로 채워졌을 것으로 짐작된다.

한편, 조영관(造營官)이라는 직책은 공공건물과 도로를 유지·보수하며, 시장(市場)을 감독하고 지방의 운동 경기를 관장하는 선출직 관리였다. 그가 관리하던 운동 경기 중에는 고린도에서 2년마다 한 번씩 거행되던 지협 경기대회(Isthmian Games)도 있었다.

조영관과 oikonomos가 정확히 똑같은 직책은 아니었지만, oikonomos라는 말에는 조영관이 하는 업무가 내포되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언급한 에라스도는 자비를 들여 포석을 깐 고린도의 고위 관리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2005년과 2006년에 발굴된 실로암 연못의 모습(사진 출처 : BiblePlaces.com)
2005년과 2006년에 발굴된 실로암 연못의 모습(사진 출처 : BiblePlaces.com)

9) 실로암 연못

요한복음 9장에는 예수가 진흙을 개서 눈에 바르는 방식으로 한 장님을 치료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예수는 이 장님을 치료한 후 ‘실로암 연못’으로 가서 눈을 씻으라고 명한다.

예루살렘 방문객들은 5세기에 지어진 또 다른 비잔틴 양식의 실로암 연못을 오랫동안 방문해왔다. 이 연못은 예수님의 이적을 기념하기 위해 비잔틴 제국의 황후 에우도키아가 건립했다.

이 비잔틴 연못은 기혼의 샘(Gihon Spring)에서 도시로 물을 끌어대는 수로인 히스기야 터널 끝에 위치해있다.

한편, 진짜 예수 시대 ‘실로암 연못’의 정확한 위치는 2004년 발굴 때까지는 의문의 장소로 남아있었다.

2004년 여름, 관개 시설을 보수하던 중 두 개의 고대 계단이 발견되었다. 고고학자들이 투입되었고, 발굴이 완료되자 커다란 연못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해서 적어도 20개의 계단이 도로에서 연못으로 내려가도록 만들어져있었다. 연못 한 귀퉁이에서 발견된 도자기 파편은 이 연못의 건축 연대가 AD 1세기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가 하면 남쪽 끝에서는 구약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거대한 벽과 연못의 한 부분이 추가로 발견되기도 했다.

학자들이 실재의 자리라고 오랫동안 믿어왔던 바로 그 장소, 즉 비잔틴 연못에서 70미터밖에 안 떨어져있는 곳에 원래의 ‘실로암 연못’이 위치한다는 사실과 이 연못의 연원이 예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사실로 미루어 이 연못이 장님이 눈을 씻었던 실재의 ‘실로암 연못’이라는 점이 확인되었다.

서기오 바울의 이름이 새겨진 비문이 비시디아 안디옥 인근에서 발굴되었다. 비시디아 안디옥은 서기오 바울 가문의 부동산이 있던 지역이었다.(사진 출처 : HolyLandPhotos.org)
서기오 바울의 이름이 새겨진 비문이 비시디아 안디옥 인근에서 발굴되었다. 비시디아 안디옥은 서기오 바울 가문의 토지가 있던 지역이었다.(사진 출처 : HolyLandPhotos.org)

10) 서기오 바울 비문(Sergius Paulus Inscriptions)

사도행전 13장에는 사울(바울)과 바나바가 키프로스를 향해 어떻게 전도 여행을 떠나게 되는지가 설명되어 있다. 그들은 바보(Paphos)에 도착하자마자 서기오 바울이라는 로마 총독을 만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만든다.

이와 관련해 누가(Luke)는 서기오 바울이 ‘총명한 사람(사도행전 13장 7절)’이라고 묘사한다. 서기오 바울이 1세기에 활약하던 저술가였으며, 대 플리니(Pliny the Elder)가 그의 저서 「자연사(Naturalis Historia)」를 통해 언급한 고위 관리 중 한 명이었기 때문에 그는 분명 총명한 인물에 속했을 것이다.

한편, 서기오 바울의 가족이 대가족이었으며 영향력이 큰 집안이었던 것으로 짐작되므로 로마 제국 전반을 통해 수많은 서기오 바울 비문이 발견되고 있다.

1877년, 바보(Paphos)로부터 멀리 떨어지지 않은 솔리(Soli)에서 ‘총독 바울(proconsul Paulus)’이라고 써있는 AD 54년경의 비문 하나가 출토되었다. 로마에서 발견된 또 다른 비문은 이보다 몇 년 뒤의 것으로 ‘루시오 서기오 바울(Lucius Sergius Paulus)’이라고 적혀있었다. 루시오 서기오 바울은 클라우디우스 황제 때 티베르 강을 감독하던 관리자 중 한 명이었다. 최종적으로 ‘루시오 서기오 바울(Lucius Sergius Paulus)’이라는 이름 때문에 유명해진 수많은 비문들이 비시디아 안디옥(Pisidian Antioch)에서 발견되었다.

이상의 세 가지 비문들은 성경 속의 기록들과 교차하면서 흥미를 유발시킨다.

▷ 솔리의 비문은 서기오 바울이 성경이 말하는 시기에 키프로스의 총독이었음을 입증해준다.

▷ 비시디아 안디옥의 비문은 서기오 바울 가문의 토지가 비시디아 안디옥 인근에 있었음을 나타낸다. 사도행전 13장에서 사울은 서기오 바울을 주님의 품으로 인도한 직후 바울로 이름이 바뀐다. 게다가 사도 바울과 바나바는 키프로스를 떠나자마자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향한다. 학자들은 이 점이 사울이 adrogation이라는 로마 풍습에 따라 서기오 바울 가문에 양자로 입적된 사실을 보여준다고 주장하며, 이에 따라 사울은 서기오 바울의 나머지 가족들과 친해지기 위해 비시디아 안디옥 행을 결심했다고 말한다.

▷ 마지막으로 로마의 비문은 서기오 바울이 총독이라는 영예로운 자리에서 도시의 강을 감독하는 비교적 중요하지 않은 자리로 강등되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그가 기독교로 개종한 사실은 이러한 강등을 설명해주는 근거가 되고 있다.

이 자료를 누가 어떤 식으로 해석하든지 수많은 서기오 바울 비문은 서기오 바울 가문의 역사성을 입증하며, 성경에서 언급된 바로 그 서기오 바울을 지칭한다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

(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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