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산재 사고’ 막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늦춰지는 동안에

2020.06.15 03:00 입력 2020.06.15 03:04 수정

지난 12일 세종시 공공주택 건설현장에서 거푸집 해체작업 중이던 러시아 이주노동자가 10층에서 추락해 숨졌다. 전날 울산에서는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일하던 50대 여성 노동자가 기계에 끼여 사망했다. 지난 9일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에서는 폭염 속 에어컨 설치작업을 하던 50대 노동자가 쓰러져 숨졌다. 지난 한 주에만 언론에 보도된 산재 피해사례들이다. 보도되지 않은 재해 사망자도 더 있을 것이다.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김용균씨 죽음을 계기로 지난 1월 산업안전보건법(일명 ‘김용균법’)이 시행됐다. 그러나 이후에도 산재 노동자는 좀체 줄어들지 않고 있다. 지난 1~3월 산재 사망자는 253명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더 늘었다. 지난 4월에는 이천물류센터 화재로 노동자 38명이 목숨을 잃었다. 현대중공업에서는 올 들어서만 5명이 숨졌다. ‘김용균법’만으로는 산재 사고를 막기에 역부족이란 의미다. 그래서 중대재해를 야기한 기업주를 처벌하는 등 강력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정의당이 21대 국회의 1호 법안으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발의했다. 3년 전 고 노회찬 의원이 발의한 같은 이름의 법안을 보완한 것이다. 이 법은 하청기업뿐 아니라 원청을 안전관리 주체로 규정하고 있다. 중대재해 발생 시에는 이들 안전관리자를 ‘기업 범죄’로 처벌토록 했다. 또 사고 입증책임을 사업주에게 부담하고 사고 사업장에 허가 취소까지 내릴 수 있도록 했다. 원안대로 통과되면 산재 사망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장치로 평가할 만하다.

문제는 국회의 법 제정 의지다. 한국의 산재 사망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1위다. 매일 노동자 3명이 산업현장에서 죽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를 막자는 ‘김용균법’은 국회 통과 과정에서 여야 의원들이 기업의 눈치를 보면서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이 되고 말았다. 솜방망이 처벌이나 시늉뿐인 행정조치만으로는 똑같은 비극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명실상부하게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법이 되어야 한다. 21대 국회는 죽음의 행렬을 막아달라는 노동계의 요구에 조속한 입법으로 응답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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