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날 오후 5시, '세계의 경제수도'로 꼽히는 미국 뉴욕 맨해튼 록펠러센터 인근 매디슨 애비뉴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목격됐다. 구급차가 사이렌을 울리자 옐로캡(노란색 택시)과 일반 차량 운전자들이 부리나케 길을 터줬다. 이곳에서 만난 벤자민 브랜드 씨는 "구급차나 소방차에 길을 비켜주는 운전은 매우 일찍부터 습관처럼 돼 있다"며 "운전면허를 딸 때 긴급 차량에 양보해야 한다는 교육을 철저하게 받는다"고 말했다.
사실 긴급 차량에 '조건반사적'으로 길을 비켜주는 것은 선진국에선 일상적인 광경이다. 주저하지 않는 양보가 경각에 놓인 위급 환자와 재난자를 살리는 희망의 밧줄이라는 사실을 운전자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교통안전선·배려양보선·질서유지선을 철저하게 지키는 '선선선' 선진의식은 매일경제 취재팀이 일본, 미국, 홍콩, 프랑스에서 '선지키는 선진사회' 해외 취재를 진행하는 내내 확인됐다.
간혹 좌회전이나 우회전을 위해 차선을 바꾸는 차량들은 좌우 깜빡이를 켜고 수초가 지나서야 움직였다. 운전대를 틀어 차선 변경을 시도하면서 동시에 깜빡이를 켜는 상당수 한국 운전자들과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도쿄 도심에서 만난 직장인 히구치 도무 씨(40)는 "차량 앞 부분을 들이밀면서 차선을 바꾸는 건 일본에선 굉장한 위협 운전으로 인식된다"며 "부득이하게 차선을 바꾸지 못하면 다소 먼 길을 돌아가는 쪽을 선택하는 게 옳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은 엄격하게 금기시된다"고 말했다.
도쿄도 일대 도심에서 직접 운전하며 지낸 2박3일 동안 경적 소리가 들린 건 단 한 번뿐. 그것도 골목길에서 대로로 접어드는 지점에서 옆에 행인이 지나가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의미로 뒤차가 가볍게 울린 경고 경적이었다. 일본 내에서도 활발하고 다혈질 성향이 강하다는 간사이 지방에서도 도로 위 배려 양보 정신은 비슷했다.
일본 특유의 줄서기 문화도 일본의 배려 양보 정신을 잘 보여준다. 퇴근 시간인 저녁 7시께 후쿠토신선, 신주쿠선, 마루노우치선 등 3개 전철 노선이 교차하는 환승역 신주쿠 산초메역은 한국 신도림역을 방불케 할 정도로 많은 사람이 오갔다. 그러나 탑승장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기획취재팀 / 뉴욕 = 황인혁 특파원 / 도쿄·오사카 = 백상경 기자 / 홍콩 = 김규식 기자 / 파리 =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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