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가곡 천년의 맥 잇는 불굴의 藝人
전통가곡 천년의 맥 잇는 불굴의 藝人
  • 박재홍기자
  • 승인 2013.07.14 19: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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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송당(永松堂) 조순자 명인

▲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歌曲) 예능보유자 영송당(永松堂) 조순자 명인

영송당(永松堂) 조순자 명인은 서울출생으로 1959년 중앙방송국(현 KBS) 국악연구생 2기로 선발돼 국악계에 첫 발을 내딛었다. 소남 이주환, 심소 김천홍 선생 등으로부터 가무악(歌舞樂)의 실기와 이론을 수학한 후, 지난 62년부터 국립국악원 연주원으로 활동했다. 64년 국립국악원 첫 해외연주인 도일공연에서 연주하는 등 눈부신 활약을 하다, 68년 인화여고 국악반 지도교사로 전직한 후 1970년 결혼과 더불어 제2의 고향인 마산에 정착하게 됐다. 이어 국악교육에도 남다른 열과 성을 지녔던 영송당은 73년 경남대를 시작으로 마산교대, 창원대, 부산교대, 경북대, 부산대, 전남대, 한국교원대 등에서 국악실기와 이론을 강의하는 한편, 교사들의 국악교육에도 앞장서 76년 경남국악교육연구회를 발족, 현재까지 교사들의 국악교육, 실기발표, 수업연구발표 등에 힘써 오고 있다. 특히 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가곡 연주와 함께 가곡의 전승·보전에 힘써 지난 2001년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예능보유자로 지정, 2006년 9월 창원시 마산회원구에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전수관’을 설립했다. 이밖에, 1983년 MBC FM 개국 후 ‘FM음악회’‘우리가락한마당’‘국악으로 여는 아침’‘우리가락 시나브로’등의 고정출연자 및 진행자로도 활약 중이다.

▲ 2010년‘왕조의꿈 태평서곡’에서 혜경궁 홍씨 역을 맡은 영송당 선생. 궁중연례악인‘왕조의 꿈 태평서곡’은 조선시대의 장중한 음악과 화려한 춤, 정조의 효심을 잘 보여준 품격 높은 공연으로 평가되고 있다.
다음은 영송당 명인과의 일문일답이다.

-일반인들은‘가고파’나‘비목’과 같은 음악을 가곡이라고 알고 있다. 영송당 선생이 말하는 가곡은.
▶기록상으로는 고려 때라고 했지만 또 다른 문헌 중국사기 중 수의 7부기 당의 9부기 등의 기록, 고분 속 발굴된 토기의 문양 등에서 보면 삼국시대 이전에도 존재했던 음악으로 보는 가장 오래된 전통음악이 가곡이다.
가곡이란 잘 다듬어진 성악곡이란 뜻이다. 조선후기 순 우리말 ‘영연’ ‘가요’ ‘노래’로도 불리운, 조선의 3대 가집(노래책) 청구영언, 해동가요, 가곡원류에 실려 있는 노래를 지칭하는 고유명사다. 조양구락부출신 홍영후(홍난파)선생이 일본유학에서 감명 받은 슈베르트의 ‘리츠’의 작곡 형식을 가져와 우리말 시를 얹어 우리가곡이라 칭하고, 음악 교과서에 실려 교육화되면서‘선구자’나‘가고파’등이 우리가곡인 것으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가요’란 명칭은 트로트에, ‘가곡’의 명칭은 서양식 가곡에서 점유하니 영언, 가요, 가곡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최근 서양으로부터 인정받고 유네스코에도 세계적인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았다. 서양인들이 가곡을 좋아하는 이유와 보편적 공감을 이끄는 힘은 무엇인지.
▶반주(관현악)와 성악이 잘 어울려 듣는 이들에게 편안함을 주는 선율의 흐름이 좋다는 것과, 그 옛날 관현반주를 둘만한 작곡기법이, 지금 들어도 현대인들이 감명 받을 수 있다는 것에 가장 큰 관심이 쏠렸던 것 같다.
-전통음악 중에서도 특히, 가곡을 하게 된 동기는.
▶가, 무, 악 그리고 전통음악의 전 장르를 모두 공부했지만, 딱히 가곡이 처음부터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10대 시절이었으므로). 그러나 가곡연주에 독창으로 자주 선발돼 연주를 하다 보니, 그 유연함과 노래말의 심오함에 이끌려 시간이 갈수록 더 좋아하게 된 것 같다.

▲ 소남 이주환선생과 함께 공연하던 영송당 선생.
-스승님들과의 인연과 수학과정에서 겪었던 어려움은.
▶가곡의 첫 스승은 초대 국립국악원 원장이며 가곡·가사의 첫 문화재이셨던 ‘소남 이주환’ 선생이 큰 스승님이다. 엄격한 교수법으로 많은 가르침을 주신 사표(師表)이다. 잘못할 땐 눈물이 나도록 혼줄이 났는데 그 말씀이 그 당시엔 서운한 감정만 일었었지만, 세월이 지나고 보니 과정은 힘들지만 그 과정이 없었다면 결실도 없었을 것이다. 소남 선생님으로부터 인성과 가곡의 기본 틀에 충실하는 귀중함을 배웠다.
두 번째 이난향 스승님께는 여창의 발성과 남·여창의 구분에 대한 귀한 배움을 얻었다. 소남 선생님이 남자였으니 여자의 창법을 익힐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하다. 남자처럼 부르는 것을 교정해 주시느라 이난향선생님께서 무진 애를 써 주셨다.
소남 선생에 이어 이난향선생도 타계하신 후, 세 번째 스승으로 소남 선생에 이어 문화재가 되신‘청운 홍원기’선생님을 만나 것이 또 다른 행운이었다. 청운 선생께서는 천리길도 마다 않고 내려오셔서 가곡의 이론 및 반주법과 가사, 시조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전수해 주셨다.
당시, 특정 목적성에 의해 선발된 국비 연구생들의(KBS전신, 서울중앙방송국소속)교육과정은 50년대까지 이어져왔던 민속악과 정악을 모두 교육받게 되어 있었다. 이론과목과 함께 판소리, 민요, 병창 등 민속성악은 물론, 가곡, 가사, 시조, 창사 등 정악계의 성악과 피리, 대금, 해금, 거문고, 가야금, 설장고, 소고놀음 등 기악도 함께 배웠다. 그 때의 강사들은 무형문화재 제정 후, 모두 무형문화재 1세대 보유자가 되신 분들이다.
-가곡은 어렵고 전통음악을 좋아하는 분들도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고 하는데.
▶가곡이 모든 성악곡의 기본임에도 불구하고, 오랜 훈련을 쌓은 후에, 부를 수 있었던 전문가의 음악이었기 때문에 대중적으로 불리기에는 어려움이 따른 것이 사실이다.
시조는 전문 가객들에 의해 불리던 가곡이 대중화된 형태다. 대중이 부르기 쉽도록 가곡을 축소하고 단순화한 음악이 시조였기에 당시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르며 즐겼다. 가곡과 시조는 노랫말, 장단, 선법, 형식, 반주형태 등에서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가곡과 시조는 둘 다 시조시(時調詩)를 노랫말로 하지만 가곡은 5장 형식이며, 시조는 초장, 중장, 종장 3장 형식으로 종장 마지막 3자를 생략해 노랫말이 좀 더 짧다.
또 가곡은 16박 장단으로 된 곡과 10박 장단으로 구성된 곡들이 있지만, 시조는 5박 장단과 8박 장단이 섞여 사용된다.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는 가사는 모두 12곡으로, 백구사·황계사사 ·죽지사사·춘면곡사·어부사사·길군악사·상사별곡사·권주가사·수양산가사·양양가사·처사가사·매화타령 등이다. 가사는 장구만의 반주로 연주하기도 하고, 또는 대금·피리·해금·장구 등의 반주로 연주하기도 한다.
▲ 2006년 9월 설립된 창원시 마산회원구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전수관.
-일반인들이 좀 더 쉽게 가곡을 이해 할 수 있게 가곡의 역사에 대해 자세한 설명이 필요할 듯하며, 국내 유일의 가곡전수관의 역할은.
▶앞서 설명했듯이, 가곡은 고려 가요인 진작(眞勺,鄭瓜亭曲)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훨씬 더 오래 전부터 불렸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조선조 중반까지는 현재 남아있는 삭대엽(數大葉)외에 중대엽(中大葉)과 만대엽(慢大葉)이 더 있었다. 이들 중 만대엽과 중대엽은 사라지고 삭대엽만 남게 됐다. 현재 남아있는 많은 가곡은 바로 이 삭대엽에서 파생된 것이다. 이러한 가곡의 흐름을 다른 무엇보다 잘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당대 가곡 경향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게 해 주는 가집이다. 우리가 국어시간에 배웠던‘청구영언(1724)’‘해동가요(1769)’와‘가곡원류(1876)’는 모두 이러한 가집에 속한다.
하지만 이들 가집이 노래책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이유는 노래로 불리기 위해 쓰인 곡들이 문학으로만 다뤄졌기 때문이다. 노랫말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지 않고 ‘문자’로만 이해했을 때는 잘못된 분석이나 해석을 낳게 된다. 선조들이 남긴 소중한 문화를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좀 더 풍부한 연구를 바탕으로 그 실체에 가깝게 다가가려는 노력이 이루어져야 한다.
-유네스코 무형문화재 지정 이후, 가곡이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면서 미국의 그래미상 후보에까지 오른 적이 있다고 들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걸작으로 등재된 것은 유네스코의 권고로 등재된 것이다.
권고등재란 유네스코 자체에서 먼저 지정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그 예술을 가지고 있는 나라에 등재 신청을 하라고 권고해 등재되는 것이다. 그래미상 후보에 오르게 된 것은 한 음반회사 운영자(악당이반의 김영일 대표)가 한옥에서 자연상태로 연주된 음반을 만들어 그래미상 본부에 제출해 후보에 오르게 된 것이다. 국내 음반이 그래미상 후보에 오른 것은 가요, 클래식, 국악을 포함해 처음 있었던 일로, 후보에 오른 음반 ‘정가악회 풍류 Ⅲ 가곡’은 ‘유네스코 인류무형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가곡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경주 양동마을 관가정에서 공연하고 녹음한 것이다.
-우리 전통음악의 가치와 가곡의 역할은.
▶우리 전통음악은 모든 장르에 고르게 내재된 넓게 이롭게 하는 나눔, 그리고 소통의 정신이 평화롭게 깔려 있다. 그 속에서도 가곡은 그 바탕 곧, 골격을 이루는 분야로 전통음악의 기초를 갖추고 있다. 본질을 지키며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는 우리 전통음악을 흔들림 없이 잡고 있으며 반듯하게 이어나가는 역할을 할 것이다.
-가곡의 미학은.
▶가곡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현재 우리들에게는 굉장히 느린 노래로 인식되고 있다. 가곡의 여러 곡 중에서 가장 느린 곡은 이삭대엽으로 1분 20정, 1박이 3초에 해당해 서양음악의 메트로놈에서 가장 느린 빠르기보다 2배나 느린 빠르기이다. 가히, 세계에서 가장 느린 노래라 할 만하다. 반면에, 우리는 꽤 오랫동안 빠른 것은 편하고 좋다는 인식에 사로잡혀 왔다. 최근 들어 ‘느림’을 지향하는 삶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우리의 삶은 여전히 너무나 빠르다. ‘느림’을 통해 현재의 시간과 공간, 전통의 미덕 그리고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체들에 대해 돌아볼 여유를 가지기에는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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