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민의 게임 이야기] 전두엽을 파괴하는 사이비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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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사이비 과학 `골상학'의 도표와 `게임 뇌' 주장 서적. 강영민 교수 제공

‘게임이 아이들의 뇌를 손상한다’는 보도가 쏟아진다. ‘전두엽을 파괴’, ‘게임 중독으로 변하는 아이의 뇌’, ‘게임, 또다른 마약’ 등 보도의 방식도 선정적인 수준을 넘어 공포스럽다.
 
그 뿌리는 바로 니혼(日本)대학교 모리 아키오(森昭雄) 교수가 2002년에 출판한 ‘게임 뇌(腦)의 공포’라는 책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 엉터리 책에 담긴 모리 교수의 주장이 ‘사이비 과학’이라는 것은 이미 확립된 사실이다. 이런 엉터리 이론을 발본색원하기 위해 그 뿌리인 ‘게임 뇌의 공포’가 무엇인지 살펴보자.
 
이 책을 쓴 모리 교수는 직접 개발한 ‘간이 뇌파계(?)’로 게임이 인간의 뇌에 미치는 악영향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주장의 핵심은 게임을 하면 우리 뇌의 전두전야(前頭前野)에서 베타(β)파가 저하되고 전두엽이 퇴화한다는 것이다. 전두엽이라면 기억이나 사고와 같은 인간의 고등 행동을 관장하는 곳이니 이 얼마나 충격적인 이야기인가. 그런데 이 ‘게임 뇌’ 이론은 작년 3월 여성가족부 토론회에서 발제자로 나선 한 인사의 ‘전두엽이 발달하지 않은 짐승’이라는 발언을 통해 ‘짐승 뇌’ 이론으로 승화되기도 했다.
 
이런 주장은 학계의 정식 논문으로는 발표된 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을 공격하기 위해 일부 기관과 매체들은 ‘부적합한 권위에 호소’하며 틀린 정보를 생산해 내고 있다.
 
모리 교수의 이론에 대한 전문가들의 지지는 찾아 볼 수가 없다. 오히려 이 이론에 대한 무시와 반박, 경계는 좁은 지면에 다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기본적으로 신경과학자나 두뇌 관련 전문가들은 신뢰할 수 없는 방법과 베타(β)파에 파동에 대한 그릇된 해석이 담긴 부적절한 연구라고 비판한다. 감정 상태와 뇌전도를 연구하는 데니스 슈터(Dennis Schutter) 같은 학자는 “게임이 아니라 피곤해서 베타 파가 나타나지 않은 걸로 보인다”고 비판했고, 두뇌 개발 게임으로 유명한 토호쿠(東北) 대학의 가와시마 류타(川島隆太) 교수는 ‘게임 뇌’에 대해 “완전히 미신, 망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라고 했다.
 
전문가들이 모리의 주장을 사이비 과학으로 무시하는 동안 일본 사회에서 ‘게임 뇌’ 이론은 대중적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마침내 일본 신경과학학회의 츠모토 타다하루(津本忠治) 회장이 나섰다. 그는 회보에서 ‘게임 뇌의 공포’나 ‘뇌내(腦內) 오염’과 같은 어처구니없는 책이 서점에 널려있어 신경과학의 신뢰성을 훼손한다며 정확한 정보를 일반사회에 보내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2010년 1월 9일자 요미우리(讀賣) 신문의 기사에는 ‘게임 뇌’와 같은 엉터리 이론을 적시하면서 신경과학학회가 윤리 지침까지 개정한 사실을 보도하기도 했다.
 
‘게임 뇌’의 지지자는 모리 교수와 게임을 싫어하는 (혹은 싫어해야 하는) 극소수 부류에 국한된다. 도쿄(東京) 대학의 바바 아키라(馬場章) 교수는 ‘게임 뇌라는 것은 일본에서나 이야기하는 것이지 외국에서 이야기하면 웃어 버린다’라고 했다. 그 외국에 우리나라는 포함되지 않나 보다.
 
‘게임 뇌의 공포’는 2003년 ‘일본 어처구니없는 책 대상(日本トンデモ本大賞)’에 선정되었다. 선정 이유는 ‘연구 대상에 대한 무지’, ‘과학적인 절차를 따르지 않음’, ‘엉터리 논지’이다. 이제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런 사이비 과학을 끌어들이지 말라.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은 인류의 역사를 통해 흔히 발견되는 고질병이다. 게임이라는 것에 대한 무지와 몰이해에서 오는 거부감은 그래서 자연스러운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새롭게 얻은 도구를 바라볼 때 미신적 두려움이 아니라 얼마나 담대하게 도구를 활용할 것이 생각하는 이들이 미래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게임으로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제인 맥고니걸(Jane McGonigal)이나 바바 아키라 교수와 같은 사람들의 낙관적이고 용감한 포부가 더욱 퍼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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