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하도급업체 기술 유용한 대기업의 빗나간 기업윤리

2019.09.30 20:54 입력 2019.09.30 20:57 수정

대기업이 하도급업체의 기술을 유용한 혐의로 제재를 받았다. 30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한화는 태양광 스크린프린터를 중소기업인 ㄱ사로부터 공급받기로 위탁계약을 맺었다. 이어 ㄱ사로부터 6차례에 걸쳐 기술자료를 넘겨받기도 했다. 그런데 한화는 위탁계약을 해지하고 ㄱ사 제품과 주요 특징·부품이 유사한 제품을 만들어 출하했다. 대기업의 기술 유용이 아닐 수 없다. 공정위는 한화 법인과 임직원 3명을 검찰에 고발하고 3억82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기술을 넘겨받은 뒤 제품을 개발·생산한 데 대한 첫 제재 사례다. 한화 측은 유용이 아니라 자체 개발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공정위 발표를 보면 설득력이 약하다.

기업 규모에 따라 위계화한 산업구조 속에서 하청업체에 대한 대기업의 갑질은 관행화돼 있다.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들은 자신의 기술을 대기업에 알릴 수밖에 없다. 나아가 ‘기술 협력’이라는 이름으로 대기업에 기술 자문을 해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런데 대기업은 ‘알맹이만 빼먹고’ 제품공급 계약을 하지 않는 것은 물론 기술자문료를 한 푼도 내지 않는다. 상생의 상징이라고 하는 ‘공동 개발’의 경우도 대체로 개발비용을 중소기업이 부담한다. 가장 만연한 대기업 갑질은 ‘단가 후려치기’다. 대기업은 하청기업과 전속계약을 맺은 뒤 신규·연장계약을 미끼로 단가 인하를 요구한다. 규모가 작을수록 협상력도 떨어져 ‘먹이사슬’의 아래 단계에 놓인 기업일수록 큰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오랫동안 대기업의 개선을 촉구해왔지만 갑질 관행이 크게 바뀌었다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하청기업은 대기업의 잠재적 구매처라는 이유로 갑질 대기업에 대처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 갑질은 법정으로 가져간다고 해도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 소송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 그래서 대부분은 기술을 유용당하거나 단가 인하로 피해를 입더라도 소송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불공정 관행은 궁극적으로 대기업 스스로에게 부메랑이 된다는 사실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기술 탈취나 단가 후려치기로 인한 중소기업의 기술력 저하는 대기업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대기업은 말뿐인 상생이 아닌 실질적인 상생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당국은 기술 탈취나 기술 유용에 징벌적인 손해배상을 물려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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