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정신, 원본 고스란히 복원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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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6.01.15. 오후 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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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갑주 대표가 윤동주 시집 초판과 복제본을 비교해 설명하고 있다. [이승환 기자]

새 책 팔아 '헌 책' 사는 남자.

많이 벌었다. 1999년 창업해 실업계 고등학교 교과서 200여 종을 만들었다. 학교명과 교과과정을 바꿀 만큼 많이 팔렸다. 그 돈, 많이 썼다. 수집 인생 32년간 쓴 돈이 빌딩 서너 채 값은 족히 된다. '수집은 사람과 만나는 것'이라는 전갑주 한국교과서 대표(56)를 만났다. 그는 윤동주 시인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판을 복원해 출간했다.

"이 책이 윤동주 시인 서거 10주기인 1955년판 원본인데, 종이가 바스라지고 글자도 사라지고 있어요. 보존 처리를 해서 박물관에 전시할 수도 있겠지만, 만져볼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복제본을 만들었습니다. 윤동주 시인의 영혼을 국민이 직접 읽으면서 느낄 수 있었으면 해서요"

전 대표는 '복제 기술자'로 불러 달라고 했다. 인터뷰 직전까지 그는 직접 만든, 1634년 발행된 한석봉 어제(御製) 천자문 복제본을 바늘과 실로 제본하고 있었다. 전 대표는 "복제본 출판을 알리고 싶어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두 사람, 윤동주 시인과 백범 김구 선생님을 떠올렸다"며 "국민 정서에도 좋고 이런 위인들을 통해 생각을 모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웃었다.

"제가 진짜 복원하고 싶은 것은 따로 있습니다. 1980년에 문교부에 입사해 17년, 창업까지 36년째 출판 일을 해왔는데요. 우리 교과서 5만여 점을 모았습니다. 1948년에 나온 첫 국어 교과서가 '바둑이와 철수'예요. 이 책을 전국 초·중·고교에 비치해서 교사와 학생들이 꼭 읽게 하려고요. 보물 같은 우리 교과서들을 국민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일제가 만행을 저지른 증거물, 전시 교육자료와 개화기 잡지는 물론 근현대사가 오롯이 담긴 생활용품들도 모았다. '대한민국의 기적'을 가능케 한 DNA가 담겨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옛 공중전화기, 우체통, 간판 등 20만점이 넘는다.

"저 혼자 저 많은 수집품을 안고 있으면 뭐합니까. '바둑이와 철수' 원본 등은 국립한글박물관에 기증했습니다. 통일 접경지역에 통일문화박물관을 만드는 게 꿈이에요. 'DMZ 시간여행'이라고 이름도 지어놨습니다. 한국전 참전국 16개국을 돌며 순회전시도 하고 싶어요. '당신들이 목숨을 바쳐 구해준 나라가 이렇게 발전했다'는 걸 보여주려고요. 부자 나라는 입장료를 받고, 에티오피아 등 어려운 나라에서는 무료 전시를 할 겁니다. 수익금요? 당연히 전부 통일 기금으로 써야죠."

전 대표는 "버스비가 아까워 걸어다닌다"고 했다. 술도 담배도 하지 않아 자신에게 쓰는 돈은 한 달에 10만원 미만이다. 하루 4~5시간을 복제본을 만들며 보낸다. 회사 경영은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전 대표는 "직접 만들었기 때문에 210종 교과서 이름과 페이지, 편집과 제작 방식까지 다 외우고 있다"고 말했다.

"저는 사회 문제에서 사업 아이디어를 얻어 성공했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매일경제를 줄 그으며 읽었고요. 창업 직후였던 2000년 즈음에 매경에 '나의 사업이야기'라는 시리즈가 있었거든요.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들 이야기였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고등학교 교과서로 만들고 싶을 정도예요. 저는 좋은 것을 보면 책으로 만들어서 같이 보자고 권하고 싶거든요."

전 대표가 펴낸 초판 복제본은 한국교과서 홈페이지에서만 판매한다. 1만7000원이라는 가격에도 초판 2000부가 매진됐고 재판을 준비 중이다.

[신찬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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