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난민 쫓는 난민법’

박순봉 기자

인정절차 회부 기준 불분명 “난민 차단에 이용”

입국 즉시 출국조치… 141일 공항 떠돌이생활도

한국은 난민 신청자들에게는 땅을 밟기조차 어려운 나라다. 지난해 7월1일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최초로 독립된 난민법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난민법 시행 이후 법무부는 “이제 공항에서도 난민신청이 가능하다”며 홍보했다. 난민법 시행 이전에는 공항의 환승구역은 국제법상 한국 영토가 아니라는 이유로 난민신청을 잘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난민법 시행 10개월째이지만 상당수의 난민신청자들은 여전히 정식 난민신청 절차도 밟아보지 못한 채 한국을 떠나고 있다.

아프리카의 한 나라에서 태어난 알리 아미르(가명·23)는 지난해 11월20일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징집 대상이 된 아미르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였다. ‘무고한 동족들을 살해하는 내전에 참여할 수 없다’는 생각에 한국으로 떠나 난민이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하지만 아미르는 인천공항에 도착한 후 141일이 지난 지금까지 ‘진짜 한국땅’을 밟지 못했다.

아미르의 입국을 막은 것은 난민들을 위해 만들어진 난민법이었다. 난민법에는 난민인정절차를 개시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사전 심사를 통과해야만 난민신청 절차를 밟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있다. 아미르가 인천공항에 도착한 날 법무부는 ‘입국목적불분명’을 이유로 아미르를 ‘한국 밖으로 돌려보내라는’ 송환지시서를 냈다.

아미르는 출국 전 사람들이 잠시 머무는 송환대기실로 보내졌고, 계속해서 난민신청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며칠 뒤 진행된 면접을 통해 ‘정식 난민신청 절차를 밟을 수 없다’는 ‘불회부 결정’을 받았다.

본국으로 돌아갈 경우 생명이 위협받을 수 있어 아미르는 송환대기실에서 현재까지 지내고 있다. 송환대기실에서는 넉달 동안 하루 세 끼 치킨버거와 콜라를 주었고, 변호인 접견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아미르는 9일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면접 때 한국인 통역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잘 이해하지 못했고 특정 질문만 강요당했다”며 “매일 같은 음식을 먹는 일이 너무 괴롭고, 이 때문에 계속해서 두통에 시달리는 등 건강에 이상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아미르는 “나는 이젠 본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위험에 처해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난민법 시행 이후에도 난민 신청자들의 처우에는 나아진 점이 없다고 지적한다. 공익법센터 ‘어필’은 이날 유엔 인권위원회와 유엔 고문방지위원회에 “알리 아미르가 정식적인 난민심사를 받기 전까지 강제로 본국으로 돌려보내지 말고, 송환대기실에서 풀어달라”는 내용의 의견을 제기했다.

난민인권센터가 법무부를 상대로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법무부는 공항 난민신청자들에게 회부 결정 15건, 불회부 결정 12건을 내렸다.

공익법센터의 김종철 변호사는 “불회부 결정 기준이 불명확하고, 오히려 사전에 난민신청자를 차단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아미르는 원하는 경우 언제든 송환대기실을 떠나 다른 나라로 갈 수 있기 때문에 법무부에서 구금한 것이 아니다”라며 “모든 난민 신청자들은 입국 불허가 되면 난민법과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송환대기실을 거쳐 출국하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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