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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의 [젠틀맨]과‘젠틀맨’ 싸이


[한겨레21] [문화] 글로벌 케이팝에 가까운 <젠틀맨>의 조율된 ‘싼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하는 것 잘 아는 싸이의 젠틀함

한 가수의 신곡 발표에 이 정도의 눈과 귀가 쏠린 게 언제였을까? ‘전 국민적’이라는 표현을 쓴다면 과장일지 몰라도 싸이의 신곡 <젠틀맨>의 발표 전후에 쏟아졌던 관심은 현재 한국에서 대중음악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을 고려할 때 확실히 이례적이다. 개인적으로 당장 생각났던 비근한 예가 서태지와 아이들의 3·4집 발표였으니, 어떤 음악팬들은 실로 20여 년 만에 돌아온 순간을 한껏 만끽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더군다나 그 규모와 범위는 그때 그 시절과는 비교조차 힘들다. 유튜브 조회 수 15억에 빌보드 싱글 차트 2위라는 기록을 세운 가수가 신곡을 발표한다면 응당 그럴 만하지 않겠는가?

‘한국적’ 분위기 상당 부분 도려내

다만 싸이의 신곡에 대한 관심이 특정한 질문에 고정돼 있다는 점을 짚고 넘어갈 필요는 있어 보인다. 어떤 질문? 당연히 ‘<강남스타일>이 세운 기록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다시 한번 경이로운 유튜브 조회 수를 기록할 것인가? 혹은 그게 워낙 이례적인 현상이었다면,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할 수 있을 것인가? 유튜브 조회 수를 집계 기준에 포함시켰으니 가능하지 않을까? 경제효과는 얼마나 될까? 누가 웃고 누가 울 것인가? 이제 계산기를 한번 두드려보자! 사실상 현재 <젠틀맨>을 둘러싼 이야기들은 이 질문들을 노골적으로 꺼내느냐 아니면 돌려 말하느냐의 차이밖에 없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젠틀맨>과 <젠틀맨>의 비디오가 그 질문에 대답하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듯 보이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젠틀맨>은 <강남스타일>에서 ‘한국적’인 분위기를 상당 부분 도려내고 걷어낸 결과물이다. 몽둥이로 샌드백을 후려치는 것 같은 둔탁하고 공격적인 비트 위로 뒤뚱거리는 신시사이저 라인이 미러볼처럼 빙글빙글 돌아간다. 템포를 약간 늦춘 대신 소리들을 꾹꾹 눌러 담음으로써 듣는 이의 귀에 음악을 확실히 각인시키려 한다. 가사는 거의 완전히 사운드에 종속돼 있다. 최소한의 의미만 통하는 어구가 반복되며 가사에 사용된 한국어와 영어는 ‘의미’가 아니라 ‘발음’이라는 맥락에서 동등하게 사용된다. 춤을 제하고 말하자면, 비디오는 <강남스타일>에서 드러났던 요소들 중 악동 이미지와 ‘섹슈얼’한 측면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킨다. <강남스타일>의 구성을 따라가고 있지만 돌발적이고 키치적인 유머보다는 빽빽하게 배치한 섹스 코드를 쉴 새 없이 퍼부어대는 쪽에 더 가깝다. 곡이나 비디오 양쪽에서 ‘노리고 만들었다’는 반응이 심심찮게 나오는 건 이 때문일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전반적으로 힘이 바짝 들어가 있다.

그런 면에서 <젠틀맨>은 <강남스타일>이 품고 있던 활기를 상당 부분 잃어버린 것이 사실이다. 이 곡이 싸이의 말대로 ‘싼 티’가 난다면 신중하게 조율된 ‘싼 티’일 것이다. <강남스타일>이 만들어냈던 가장 큰 아이러니는 케이팝(K-POP)이 ‘글로벌’을 위해 외국 작곡가를 섭외하는 등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 때 한국 작곡가가 만든 한국적 정서의 한국어 노래가 한국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글로벌한 히트를 기록했다는 사실에 있었다. 그에 비한다면 <젠틀맨>은 통상적인 ‘글로벌 지향 케이팝’에 더 가깝게 들린다. 빌보드 차트에서 이 곡이 어디까지 오르건 간에 <강남스타일> 같은 열풍을 불러일으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다른 말로 하자면 <젠틀맨>은 21세기의 가장 흥미로운 빌보드 2위 대신 무난한 빌보드 1위가 될 공산이 더 크다.

“신곡은 콘서트 레퍼토리 보강 차원”

그럼에도 나는 <젠틀맨>이 싸이가 내놓을 수 있었던, 또는 내놓을 수밖에 없었던 최선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싼 티’ 나면서도 흥겨운 댄스 음악)과 해야 하는 것(<강남스타일>의 뒤를 이을 수 있는 히트곡) 사이에서 충분한 숙고를 거친 신곡을 내놓았다. ‘안정’을 택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 정도의 균형감각을 발휘하는 것이 쉬워 보이지도 않는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뜬 ‘속보’에 따르면, <젠틀맨>은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12위로 데뷔했다. 앞으로의 전개에 따라 연예매체의 헤드라인과 트위터의 타임라인이 또다시 요동칠 것이다. 그렇다면 정작 당사자의 생각은 어떨까. “해외 진출 전까지 수많은 인터뷰에서 말했던 것처럼 나의 신곡 발표는 콘서트 레퍼토리 보강 차원이다. <젠틀맨>도 마찬가지다.” <강남스타일>의 후속곡에 대해 이 정도로 절제된 표현을 쓸 수 있는 가수라면 차트에서의 성적이 어떻게 나오든, 설사 국제 팝 시장에서 ‘원 히트 원더’가 된다 할지라도, 지속적으로 커리어가 유지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 결국 이 왁자지껄한 축제도 누군가에게는 12년 동안 해왔고 앞으로도 계속해야 하는 ‘일’인 것이다. ‘젠틀맨’ 싸이는 그 점을 잘 알고 있는 듯 보인다.

최민우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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