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절벽 20년, 일본의 교훈

적정인구를 정하자··· 인구정책 대전환을 위한 5대 제언

박병률 기자

한국은 내년부터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줄어들면서 인구절벽 상태에 돌입해 2031년부터 인구가 줄어든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합계출산율(가임여성 1명이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수) 1.3명 미만인 ‘초저출산’을 경험한 나라는 11개국인데 이 중 한국만 15년째 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출산율이 다소 회복된다고 해도 가임여성 숫자가 줄어들면 인구 감소세에 브레이크를 걸기 힘들다. 대변혁기를 맞이한 한국의 인구 문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인구절벽 20년을 맞은 일본은 인구 마지노선을 정하고 모든 정책과 자원을 집중시키는 대책을 뒤늦게나마 마련했다. 경향신문은 인구정책의 대전환을 위한 5가지 제언을 전문가의 조언을 통해 마련했다.

1980년대 서울 시내에서 열린 저출산 권장 캠페인에서 당시 김정례 보건사회부 장관이 ‘둘도 많다’는 어깨띠를 두르고 서명에 참여하고 있다. 당시 인구 캠페인의 구호는 “둘도 많다.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1980년대 서울 시내에서 열린 저출산 권장 캠페인에서 당시 김정례 보건사회부 장관이 ‘둘도 많다’는 어깨띠를 두르고 서명에 참여하고 있다. 당시 인구 캠페인의 구호는 “둘도 많다.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①적정인구를 정하자

1960년대 인구캠페인은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였다. 그러다 1970년대 접어들면서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로 바뀌었다. 1980년대는 “둘도 많다.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었다. 2000년대 들어 “한 자녀보다 둘, 둘보단 셋이 더 행복합니다”가 됐다.

인구정책이 10년을 주기로 바뀌어온 것은 ‘적정인구’에 대한 고민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정부는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2016~2020년)을 발표하면서 1.24명인 합계출산율을 1.5명으로 끌어올리겠다고 했지만 왜 목표가 1.5명인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인구대체 수준(현 수준의 인구가 유지될 수 있는 합계출산율)인 2.1명을 유지하기 위한 교두보’라는 단서가 붙어 있을 뿐이다. 일본은 지난해 마지노선을 1억명으로 정하고 이를 위한 합계출산율을 1.8명으로 제시했다. 최소 1억명은 돼야 일본의 경제사회가 유지된다고 봤기 때문이다.

한국의 적정인구는 얼마일까. 일각에서는 ‘5000만명 사수’를 제시하지만 과잉이라는 주장도 있다. 매년 성장했음에도 국민 행복지수가 늘지 않는 것은 과잉경쟁 탓이라는 것이다. 올해 인구는 5157만명이다. 한국 경제의 골디락스(경제가 가장 좋은 때)로 불리는 1988년 4245만명보다 912만명이 많다. 한국 인구는 2030년 5213만명으로 절정에 다다른 뒤 2060년에는 4396만명으로 1992년 수준으로 돌아간다.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는 적정인구로 ‘4000만명대 초반’을 제시했다. 그는 “1980년대가 살기 좋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시절 경쟁이 지금보다 치열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며 “인구 4200만명 정도를 유지하려면 지금처럼 연간 45만명 정도 태어나면 적당하다”고 말했다. 그는 “합계출산율보다 출생아수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②사람 중심으로 성장계획 짜자

1960년대 경제개발계획이 본격화된 이후 한국은 매년 성장률 목표치를 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예산과 인력을 투입했다. 교육도, 인구도 성장률을 위해 필요했다. 성장률에 직접 도움이 되지 않는 정책들은 후순위로 밀렸다. 하지만 국민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10년 넘게 OECD 자살률 1위는 그 결과다. 앞으로는 적정인구가 편히 살 만큼의 성장 목표치를 정하고 그 안에서 성장전략을 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부는 적정인구가 여유 있게 살 만큼만 늘어나면 된다. 인구 5000만명을 적정인구로 잡는다면 국내총생산(GDP)은 현 수준을 유지하는 정도면 된다. 성장률 0%라도 문제가 없다는 의미다. 만약 인구 4000만명 기준이라면 마이너스 성장률이라도 괜찮다. 통계청 관계자는 “30년 전 100달러이던 경제규모가 10% 성장하면 10달러가 늘어나지만 현행 1000달러인 경제규모에서는 1%만 성장해도 10달러가 늘어난다”며 “경제규모가 커지면 성장률보다는 성장액이 더 중요해진다”고 말했다. 사람에 우선순위를 두면 정부지출의 우선순위도 달라진다. 지금은 성장 우선이다 보니 예산이 부족할 때마다 누리과정(3~5세 무상보육), 무상급식 등 복지예산 삭감 주장이 나온다. 하지만 사람 우선이면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삭감이 우선순위가 될 수 있다.

[인구절벽 20년, 일본의 교훈] 적정인구를 정하자··· 인구정책 대전환을 위한 5대 제언

③대통령이 직접 인구정책 챙겨라

일본이 국가 차원의 저출산 대책을 세운 것은 1989년 ‘1.57 쇼크’ 때다. 이해 합계출산율이 1.57명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후로도 출산율은 하락을 거듭했고 급기야 2010년부터는 전체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했다. 지난해에야 비로소 ‘1억명 사수’라는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했다.

한국은 일본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한국이 저출산 대책을 처음 마련한 계기는 2005년 합계출산율이 1.05명으로 떨어진 ‘1.05 쇼크’였다. 468개 과제를 만들어 152조원을 썼지만 합계출산율은 1.2명대를 벗어나지 못했고, 연간 출생아수도 40만명대에서 고정됐다.

조직이나 시스템으로만 보면 한국은 일본보다 앞서 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대통령 직속이고 위원장은 대통령이다. 14개 전 부처 장관이 위원으로 참석한다. 하지만 저출산고령사회위원장이 대통령임을 아는 이가 거의 없을 정도로 존재감이 없다. 이용훈 중앙대 교수는 “대통령과 핵심부처가 국민들에게 확실한 메시지를 주지 못한 것이 문제”라며 “부처별로 토막토막 과제를 나누고 예산을 분산 집행하면서 보여주기식 행정으로 끝났다”고 말했다. 누리과정 예산을 둘러싼 충돌이 정부의 저출산 극복 의지를 불신하게 만들었다는 지적도 있다.

김영록 한국행정연구원 연구위원은 “프랑스처럼 육아수당을 아이 한 명당 월 1000유로(150만원) 수준으로 지급하는 파격적인 정책이 있어야 한다”며 “어떤 일이 있어도 정부가 출산·육아를 책임진다는 믿음을 국민들에게 심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④이민정책, 공개 논의를 시작하자

한국은 표면상으로는 이민자를 위한 준비가 완비된 나라다. 국무총리 산하 위원회만 3곳(외국인인력정책위원회, 외국인정책위원회, 다문화가족정책위원회 등)이 있다. 재한외국인처우기본법, 외국인근로자 고용 등에 관한 법, 다문화가족지원법, 난민법 등 관련법도 다양하고 고용노동부 등 10여개 부처가 이민자를 돌본다. 하지만 부처 간, 법 간 조율이 안되다 보니 이민정책은 사실상 실종됐다. 이자스민 새누리당 의원(사진)은 지난 1월 ‘이민사회기본법 제정안’을 제출했다. 대통령 직속기관인 ‘이민사회정책위원회’를 설립하고 분산돼 있는 관련 정책을 통합해 제대로 다루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민사회정책위원회를 ‘이민사회청’으로 발전시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 하지만 19대 국회를 5개월여 남겨두고 제출돼 국회 통과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법안 제출이 늦어진 데는 ‘이주아동권리보장법’ 처리가 지연된 것이 컸다. 불법체류자 자녀라도 교육권과 건강권, 보육권을 보장해주자던 이 법은 2014년 발의 이후 많은 비판을 받으면서 결국 법제사법위원회를 넘지 못했다.

[인구절벽 20년, 일본의 교훈] 적정인구를 정하자··· 인구정책 대전환을 위한 5대 제언

정부의 고민도 깊다. 지난해 발표된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는 처음으로 이민정책이 담겼다. 정부는 흩어져 있는 이민자 관련 위원회를 통합해 ‘외국인정책위원회’를 만들기로 했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3월29일 “이민정책을 전향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민 문제는 제대로 공론화되고 있지 않다. 기재부 관계자는 “외국인노동자 문제, 시리아 난민사태로 인한 부작용 등을 볼 때 쉽게 공론화하기는 어려운 사안”이라고 말했다. 이자스민 의원실 관계자는 “이민자 문제는 총선도 아닌 대선급 이슈”라며 “다음 대통령 후보자들이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제기하면서 이민정책에 대한 의견을 밝히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⑤남성의 육아참여, 기업이 선도하라

합계출산율이 2.0명이 넘는 프랑스는 ‘아이는 여자가 낳지만 사회가 함께 키운다’는 정책기조를 내세우고 있다. 육아를 남편 혹은 사회가 나누지 않고서는 일과 육아의 양립은 여성에게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일본의 출산확대정책이 효과를 보지 못한 원인도 여기에 있다. 안주영 일본 도코하대 교수는 “일본의 일·가정 양립지원으로 일하는 여성이 많이 늘었지만 여성의 육아부담은 더 늘어났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말했다.

서구도 ‘육아를 담당하는 남성’이 일반화된 것은 오래전 일이 아니다. 프랑스는 1969년 5월혁명(68혁명)을 기점으로 가부장제 전통이 뒤흔들렸다.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도 1970년대부터 남성 육아에 대한 시각이 급격히 바뀌었다. 인구통계 석학인 한스 로슬링 스웨덴 카롤린스카 의학원 교수는 “‘여성의 책임인 육아를 남성이 분담한다’는 게 아니라 ‘육아는 남성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을 바꿀 때 변화가 생긴다”고 말했다.

여성들이 일을 하면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사회, 남성이 육아휴직과 정시퇴근을 통해 육아와 가사일을 함께 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정부와 사회가 할 일이지만, 최종적으로는 기업이 결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규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인식과 문화가 바뀌는 것이 중요하다”며 “기업이 직원의 육아휴직을 꺼리는 분위기라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서의동, 박병률(경제부) , 김지환(정책사회부), 심진용(문화부), 윤희일(국제부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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