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WTO 농업 분야 개발도상국 지위 포기, 대비는 돼 있나

2019.10.21 20:52 입력 2019.10.21 20:53 수정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 개발도상국 지위를 포기한다고 한다. 21일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개도국 지위 포기를 곧 발표할 계획이다. 한국은 1995년 WTO 출범 당시 농업 분야에서 개도국 지위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경제성장을 이룬 국가들의 WTO 개도국 지위 포기’를 요구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불응할 경우 독자적으로 중단조치에 나서겠다고 하자 대만, 브라질, 싱가포르, 아랍에미리트연합 등이 개도국 지위를 포기했다. 이에 한국 정부도 동참하는 것이 미국의 통상 압박이나 방위비 분담금 협상 등 실리에 부합한다고 판단한 것 같다.

개도국 지위 포기로 우려되는 건 농업 분야의 피해다. 정부는 한국 농업의 피해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기존 특혜를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특혜의 지속 여부는 앞으로 협상에서 정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협상이 언제 이뤄질지 알 수 없고,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일단 협상 테이블에 앉게 되면 종전과 같은 특혜를 받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한국은 자유무역협정(FTA) 등으로 농축수산물 관세장벽이 붕괴되고 있다. 그나마 개도국 지위를 이용해 쌀 등 주요 농산물을 특별품목으로 지정·보호해왔다. 그러나 개도국 지위를 포기할 경우 외국산 수입쌀의 관세를 낮춰야 한다. 그리고 쌀값 등 농산물 가격 안정에 쓰이는 농업보조총액도 절반 정도 삭감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1조4900억원에서 8000억원으로 대폭 낮춰야 한다. 가뜩이나 어려운 한국 농업을 지킬 보루에 구멍이 뚫리는 셈이다.

농민단체들은 정부의 WTO 개도국 지위 포기에 강력 반발하고 있다. 정부의 결정이 ‘통상주권과 농업의 포기선언’이라고 주장한다. 정부는 농민단체들과 만나 의견 수렴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농민단체는 정부가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처방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농민들의 주장에 과도한 대목이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WTO 개도국 지위를 받은 지 20년 이상 흘렀어도 농업소득은 정체상태에 있다. 도시와 농촌 간 소득격차도 줄어들지 않았다. 이 모두 농업의 활성화에 손을 놓고 있었던 탓 아닌가. 정부는 이번 사태로 인한 농업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급급할 게 아니다. 차제에 우리 농업의 현실을 정확히 진단하고 장기적인 활성화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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