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야 너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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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100만명 육박하는 철도마니아 세계…코레일과 여행자들에게 긴요한 정보 제공


서울시 은평구 수색동에 있는 코레일 서울기관차승무사업소. 한국 철도의 허브인 서울역에서 운행을 마친 열차들이 고단한 몸을 뉘고, 기관사들이 잠시 헤어졌던 애마와 만나 새날을 도모하는 곳. 24일 오전 11시 제복의 기관사들 사이에 일상복 차림의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온라인 철도동호인 모임인 ‘레일플러스’의 ‘정모’다. 한해 한 차례 모여 철도체험을 하는 날이다. 전국 구석구석에 박혔던 회원 50여명이 맨얼굴로 모였다. 이들은 기관사들과 함께 점심을 먹은 뒤, 선로전환기를 실제로 작동하고, 기관차에 올라 운전대를 잡아 보았다. 기관사들과의 암호 같은 문답은 철도에 대한 소증을 푸는 그들만의 의식이었다.

할아버지·아버지에게

이어받은 철도사랑

남성 마니아 수 압도적


철도에 매료된 사람들, 즉 철도마니아들의 세계는 보통사람들의 생각보다 넓고 깊다. 이들은 철도에 관한 것이면 무엇이든지 좋아하고 궁금해한다. 이날 모인 마니아들한테 기관차의 무게가 132톤, 연료탱크의 용량이 9800리터, 8200번대 기관차의 힘이 7060마력이라는 것은 상식이었다. 어떤 마니아는 경적소리로써 기관차의 종류를 구별하고 경적의 음높이를 정확히 재현하기도 했다.

이들한테 왜 철도를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그냥”이라고 말한다. 남녀의 사랑처럼 본능적으로 끌리는 것이라는 것. 하지만 캐고 보면 사연이 없지 않다. 특히 어려서의 인연. 할아버지 또는 아버지가 철도기관사여서 일찍이 철도와 가까웠다든가, 이러저러한 이유로 초등학교 때부터 혼자 철도여행을 하게 되었다든가. 알에서 깨어난 새가 처음 접한 대상을 어미로 인식해 따르는 각인효과와 흡사해 보이기도 하다.

비밀은 오히려 단순해 보인다. 마니아들 가운데 여성 회원은 극소수라는 점. 이날 정모에 참가한 회원들은 초등학생부터 40대 직장인까지 나이대는 다양했지만 여성은 한명도 없었다. 철도 사랑은 일종의 남성성.

“기관차는 육중하고 거대하며 힘이 센 점에서 남성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철도는 평행 궤도에 열차를 규칙적으로 운행하는 거대 시스템이에요. 일정 구간에 하나의 열차만 존재해야 하죠. 0과 1의 단순명쾌한 세계입니다. 기계, 전기, 통신전자, 토목건축 등 이공계 분야가 종합적으로 기능합니다. 딱딱해서 여성들이 관심을 갖기에는 부담스러운가 봅니다.” 마니아에서 코레일 직원이 된 이재원(구로역 관제센터)씨의 설명이다. 그는 드물게 존재하는 여성 마니아는 감성적인 여행 분야에 몰려 있다고 했다. 하지만 ‘철도마니아=마초’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철도박물관 손길신 관장은 “철도에 대한 관심은 곧 한국사 연구와도 통한다”고 말했다. 철도 자체가 국가 기간산업이기 때문에 철도의 부설과 폐선 과정을 살펴보면 한국 근현대사의 풍경이 그대로 펼쳐진다는 것이다.

열차표·기관차 모형 수집 등

관심사 갈래도 다양

제1회 철도문화체험전에

수만명 몰려



이들은 여느 동호인들처럼 개별적으로 활동하다가 2005~2006년 인터넷동호회가 활성화하면서 표면으로 솟았다고 한다. 현재 활발히 활동하는 인터넷 카페는 레일플러스(railplus.kr), 엔레일(cafe.naver.com/korailslr), 일본철도연구회(cafe.daum.net/jtrain)(이상 철도동호회), 모형사랑(cafe.daum.net/tccmodels), 작은철도의세계(cafe.daum.net/nscale)(이상 철도모형동호회), 열차사랑(www.ilovetrain.com), 바이트레인(www.kicha.org)(이상 철도여행동호회) 등. 레일플러스 운영자 신명식씨는 철도마니아는 통틀어 100만명쯤 될 거라고 말했다. 이들의 관심사는 무척 다양하다. 열차표 수집, 기관차 모형 제작 및 수집, 사진 촬영, 폐선·간이역 답사, 철도여행, 철도정책·역사 연구 등등.

개인적인 성과로는 한우진씨의 미래철도DB(frdb.codex.kr)와 이재원씨의 MEIS(www.meis.pe.kr)가 꼽히는데, 전자는 철도노선 예측과 교통 관련 논문이 실려 코레일 쪽은 물론 부동산업 관계자들이 참고할 정도라고 한다. 후자는 첫차·막차 시간표, 출구정보, 화장실, 역이름 유래 등 모든 지하철·전철역의 정보가 상세하여 휴대폰 지하철안내 앱 업체에서 요긴하게 활용하고 있다. 축적된 지식과 정보는 <간이역 오감도>(신명식), <간이역 여행>(임병국), <대한민국 기차여행의 모든 것>(임병국·정진성·박준규) 등 책으로 펴내기도 한다.

지난 7월에는 문화역284(옛 서울역)에서 제1회 철도문화체험전이 열려 전국의 철도마니아들이 수면 위로 떠오른 계기가 됐다. 사흘 동안 동호인 수만명이 다녀갈 정도. 코레일 쪽에서는 장소를 마련하고 철도유물전, 철도모형경진대회, 철도사진전은 대부분 마니아들의 것으로 채워진 특별한 잔치였다.

코레일 또는 서울메트로에서는 이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홍보실에 별도의 담당자를 두어 특별관리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마니아들은 특별한 재산이다. 이들이 기업으로서 코레일은 물론 철도문화 발전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버스나 택시 분야 또는 삼성·현대와 같은 일반 기업에서 볼 수 없는 풍경이다.

글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사진 임종업,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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