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죽기 전에 가봐야 할 곳인지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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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미술 기행 20-2] 나폴리, 카스텔 누오보 , 폼페이, 포지타노

[오마이뉴스 글:박용은, 편집:이준호]

지난 25일 동안 나는 이탈리아의 수많은 문화유산들을 만나왔습니다. 유명한 성당들과 궁전, 박물관 등 다양한 문화 유산들을 만났죠. 하지만 '카스텔 누오보(Castel Nuovo)'는 지금까지 만났던 그 어떤 문화 유산과도 확실히 다른 곳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거대한 '성채'란 점 때문입니다. 물론 베로나에서 '베키오성'을 보긴 했지만, 저렇게 독립된 형태로 웅장한, 중세의 성채를 유지하고 있는 곳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 카스텔 누오보 나폴리의 중심부, 산타 루치아 항구 인근에 서 있는 독립된 형태의 성채입니다.
ⓒ 박용은

1282년 프랑스 앙주가의 카를로 1세가 건립하기 시작하여 1467년 스페인 아라곤가의 알폰소 1세가 전면 개축한 성, '누오보'는 중세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흔히 보아오던 바로 그런 '성채'의 모습입니다. 독일과 동유럽에는 그림 같은 성채들이 많다고 하는데, 여행 초보인 나에게는 이런 딱딱한 형태의 성채도 처음이라 무척 신기하게 다가왔습니다.

더구나 누오보 성채에서 바라본 나폴리 앞바다와 저 멀리 보이는 '베수비오산', 수평선과 맞닿은 '카프리섬'까지 이 아름다운 풍경은 '그래! 그래도 나폴리구나!' 하는 느낌입니다. 가곡 '산타 루치아'가 저절로 흥얼거려집니다. 눈부신 태양, 눈부신 하늘, 눈부신 파란 바다. 베네치아에서도 바다를 보았지만, 나폴리의 바다는 역시 바다다운 바다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나폴리 일정에서 가장 만나고 싶었던 것이기도 합니다.

▲ 거인의 분수 카스텔 누오보에서 카스텔 델 오보로 향하는 도중. 바닷가에 서 있는 아름다운 분수를 만났습니다.
ⓒ 박용은

▲ 카스텔 델 오보 이른바 ‘달걀성’으로 불리는 카스텔 델 오보는 해변에서 바다쪽으로 삐죽 튀어 나온 곳에 세운 성채입니다.
ⓒ 박용은

이것으로 나는 그동안의 모든 의구심과 실망감을 날려버렸습니다. 추우면 어떻고, 지저분하고 불친절하면 어떻습니까? 일정이 좀 어긋나면 또 어떻습니까? 여기는 바로 '나폴리'인데 말입니다. 한결 상쾌해진 기분으로 여전히 매서운 칼바람도 기분좋게 맞아가며, '거인의 분수(Fontana del Gigante)'를 지나 해안가에 세워진 요새, '카스텔 델 오보'(Castel dell'Ovo, 이른바 달걀성)에 들러 다시 한 번 눈부신 나폴리와 나폴리의 바다에 감탄하고 호텔로 돌아왔습니다.

▲ 나폴리 바다 카스텔 델 오보에서 바라본 나폴리 바다입니다.
ⓒ 박용은

그리고 호텔에 돌아오기 전, 우연히 중국인이 운영하는 슈퍼마켓을 발견했습니다. 혹시나 해서 들어가 보니 웬걸, 컵라면과 김치 캔을 파는 것입니다. 그것도 한국 상표를 붙인 채 말입니다. 앞 뒤 볼 것 없이 사왔더니, 호텔 직원이 난방기도 교체해 놓았고 온수도 수리해서 잘 나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기분좋게 말해 주었습니다. "그라치에!" 그리고 호텔 방에 들어와 따뜻한 컵라면에 김치까지 넣고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폼페이와 국립 고고학 박물관(12월 31일)

지난 밤, 뜻밖에도 나폴리에 눈이 내렸습니다. 이번 이탈리아 미술 기행 중 가장 남쪽 지방인, 이 나폴리에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아침 일찍, 눈 속의 '폼페이(Pompei)'를 찾았습니다.

▲ 베수비오 산 한 해의 마지막 날. 폼페이의 폐허에서 눈 쌓인 베수비오산을 바라봅니다.
ⓒ 박용은

낡고 비좁은 기차를 타고 폼페이에 이르니, 머리에 하얗게 눈을 이고 있는 '베수비오산'이 가깝게 다가섭니다. 어찌보면 평화롭기까지 한 베수비오산. 2000여 년 전, 참혹한 비극을 낳은 장본인이란 사실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포룸과 각종 신전, 공중 목욕탕, 비극 시인의 집, 파우노의 집, 그리고 잘 닦인 도로까지. 폐허로만 남은 눈 쌓인 폼페이 거리를 걷다 보니, 어쩐 일인지 비극이 일상화된 당신과 나의 나라가 자꾸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그 일상화된 비극에 익숙해지고 드디어는 무감각해진 당신과 나의 모습도 떠올랐습니다.

"무엇을 해 보자."
"이렇게 바꿔 보자."

이런 말들이 오히려 미안스러워지는 시간들이 무심히 흘러가고 또 다가오고 있습니다. 집단적 허무주의에 빠진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됩니다. 하지만, 그래도 또 견뎌야겠지요.

▲ 눈 내린 폼페이 폐허로만 남은 폼페이 거리에서 비극이 일상화된 당신과 나의 나라를 떠올립니다.
ⓒ 박용은

폼페이에서 나폴리로 돌아와 그 폼페이가 남겼던 찬란한 유물들을 만나러 갑니다. 고대 로마의 유물들과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사라져 버린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 스타비아 같은 고대의 폐허에서 가져온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는 '국립 고고학 박물관(Museo Archeologico Nazionale)'

끊임없이 이어지는 백색의 거대한 대리석 조각상들과 비잔틴 모자이크의 원형들. 그런데 그곳에 놀랍게도 그가 있었습니다. 기원전 333년, 소아시아의 남동쪽 이수스에서 벌어진 전투. 이 전투에서 패배한 페르시아는 2년 후 또 한 번의 전투에서 패망하고, 이 전투에서 승리한 마케도니아는 이후 헬레니즘이라는 인류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동서 융합 문화를 이끌어 냅니다. 그는 바로 알렉산드로스 대왕입니다.

▲ 알렉산드로스와 다리우스의 전투 폼페이의 폐허에서 발견된 알렉산드로스의 모자이크. 이 아찔한 역설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요?
ⓒ 박용은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유명한 모자이크가 폼페이의 폐허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입니다. 가장 위대한 이의 영광을 품고 있는, 가장 비참한 폐허의 흔적. 이 아찔한 역설 앞에 서니 그 어떤 미학적, 역사적 의미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이 만약 폐허라면 그 속에 소박하나마 희망이 남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반대로 우리의 오늘이 영광이라면 언제 덮쳐올지 모르는 폐허의 비참함을 떠올리며 한없이 겸허했으면 합니다.

'국립 고고학 박물관'에서 나와 푸니콜라레를 타고 나폴리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산 텔모 성(Castel Sant'Elmo)'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한 해의 마지막 날인 오늘, '산 텔모 성'은 문이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 나폴리 전경 굳게 닫힌 산 텔모 성 앞에서 요란하게 한 해를 보내고 있는 나폴리를 바라봅니다.
ⓒ 박용은

어쩔 수 없이 매서운 바람이 불어오는 '산 텔모 성' 입구에서 나폴리를 내려다 보았습니다. 그런데, 나폴리 여기저기서 폭발음들이 들려오는 것입니다. 처음엔 대규모 공사 중이거나 혹시라도 테러가 일어난 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산 텔모 성'에서 내려와 나폴리 서민들의 일상 속 거리 '스파카 나폴리(Spaca Napoli)'를 걷다 보니, 그것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폭죽소리였습니다. 여기저기에서 실제로 폭탄 같은 폭죽을 터뜨리고 있었죠.

그 엄청난 소리(정말이지 단순한 폭죽 소리가 아니라 폭발음입니다)에 지나가던 아기들도 깜짝 놀라 울음을 터뜨리고, 익숙하지 못한 여행객들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죽 소리가 두려워 계속 귀를 막고 갑니다. 잠깐 들른 타바키 주인에게 물으니 그는 웃으며 "전쟁이다"라고 합니다. 어쩌면 전쟁과도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는 나폴리인들은 그렇게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가 봅니다.

사실, 어떤 말로 연말 인사를 할까 많이 고민했습니다. 한 해가 저물어 가고 또 한 해가 오고 있는 지금, 나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 속에 있습니다. 크리스마스를 아름답게 해 준 베네치아도 첫 경험이었고, 요란하게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나폴리도 첫 경험입니다. 하지만 며칠 후, 나도 당신과 같은 나라에 있겠지요. 당신과 나의 나라는 어떤 한 해를 보냈고 어떤 한 해를 맞이하고 있습니까?

오늘, 저 전쟁과도 같은 나폴리의 모습이 2000여 년 전 폼페이 시민들이 꿈꿔왔던, 혹은 통일 이탈리아를 위해 헌신했던 저 넓은 광장의 가리발디Giuseppe Garibaldi 1807-1882와 그의 민병대가 꿈꿔왔던 미래의 한 부분이듯,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화된 비극의 날들도 오래 전 누군가가 꿈꿔왔던 미래의 한 부분일지 모릅니다.

▲ 가리발디 상 나폴리 역 앞 가리발디 광장의 가리발디 상 앞에서 나의 한 해를 정리합니다.
ⓒ 박용은

그래서, 살아야 한다는 것은 견뎌야 한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비극은 비극대로 슬퍼하고 분노하고, 그 슬픔과 분노에 익숙해지고 지칠 무렵엔, 만해처럼 그 슬픔과 분노를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이부어, 타고 남은 재가 불이 되듯이, 무감과 허무로 가득한 가슴에도 다시금 소박한 불씨를 살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다 보면 어제보단 조금이라도 나은 내일이 어느새 와 있지 않을까요?

쓰다보니 무게잡는 말만 주저리 주저리 엮은 것 같아 괜히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지난 한 해, 모두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새해에는 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포지타노(1월 2일)

나폴리에서의 마지막 날. 오늘은 어제 못 갔던 '포지타노(Positano)'에 들렀다가 다시 나폴리로 돌아와 로마행 기차를 타야 합니다. 사흘 째 낡고 비좁은 기차를 타고 같은 방향으로 이동합니다. 그리고 폼페이를 지나 소렌토역에 내려 포지타노행 버스로 갈아 탑니다.

며칠 동안 막혔던 노선이 뚫려서 그런지, 절벽 위에 난 도로를 위태위태하게 운행하는 'SITA 버스'는 만원입니다. 잡지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선정한 '죽기 전에 가봐야 할 곳' 중 하나라는 '아말피 해안'. 소렌토에서 출발하여 살레르노에 이르는 50km 정도의 이 해안도로는 포지타노, 아말피, 라벨로 같은 소박하고 깨끗한 마을들과 눈부시게 푸른 바다, 그리고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함께 어우러져 말 그대로 절경을 이룹니다.

하지만 전세계에서 몰려온 사람들로 가득찬 버스 안에서 그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운좋게 좌석에 앉은 사람들은 느긋하게 창밖 절경을 감상할 수 있지만 구절양장 같은 절벽 길을 달려가는 버스 안에서 입석은 정말 괴롭습니다. 촌스럽게 멀미 기운마저 일어납니다.

▲ 포지타노 풍경 1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수직으로 세운 마을, 포지타노입니다.
ⓒ 박용은

그렇게 힘들게 도착한 '포지타노'. 나는 다른 관광객들과 달리 서쪽 정류장에 내렸습니다. 절벽 아래로 난 포지타노 마을의 골목길을 걸어서 내려갈 작정입니다. 그리고 잠시 후, 한 굽이 모퉁이를 돌아서니, 말 그대로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집니다.

우리나라 남해섬에 '다랭이 논'이 있다면, 이탈리아 남쪽 바다엔 '다랭이 집'이 있는 걸까요? 절벽 아래로 눈이 부시도록 파란 바다와 하늘을 배경으로 파스텔톤 건물들이 층층이 쌓여 있습니다. 베네치아가 바다 위에 펼쳐놓은 '수평의 도시'라면, 포지타노는 바다 위에 쌓아 올린 '수직의 마을'입니다. 골목골목을 지날 때마다 눈부신 수평선과 예쁜 건물들이 묘하게 겹쳐지며 마치 바다 위의 성을 보는 것 같습니다.

왜 이곳이 '죽기 전에 가봐야 할 곳'인지 알 것 같습니다. 나는 될 수 있는 한 오래, 포지타노에 머물렀습니다. 느릿느릿 걷고 또 걷다가 바닷가 식당에서 해산물 파스타도 먹었습니다. 차가운 겨울 바닷물에 발도 살짝 담갔습니다.

▲ 포지타노 풍경 2 눈이 부시도록 파란 바다와 하늘을 배경으로 파스텔톤의 건물들이 층층이 쌓여있습니다.
ⓒ 박용은

그러는 도중 연말 연시가 겹쳐 엉망이 되어버린, 4박 5일 간의 나폴리 일정에 대한 아쉬움은 눈 녹듯 사라져 갑니다. 포지타노의 이 아름다운 바다와 마을을 본 것만으로도 나폴리 여행은 충분합니다. 어차피 '이탈리아 미술 기행'은 한 달로 완성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나폴리 미술 기행'도 미완의 여정으로 남겨 두면 그만입니다. 나는 반드시 이 바다에, 포지타노에, 나폴리에, 이탈리아에 다시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21-1. 바티칸 박물관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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