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뉴먼트 밸리 트레일러]


첫 번째 오브젝트가 움직이는 소리를 듣는 순간 전율을 느꼈다.

'USTWO Games'라는 생소한 개발사명을 봤을 때, 스크린샷 몇 장과 게임 제목을 봤을 때만 해도 "할 만한 게임이 하나 더 나왔나보다"라고 생각했다. 플레이를 했다. 아름다웠다. 부드러웠다. 무엇보다 기발했다. 그래픽뿐 아니라 소리까지도. iOS라는 작은 플랫폼에서 이런 감동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이 '작품'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개발 과정에서 어떤 의미를 담았는지 궁금했다. 모든 동료 기자들이 같은 마음이었다. 어떻게든 연락처를 찾았다. 메일 주소를 얻어냈다. 서면으로라도 인터뷰를 나누고 싶다며 요청했고, 빠른 승낙이 돌아왔다.

'모뉴먼트 밸리(Monument Valley)' 개발사와의 만남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21세기 예술계에서 가장 뜨겁게 떠오른 신소재가 디지털 아트, 그중에서도 '인터렉티브 아트(interactive art)다. 완성된 하나의 형체로서 가치가 고정되는 기존 예술을 탈피해, 객체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비로소 그 작품이 완성되는 것이다. 이런 작품의 본질은 극도로 유동적이다. 천 명의 문화 소비자가 있다면, 인터렉티브 아트는 천 가지 다른 존재로 탈바꿈할 수 있다.

이런 인터렉티브 요소로 인해 탄생한, 그리고 그것이 가장 큰 정체성인 미디어가 무엇인지는 모두 잘 알고 있다. 게임이다. 게임은 사용자에 의해 'Play'되는 순간 비로소 완성된다. 완성에 이르는 길을 어떻게 구성할지는 각자 플레이어마다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 기술적 장치에 따라 제작자와 플레이어는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하고, 패치와 업데이트가 이어지면서 변화를 멈추지 않는다.

'모뉴먼트 밸리'는 '게임이 예술성을 가질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가장 강렬한 대답이었다.

착시효과와 기하학적 구조를 통해 만들어낸 퍼즐은 상식을 파괴했다. 무엇보다 눈여겨본 특징은 '소리'에서 상호작용의 정점을 보여주었다는 것. 플레이어의 조작에 따라 모든 구조가 뒤바뀌는 동시에, 플레이 속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움직임은 마치 악기 연주처럼 제각기 다른 세션과 음계를 통해 소리로 연출된다. 난이도 선택 화면에서부터 감동을 받았다고 말한다면, 플레이를 하지 못한 독자들이 사기 취급을 할까 무섭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었다.

한 시간 가량의 짧은 러닝타임과 3.99달러라는 가격은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예술 작품을 즐기는 데 비하면 저렴한 지불이었다. 그만큼 질문 하나하나 조심스러웠고, 답변들은 예상 범위를 훌쩍 벗어났다. 답변자는 USTWO게임즈의 'Neil McFarland'였다.



'USTWO게임즈'가 어떤 회사인지 간단한 소개 부탁드려요.

런던과 뉴욕, 스웨덴 남부의 말뫼 등 3개 지역에 200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있는 디지털 상품 취급업체 'USTWO' 내의 한 부서입니다. 별도의 팀을 꾸려 운영하고 있으며 해당 팀을 'USTWO게임즈'라고 지칭하고 있죠.


'모뉴먼트 밸리'는 어떤 의도로 기획하게 됐나요?

'모뉴먼트 밸리'는 저희 팀의 첫 작품입니다. 'USTWO게임즈' 팀원들은 저마다 각기 다른 게임을 제작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팀을 꾸려서 함께 하나의 게임을 제작한 걸로는 처음이고요. 저희 팀은 1년 전부터 구성이 되어 개발에 착수되었습니다.


'모뉴먼트'라는 세계관이 의미하는 것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해줄 수 있을까요?

게임 속에서 등장한 빌딩들은 모두 죽은 이들에 의한 산물입니다. 죽은 이들의 문화이기 때문에 그것을 '기념비(=모뉴먼트)'라고 지칭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러한 시스템을 개발한 사람들도 빌딩을 '기하학적인 기념비'라고 불렀고요.


최근 앱스토어에서 '모뉴먼트 밸리'가 1위를 기록하기도 했는데요. 전세계적으로 어느 정도의 실적을 거두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모뉴먼트 밸리'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그만큼의 성과를 내고 있다는 점에 대해 매우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기대했던 수치 그 이상으로 재정적인 부분에서의 성과도 좋았고요. 그 뿐만이 아니라 회사 홍보 차원에서도 굉장히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주었습니다.

게임이 출시되고 많은 인기를 얻자 트위터와 인터넷을 통해 저희 팀과 회사 관련 정보 및 프로필 등이 널리 퍼졌죠. 이러한 방식을 통한 홍보 효과는 저희가 재정적으로 수익을 창출한 것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 개발자 사진 하나를 달라고 부탁했더니, 흔쾌히 이걸 보냈다. 여러모로 비범하다


착시 효과를 활용한 퍼즐 시스템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러한 컨셉에 대해 영감을 받은 소재가 따로 있었나요?

'모뉴먼트 밸리'를 플레이 해 본 많은 사람들이 "이 게임은 모리츠 코르넬리스 에셔(MC Escher)에게서 영감을 받았다"라고 말합니다. 물론 저희가 게임을 개발할 때 그가 구현했던 2차원 평면 속의 3차원 공간에 대해 도움을 받은 건 맞습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저희는 인간들의 기본적인 습성에 대해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환상(illusion)과 속임수(tricks)에 대해 좋아하는 경향이 있죠. 그래서 '모뉴먼트 밸리'에서는 마법과도 같은 다양한 착시 효과와 여러 시스템을 도입하게 된 것입니다.


모든 움직임에 서로 다르게 상호작용하는 사운드에 담긴 의미가 궁금하고, 어떻게 작업했는지도 알고 싶습니다.

플레이어들에게 색다른 게임 경험을 선사하고자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나아가 게임에 보다 몰입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했죠. 궁극적으로 저희가 추구했던 바는 사람들이 게임에 더 깊게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나아가 콘텐츠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었습니다.

플레이를 하다가 종종 사운드 때문에 놀라시는 경우도 있었겠지만, 사운드를 통해 유저들이 독특함을 느낄 수 있도록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열심히 기획했습니다.

▲ 상상 그 이상의 게임 구조, 그리고 까마귀


길을 가로막는 적을 까마귀로 설정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아닙니다. 까마귀로 적을 설정한 데는 특별한 의미가 없었습니다. 까마귀가 아니라 다른 어떤 종류의 새라도 사실 관계가 없었죠.


게임의 볼륨이 아쉬웠다는 팬들도 있는데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희는 누구나 클리어 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것이 저희가 달성하고자 했던 목표였죠. 하지만 모바일 게임을 즐기는 많은 유저들이 이러한 식의 게임에 익숙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콘텐츠 볼륨이 아쉽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나오는 것 같네요.

다른 문화 장르와 금액적인 면에서 비교했을 때 '모뉴먼트 밸리'의 콘텐츠 양은 결코 적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나 책의 경우 이를 소비하는데 몇 시간이면 충분합니다. 하지만 게임의 경우 무한적으로 이용할 수 있죠. 적은 비용을 들여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뉴먼트 밸리'를 구매했고 즐겁게 게임을 했죠. 저희는 그것에 만족합니다.


게임의 예술성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는데, 예술로서의 게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게임은 당연히 예술이 될 수 있습니다. 게임은 충분히 예술로 인정받을 자격을 갖췄다고 생각합니다. 이상한 사람들이나 이런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거죠. 게임이 예술이 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제대로 게임을 즐겨보지 못한 사람들일 겁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모뉴먼트 밸리'가 그들의 시선을 변화시키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한글화가 된 것을 보고 사실 놀랐습니다. 개발 초기 단계부터 한국 시장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지, 더 나아가 한국 게임 시장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한국 게임 시장이 정말 큰 곳이라는 점에 대해 저희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많은 게이머들이 '모뉴먼트 밸리'를 플레이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나아가 지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저희 게임을 즐긴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고요.(웃음)


'모뉴먼트 밸리' 안드로이드 출시 계획은 없나요?

한국 모바일 게임 시장 중 iOS의 비중이 상당히 낮으며 판매 실적 역시 높지 않다는 점이 사실 많이 아쉬웠습니다. 한국 시장이 안드로이드 게임에 더 치중되어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습니다.



현재 준비하고 있는 후속작이 있나요? 혹은 '모뉴먼트 밸리'의 스토리나 컨샙을 차용한 다른 콘텐츠를 준비하고 있다든지?

현재 저희 개발팀에서는 몇 개의 신규 레벨을 디자인하고 있으며, 결과물에 따라서는 추가 콘텐츠로 가미될 수도 있겠죠. '모뉴먼트 밸리'의 후속작을 새로 개발할 생각은 없습니다. 가능하다면 새로운 아이디어와 새로운 컨셉의 게임을 만들고 싶어요.


'USTWO게임즈'는 지금까지 모바일 게임 개발에만 전념했는데요. 앞으로도 모바일 플랫폼에만 국한되어 게임을 개발하실 예정인가요?

'모뉴먼트 밸리'의 경우 만약 PC 플랫폼으로 출시가 되었다면 게임의 화면 비율이 맞지 않을 뿐더러, 터치 기능이 지원되지 않아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겠죠. 그래서 모바일 게임으로 출시된 겁니다.

앞으로도 모바일 플랫폼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서 개발을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희가 만든 게임이 다른 플랫폼에 최적화 된 타이틀이라면 모바일 외에 다른 플랫폼으로 출시되겠죠.



마지막으로 한국 유저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저희의 바람은 '모뉴먼트 밸리'에서 저희가 유저들에게 선사하고자 했던 '불가사의한 매력'을 한국 게이머들도 함께 느껴주시고 즐겨주시는 겁니다. 최고의 게임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저희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고요. 이러한 노력을 여러분들이 알아주셨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