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아동권리 현주소 보여준 20대 국회의 ‘아동 법안 패싱’

2020.05.05 20:39 입력 2020.05.05 20:54 수정

어제는 제98회 어린이날이었다. 문재인 대통령 내외는 3D 그래픽으로 구현된 ‘청와대 가상공간’에서 블록 장난감 캐릭터로 등장해 어린이들에게 청와대를 소개했고, 정세균 국무총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대한민국 모든 아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라날 수 있는 사회적 여건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글을 올려 어린이들을 위한 사회를 약속했다. 그러나 20대 국회의 아동 관련 법안 처리 상황은 우리 사회 아동권리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아이들의 삶과 전 생애에 영향을 미칠 법안들이 기약 없이 뒷전으로 밀려 있다.

5일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서 ‘아동’을 키워드로 검색한 결과 총 256개 법안 중 처리된 것은 80개에 불과했다. 176개 법안이 계류 중인데 20대 국회 폐회와 함께 자동폐기된다. 20대 국회가 풀지 못한 아동복지법의 내용을 보면 어린이 복지 실태는 심각하다. 전체 성범죄 중 11.3%를 차지하는 친족에 의한 성범죄 은폐를 막을 길은 여전히 요원하다. 학대피해 아동이 원가정으로 돌아간 후 학대 재발 여부를 감시하기 위한 법안도 논의가 중단된 지 오래다. 2018년 폭염 속 어린이집 통학차량에서 방치된 4세 아동의 사망으로 들끓었던 차량방치 관련 법안도 개념 정의 등 논란으로 허송세월만 하고 있다. 아동복지법 외에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법’과 아이들의 놀 권리를 지켜주겠다는 문 대통령의 ‘아동인권법 제정’ 공약도 길을 잃은 상태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은 ‘놀 권리’ 등에 대한 국가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지난해 유엔아동권리협약 이행 제5·6차 대한민국 보고서에서 재차 지적된 한국 어린이들의 과도한 학습노동 현실은 국제사회도 우려할 정도다.

아동복지 법안들이 뒷전으로 밀리는 이유는 이들을 위해 목소리를 크게 내는 적극적 옹호자들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달 30일 성매수 범죄 대상이 된 아동·청소년을 ‘피해 아동, 청소년’으로만 규정하도록 한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이 유엔이 권고한 지 무려 12년 만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사이 없었어도 될 피해자들이 양산됐다.

시민단체·유관기관 연대체인 ‘대한민국 아동·청소년정책연대’는 지난 21대 총선을 앞두고 아동기본법 제정 등 8가지 공약과제 제안서를 정당들에 제출해 상당 부분 긍정적인 회신을 받았다. 이제 아동·청소년 권익을 위해 사회 전체가 적극적 옹호자가 되어야 한다. 아동을 대하는 방식만큼 그 사회의 정신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은 없다(고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이 언제까지나 구호로만 그쳐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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