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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LG전자는 맥주 시음회를 왜 외국 대사관에서 열어야 했나

입력 : 
2019-08-19 00: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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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가 최근 산업통상자원부에 규제 샌드박스를 신청했다. "맥주 시음행사를 할 수 있게 해 달라"는 내용이라고 한다. 규제 샌드박스는 새로운 제품 또는 서비스를 위해 일정 기간 기존 규제를 유예해주는 제도다. 올해 초 처음 도입됐다. 전자회사인 LG전자가 맥주 시음행사 허가를 요청한 것은 지난달 출시한 수제 맥주 제조기 'LG홈브루' 때문이다. LG홈브루는 캡슐과 물만 넣으면 자동으로 맥주를 만들어주는 신개념 전자제품이다. 캡슐형으로는 세계 최초다. 문제는 현행법상 주류 판매 면허가 없는 LG전자는 시음행사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주세법상 주류 판매 면허는 5t 이상 주류 제조 설비가 있어야 취득할 수 있다. 따라서 지난달 LG홈브루 출시 행사는 서울 중구에 있는 주한 영국대사관에서 열렸다. 외국 공관은 국내법이 적용되지 않아 시음 행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캡슐형 맥주 제조기는 공기청정기, 의류관리기 등과 더불어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에 착안한 전자제품으로, 한국 시장이 테스트베드의 의미를 갖는다. 세계 가전시장을 한국 기업들이 주도하는 만큼 글로벌 히트 상품이 될 수도 있다. 그러려면 일단 한국 고객부터 사로잡아야 할 것이다. LG홈브루는 대당 가격이 399만원이다. 이런 고가 맥주 기계를 맥주맛도 보여주지 않고 팔기는 쉽지 않다. 지금으로선 맥주 마니아들 입소문에만 의지해야 한다.

기술 진보는 끊임없이 새로운 공급을 가능케 하고 여기에 맞춰 새로운 수요가 생겨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엔 어제까지 상상할 수 없었던 신개념 제품이 속속 등장할 것이고 기존 법규와 충돌하는 사례도 생겨날 것이다. 이때 규제를 얼마나 융통성 있게 적용하느냐에 글로벌 표준 자리를 놓고 경합하는 기업들의 성패가 갈릴 수 있다. 한국은 이 대목에서 갈 길이 멀다. 그나마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해 규제벽에 막힌 기업들이 마지막으로 호소할 여지가 생겨난 것은 다행이다. 샌드박스를 더 적극적으로, 더 도전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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