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런 버핏·빌 게이츠 우정 이어준 ‘브리지게임’···치매예방 특효

워런 버핏과 빌 게이츠는 1991년 처음 만난 이후 브리지 게임을 즐기며 나이를 초월한 우정을 쌓아가고 있다.

정충시 한국브리지협회 회장 “손주와 즐기기 좋은 게임”

80년대 대학가 유행 ‘마이티’ ‘기루다’가 브리지 변형판

[아시아엔=박수진 <서울대총동창신문> 기자] 워런 버핏과 빌 게이츠가 머리를 맞대고 즐기는 놀이. 조훈현·김수장 9단 등 바둑기사들의 즐거운 취미이자,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과 같은 서양문학에서 네명 이상만 모이면 심심찮게 시작하는 게임. 바로 카드게임 ‘브리지’(Bridge)다.

브리지는 서양에서 체스와 함께 쌍벽을 이루는 두뇌 스포츠다. 국내에는 50여년 전 미군부대를 통해 들어와 귀화 1호 미국인인 고 민병갈씨가 보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1993년엔 한국브리지협회가 생겨 국내에도 본격적으로 브리지 동호인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 한국브리지협회 제14대 회장에 취임한 정충시 세진에이엠 대표(서울대 화공과 72학번)를 인터뷰했다. 6년 전부터 브리지의 매력에 푹 빠져 매일같이 카드를 쥐는 브리지 마니아다. 2월 24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한국브리지협회(www.kcbl.org) 사무실에서 만났다. 매일 오전과 오후 회원들이 모여 브리지 게임을 벌이는 공간에 4인용 테이블 40여대가 늘어서 있다.

정충시 한국브리지협회 회장

“브리지는 두뇌스포츠이자 마인드스포츠입니다. 워런 버핏이 ‘브리지를 함께 할 네 사람만 있다면 감옥에 가도 좋다’고 얘기해 유명해졌죠. 비즈니스나 정치 하는 사람, 시인, 배우 등 다양한 이들이 즐기는 게임이에요.”

4인 게임인 브리지는 동서와 남북 방향으로 둘씩 파트너를 맺고 52장의 카드를 13장씩 나눈다. 기본적으로는 네 명이 한 장씩 내놓은 카드 중 높은 점수의 카드를 낸 팀이 이기는 구조지만 단순히 카드가 나뉜 운에 맡기지 않는다. 게임 시작 전 얼마나 많은 점수를 딸 수 있는지 일종의 경매를 걸면서 플레이어들의 지적 매력이 발동한다. 카드 무늬에 따라 점수가 다르기 때문에 부르는 점수만 들어도 나의 파트너와 상대팀이 가진 카드를 어림짐작할 수 있다.

“게임 하는 동안 부단히 머리를 써야 해요. 들고 나는 카드를 다 기억해야 하고, 카드마다 점수가 있어 비딩 점수를 보고 각자가 가진 패를 계산하는 능력도 있어야 하죠. 맞은편에 앉은 파트너와 무언의 약속을 할 수 있는 스킬이 세계적으로 개발돼 있는데 그걸 써서 상대 패를 포위하는 작전을 세울 수도 있어요. 13장을 다 쓰는 한 보드가 7분 정도 걸립니다. 보통 25보드 전후로 24~28보드 정도가 한 세션입니다. 3시간 남짓 머리를 풀로 가동하니까 치매예방에 좋을 수밖에 없어요.”

정충시 회장이 브리지를 접한 것은 아내를 통해서였다. 대기업 자회사 사장으로 헝가리에 파견된 아내가 외교관 부인들과 어울리며 브리지를 배워왔다. “아내가 이미 브리지협회 8대 회장을 지냈습니다. 25년 넘게 브리지를 즐기고 있죠. 저는 바쁜 현역에서 물러나면 시작하겠다고 약속하고 6년 전쯤 입문했어요.”

브리지가 생소해도 1980년대 대학가에서 ‘마이티’나 ‘기루다’ 같은 카드게임을 해봤다면 금세 룰에 익숙해질 수 있다. 브리지의 변형판이기 때문이다. 여러 사람이 카드를 나눠 갖고, 점수가 높은 카드를 모아 한 판을 가져간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기루다가 서울대 공대에서 시작됐다는 말도 있어요. 아내가 하는 걸 옆에서 보니 플레이 방식이 ‘기루다’와 비슷해서 나중에 꼭 해보고 싶었죠. 덕분에 6년 한 것 치곤 빨리 올라간 편인 것 같아요.(웃음)”

아시아 국가 중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은 서구문화 영향을 일찍 받아 우리보다 브리지 역사가 오래됐고 덩샤오핑 주석이 브리지 마니아였던 덕에 중국도 팬층이 두텁다. 반면 아직 국내에서 브리지를 알고 즐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2018년 인도네시아 아시안게임 정식종목으로 채택됐지만 대한체육회 인정단체를 구성하지 못해 한국은 선수를 파견하지 못했다.

동호인 수가 적고 수도권 중심으로 분포돼 있어 좀처럼 요건을 충족하기에 어려운 상황이라고 한다. 그는 회장직 재임 중 브리지 인구 저변확대가 최우선 목표라고 했다.

브리지는 회원 1100명, 활동인구 400명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중년들에게 인기가 있다.

“한국도 빠르게 동호인이 늘어 현재 협회에 1100명이 가입했고, 400명이 활동 중입니다. 시간 여유가 있을 때 시작하다 보니 50대부터 70대 사이 중년 회원이 많아요. 어릴 때 시작하면 더욱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어 요즘엔 초등학교 방과후 수업에서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손주와 함께 즐기기 좋은 게임이에요.”

파트너와 ‘이심전심’하는 게임 특성상 사교에도 좋다. “브리지는 절대적으로 에티켓 게임이에요. 바둑이나 체스는 혼자 할 수 있지만 이건 파트너와 같이 하잖아요. 상대가 실수해도 관용으로 받아주는 게 중요해요. 그래서 성격이 까칠하거나 상대방을 힘들게 하는 사람은 파트너도 잘 구하지 못해요. 신뢰를 가지고 파트너십을 형성해야 좋은 플레이도 할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 브리지를 배울 수 있는 곳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수도권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꾸준히 브리지 강습반을 개설하고 있다. 제법 인기가 좋다고 한다. 정 회장도 문화센터에서 브리지를 배웠다. 초급과정에서 6개월 정도 규칙에 익숙해져야 중고급으로 나아가 더 고도로 게임을 즐기는 스킬을 익힐 수 있다. 협회는 초급 단계를 뗀 이들이 비슷한 수준의 플레이어를 만날 수 있도록 클로버 클럽을 운영한다.

“카드를 가지고 한다면 도박이라고 오해하는 사람이 있지만 브리지는 철저히 점수만 매기는 스포츠입니다. 친구들에게도 소개했는데, 은퇴하고 머리 쓰는 게 싫다며 배우겠다는 사람이 적어 아쉬워요. 룰을 익히면 90세까지도 즐길 수 있는 게임인 만큼 나이 드신 분께 권하고 싶습니다.”

정충시 회장은 탄산칼슘 제조업체인 스위스 오미아그룹의 동아시아지역 총괄회장과 태경산업 사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주식회사 세진에이엠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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