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49년 흘렀어도 ‘전태일’의 아우성 넘치는 노동현장

2019.11.12 20:52

12일 오전 11시 서울 청계천 전태일다리 위에 노동자들이 두세 줄로 섰다. 저마다 하고픈 얘기를 적은 손팻말을 들었다. “근로계약서도 없이 10년 운전했습니다”(중소병원 운전기사),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사장 맘대로 근무시간이 바뀐다”(화훼단지 노동자), “한글날 쉬었는데 징계. 노동절 유급휴일도 먼 얘기입니다”(50대 경비노동자), “토요일까지 일하는데 월급명세서도 안 줘요”(판매직 여성노동자), “직장 내 괴롭힘으로 결국 해고됐어요”(중소의료제작업 노동자), 보석세공 노동자의 팻말엔 ‘작업환경 측정(5.6%), 퇴직금 미지급(55.1%), 4대보험 미가입(72%)…’으로 이어지는 주얼리노동 실태가 적혔다. 바로 옆 평화시장은 1970년 11월13일 22세이던 전태일이 몸에 불을 지르고 달리며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일요일은 쉬게 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친 곳이다. 전태일 49주기 하루 전날 척박한 노동현장에 살고 있는 ‘2019년 전태일들’이 다시 모인 셈이다.

함께 외친 슬로건은 “모든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을”이었다. 이 법엔 맘대로 해고하지 못하고, 노동자라면 누구나 안전하게 일하고 쉬며 노동계약사항(근로계약서·월급명세서·취업규칙)을 인지할 기본적 권리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 근로기준법마저 적용되지 않고 노조도 없는 5인 미만 영세 사업장과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들이 오늘 전태일다리에 선 것이다. 숫자도 적지 않다. 국내에 등록된 320만개 5인 미만 사업체에서 전체 노동자의 27%인 580만명이 일하고 있다. 대리운전·방문판매·배달처럼 자영업자로 분류돼 사회보험·퇴직금이 없거나 제약받는 특고노동자만 166만~221만명, 스마트폰 앱으로 지시받는 플랫폼(디지털특고) 노동자도 54만명으로 파악된다. 민주노총 78개 상담기관에 접수된 상담 셋 중 둘은 영세사업장·여성·비정규직·청년(단시간) 노동자에 집중돼 있다고 한다. 장시간저임금 노동에 지친 ‘전태일들’이 계속 늘고 있다는 뜻일 테다.

그럼에도 산재보험을 적용받는 특고노동자는 아직도 30~40%선에 불과하다. 위장도급을 막기 위한 근로감독망을 촘촘히 하고, 업종별 ‘표준협약’을 독려하며, 길게는 유럽처럼 근로형태보다 소득활동을 기준으로 사회보험체계를 확장하는 방안도 모색할 때가 됐다. 49년 전 전태일이 화염 속에 외친 근로기준법은 여전히 메우고 들여다볼 사각지대가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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