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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사법농단 재판 첫 무죄 판결을 주목한다

입력 : 
2020-01-14 00: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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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에 연루된 혐의로 기소된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번 판결은 사법행정권을 남용했다는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전·현직 판사 사건 중 처음 나온 법원의 판단이어서 주목된다.

재판부는 유 전 판사가 받고 있는 혐의를 모두 무죄로 판단했다. 유 전 판사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공모해 다른 연구관들에게 특정 재판의 경과 등을 파악하는 문건을 작성토록 한 혐의에 대해 "검찰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공소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퇴직 시 재판연구관 검토보고서를 갖고 나간 혐의에 대해선 "개인정보 유출의 고의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유 전 판사가 재판에 개입해 법관 독립을 침해했다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에 대해 무죄가 선고된 점이다. 직권남용죄(형법 123조)는 현 정권 출범 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이나 사법농단 의혹 등 '적폐수사'에서 검찰이 전가의 보도처럼 적용해온 혐의다. 하지만 직권남용죄는 기준이 모호해 헌법상 명확성의 원칙과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될 소지가 크다. 실제로 국정농단 사건 중 30%에 대해 무죄가 선고되고, 지난 9일 자신이 성추행한 서지현 검사에게 인사 보복을 한 혐의(직권남용)로 기소된 안태근 전 검사장에 대해 대법원이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시킨 것도 이런 우려와 무관하지 않다.

권력을 남용한 공무원에 대한 단죄는 필요하다. 하지만 정치적 논란이 많은 사건일수록 무리하게 기소한 경우는 없는지 살피고 엄정하게 걸러내야 한다. '드루킹 댓글 조작'에 연루된 김경수 경남지사를 1심에서 법정 구속시킨 판사를 검찰이 사법농단 혐의로 기소한 것을 놓고도 격렬한 논쟁이 벌어진 바 있다. 법원이 정치적 외압에 휘둘리지 않고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할 때 신뢰도 되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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