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새 공법’ 탓에 13명 감전사읽음

배명재 기자

“전봇대 오를 때마다 아내와 아이들의 이름을 조용히 부른답니다. 혹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니까요. 그러면 정신이 더욱 바짝 들죠.”

<b>“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b> 19일 오후 전남 담양군 추성리에서 전기 노동자들이 2만2900V가 흐르는 전선을 고무담요 등으로 감싼 채 전봇대 사이에서 노후전선 교체 작업을 하고 있다. 담양 |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19일 오후 전남 담양군 추성리에서 전기 노동자들이 2만2900V가 흐르는 전선을 고무담요 등으로 감싼 채 전봇대 사이에서 노후전선 교체 작업을 하고 있다. 담양 |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19일 오후 전남 담양군 용면 추성리 들판을 가로지르는 지방도 897호선. 이 도로를 따라 16m 높이 전봇대가 50m 간격으로 셀 수 없이 늘어서 있다. 이들 전봇대에는 2만2900V를 나르는 고압선 3개가 이어져 있다. 전봇대 아래에 진한 청색 작업복을 입은 전기노동자 8명이 작업차량 3대에서 내렸다. 이들은 이날 하루 동안 노후화된 전선 900m를 교체하는 일을 했다. 전봇대 18개 구간이다. 곧바로 2명이 한 차로를 막고 차량을 통제하면서 공사 시작을 알렸다. 2명은 검은 피복의 굵은 전선을 전봇대 사이를 오가며 길게 펼쳐놓았다.

이윽고 리프트차량 2대가 ‘부르릉’ 굉음을 내며 양쪽 전봇대 꼭대기 바로 옆으로 작업자 1명씩을 올렸다. 고무장갑과 절연용 소매를 낀 이들은 갖고 올라간 진홍색 고무담요(80×60㎝)와 전선보호막대(110㎝)를 고압선 3개에 덮었다. 모두 감전사고를 막기 위한 장치다.

이어 땅에 놓은 새로운 전선을 끌어올려 양쪽 전봇대 고압선 애자에 팽팽히 매단 후 곧바로 전기를 넣고, 바로 전까지 전기가 흐르던 노후전선은 끊어냈다. 그럴 때마다 “부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전봇대가 흔들렸다.

1시간여 만에 일을 마치고 땀범벅이 된 채 내려온 김모씨(57)는 “예전에는 ‘대체전선’을 따로 연결하고 전봇대에 전기가 흐르지 않게 한 후 작업을 하도록 해 사람이 다칠 일이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21년째 전봇대를 타는 박모씨(44)도 “고압선을 만질 때마다 차마 인간으로선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만 세 가족을 거느린 가장이어서 어쩔 수 없다”며 한숨지었다.

이들의 이날 전선교체 작업 방법은 한전이 2001년부터 새 공법이라며 도입한 ‘활선(活線)공법’이다. 한전이 예전 공법은 잠시라도 정전을 해야 하고, 인원도 더 많이 동원된다면서 한 민간업체가 개발한 이 공법을 보급한 것이다. 그러나 현장 노동자들은 많은 사상자를 내고 백혈병 등을 부르는 공법이라며 즉각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전력공사가 2014년 국회에 낸 자료에 따르면 2009~2013년 이 공법으로 작업하던 중 13명이 감전사고로 사망했다. 또 140명이 화상, 손목과 팔 절단 등의 사고를 당했다.

전국건설노조 석원희 전기분과위원장은 “이 통계는 노조가 집계한 자료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면서 “한전이 사고를 낸 업체에 엄한 벌점을 주기 때문에 많은 사고가 전국적으로 은폐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지난해 5월 26년간 전선교체 작업을 한 순천지역 노동자가 백혈병으로 사망한 사실을 들며 정부 차원의 원인 규명도 요구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하태훈 광주전남 전기원지부장은 “선진국에선 활용하지 않는 ‘활선공법’을 정부가 빨리 나서 폐지토록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전 관계자는 “이 공법은 안정적으로 전기 공급을 할 수 있고, 현장에서 안전장비만 제대로 갖추면 문제가 될 게 없다”면서 “하지만 현장에서 불만을 토로하고 있어 더욱 기술적으로 안전한 공법이 있는지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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