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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교차로 `레드존 마법`…불법주차 막자 車흐름 30% 빨라져

도쿄 도심 법규위반 청정지역 4~5번만 딱지 떼면 면허정지
교통사고 10년새 반으로 `뚝`
◆ 線지키는 先진사회 3부 - 해외 선진현장 ① 日메이와쿠와 배려양보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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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 신주쿠의 한 교차로에서 차량들이 보행 신호에 맞춰 정지선 안쪽에 멈춰 서 있다. 우측 붉은색(레드존) 구간은 신호 대기에 따른 일시정지는 가능하지만 절대 주정차 금지 구역에 해당돼 도심 차량 흐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지난 4월 14일 오후 일본 최고의 번화가 중 한 곳인 도쿄도 신주쿠구 니시신주쿠의 한 교차로. 높이 치솟은 빌딩 숲이나 번화한 거리는 서울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도로 위 교통 상황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극심한 정체가 다반사인 서울과 달리 뜻밖의 원활한 차량 흐름이 지속됐다. 한국의 도로와 차이점이 뭔지 유심히 살펴보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바로 교차로 가장자리마다 붉은색으로 칠해진 '레드존(Red Zone)'이었다. 일명 '가라호소(컬러포장)'로 불리는 일본의 레드존은 교차로 모퉁이 부근 바깥쪽 1차로에 적용돼 절대 주정차를 못 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준법의식이 워낙 투철하다 보니 단속 경찰이나 폐쇄회로(CC)TV가 없는 교차로에서도 모든 차량이 레드존을 철저히 준수했다. 신주쿠에서 만난 시민 마에다 씨(39)는 "빨간색으로 특별 단속 구역을 표시해 놓으니 이렇게 흐린 날씨에도 경고 메시지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며 "좌회전 할 때 앞쪽을 가로막는 차가 없으니 차로 변경을 급하게 하거나 멈춰 설 필요가 없다"고 웃으며 설명했다.

최근 일본 내에서 가장 주목받는 교통 대책이 바로 가라호소를 도입한 도쿄도의 '스무드(Smooth) 도쿄21'이다. 도쿄도는 경시청 도쿄국도사업소와 연계해 도내 극심한 교통 정체 구간을 중심으로 총 30개 도로 100개 교차로, 국도 10개 노선 40개 교차로에 레드존을 적용했다.

도로와 도보 사이 연석에도 노란 페인트를 칠해 주정차 금지 구역을 표시했다. 2001년 추진된 이 정책은 2003년 '확대작전' 정책을 통해 지금까지 활발하게 진행되며 도쿄 곳곳에 '선 지키는 문화'를 심어 놓고 있다. 효과는 놀라웠다. 표본 노선 25개 가운데 피크타임 기준 23곳, 평시 19곳에서 당초 목표치(피크타임 20%, 평시 10% 감소)를 초과 달성했다. 전반적인 교차로 통행 시간은 피크시간 기준 30%까지 줄었고, 평시 기준으로도 12% 감소했다.

하마무라 료이치 도쿄도 교통안전과장은 "일본에서도 빨간색은 가장 주의해야 할 색깔로 여겨져 '절대 금지'를 표현하기 위해 도로를 빨갛게 포장했다"며 "한국의 스쿨존·실버존에 해당하는 구간은 초록색 등 다양한 가라호소를 활용해 운전자에게 경각심을 주고 준법정신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한눈에 지켜야 할 선을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일본 도로의 가장 큰 특징이다. 교토부 나가오카쿄시에서 확인한 '존30'이 대표적이다. 존30은 해당 구간 최고 속도를 시속 30㎞ 이하로 제한하는 곳이다. 우리나라 스쿨존이나 실버존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주로 인도가 없는 골목길이나 학교 주변 등이 지정돼 있으며 도로 바닥에 한 차로를 가득 채울 정도로 크고 선명하게 '30 금지'라고 표시돼 있다. 과속을 막는 경고 표시로 도로에 손바닥만 한 '비트(돌출 구조물)'를 박아둔 것도 눈에 띄었다.

지자체가 경시청과 연계해 불법 주정차를 강하게 단속한 것도 선 지키는 문화를 만드는 데 주효했다. 일본은 불법 주정차 1회당 1~2점의 벌점이 주어지는데, 총벌점이 7점이 되면 면허가 정지돼 재교육을 받아야 다시 운전대를 잡을 수 있다. 불법 주정차만 4~5번 해도 운전대를 상당 기간 놓아야 하는 셈이다.

강한 단속 기조는 속도·신호 위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일본 도로에선 단속 카메라의 존재를 미리 알 수 있는 표시가 전혀 없다. 내비게이션에도 카메라 위치가 나오지 않아 마음 놓고 속도를 내기 어렵다. 속도 위반이나 불법 주정차가 상습적으로 이뤄지는 특별 단속 구역에서는 지자체와 계약한 민간 단속원들이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고 있다. 이처럼 오랜 기간 일관성 있게 교통 정책을 지속해 온 일본에서는 법규를 지켜야 한다는 자발적인 인식이 운전자들에게 보편화돼 있다. 실제로 저녁 혼잡 시간대에 신주쿠 못지않은 번화가인 롯폰기역 일대 교차로를 1시간가량 모니터링한 결과 교통 법규를 위반하는 차량은 1대도 발견할 수 없었다.

장택영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도쿄도의 정책 성과를 단순히 도로에 색을 칠한 결과물로 볼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경각심을 일깨워 선을 지키도록 한 다양한 정책의 결실로 봐야 한다"며 "서울시에서도 전체 교통사고의 60%가량이 교차로에서 나고 있어 새로운 형태의 레드존 정책 등을 적극 검토할 만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기획취재팀 : 뉴욕 = 황인혁 특파원 / 도쿄·오사카 = 백상경 기자 / 홍콩 = 김규식 기자 / 파리 =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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