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⑤ 한국 정치에 청년은 없다]정당들, 평소엔 외면 선거 땐 ‘표몰이’ 이용…“청년 정치인은 ‘삐끼’다”

김원진·이혜리·이효상 기자

청년, 왜 정치 중심에 서지 못하나

정당이 청년을 찾는 계절이 돌아왔다. 4월13일 치르는 20대 총선을 앞두고 정당들은 분주하다. 정당은 선거운동을 해줄 사람이나 선거캠프에서 사람을 끌어모으고 얼굴마담이 되어줄 청년들을 물색한다. 김성용 새누리당 중앙미래세대위원장(30)은 “선거철은 총학생회를 비롯해 청년들이 정당에 가장 많이 유입되는 시기”라고 했다. 더구나 비정규직·저임금 일자리부터 주거·결혼까지 구조적으로 깊어지고 있는 청년 문제가 한국 사회의 화두가 되면서 ‘청년 정치’를 호명하는 목소리는 더 커졌다. 청년은 왜 국회에 들어가기 힘든 것일까. 청년은 왜 정치의 중심에 세워지지 못할까. 청년 문제를 푸는 정치는 불가능한가. 그 답을 찾기엔 한국 정치에서 비어 있는 ‘청년’의 공간이 아직 너무 크다.

[부들부들 청년][3부⑤ 한국 정치에 청년은 없다]정당들, 평소엔 외면 선거 땐 ‘표몰이’ 이용…“청년 정치인은 ‘삐끼’다”

■“나는 삐끼였다”

김성용 위원장은 "정치인은 가치와 이념, 철학을 파는 판매업이라 생각한다"는 전제를 달아, 정당 내 청년을 ‘삐끼’에 비유했다. 선거철에 사람을 모집하고, 표를 끌어모으는 데만 쓰이고 이후에는 관심에서 멀어지고 버려진다는 의미에서다. 김 위원장은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치르며 지인들에게 정당 활동을 권유했다. 김 위원장은 “함께 정당 활동 하자고 한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라며 “2012년 총선과 대선 때 새누리당에 발을 들였던 청년들만 수천명인데, 남은 건 50여명뿐”이라고 말했다.

유달진씨(28)는 열린우리당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을 거쳐 더불어민주당으로 당명이 바뀌는 순간을 모두 함께한 10년차 당원이다. 유씨는 “한국 정당은 잡은 고기에 먹이를 주지 않는다. 꾸준히 활동하는 청년 당원에겐 관심이 없다. 예산이 없어 청년 당원끼리 모였을 때 자비로 20~30명분의 도시락을 산 적도 있다”면서 “이렇듯 청년들이 정당 내에서 설 자리가 좁으니 당 외곽에서 작은 연구소를 만들기도 한다”고 했다.

유씨는 이동학 더민주 후보(34·노원병)의 ‘다준다청년정치연구소’와 장경태 더민주 청년비례 후보(33)가 주도해 만든 ‘매니페스토청년협동조합’을 대표적인 예로 꼽았다.

더민주는 4·13 총선 청년비례대표 선출 과정에서 최종 후보자로 뽑힌 2명이 ‘정실개입’ 의혹과 ‘당직자 첨삭지도’ 논란이 제기돼 사퇴하며 원점에서 비례대표 선출을 전면 재검토하는 내홍을 겪고 있다. 청년 정치인 입문이 이벤트로 전락한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청년 정치’라는 모호한 개념이 부유하는 상황은 역설적으로 ‘청년 문제’를 진지하게 소화하지 않는 한국 정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청년 문제는 부의 대물림·저임금 불안정 노동 심화 등이 씨줄 날줄로 얽혀 터져 나온 ‘현상’이다. 청년 문제는 단순히 청년이 국회로 들어가는 것 자체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다만 기성세대와 절연한 청년이 많이 들어간다면, 불평등 구조 등을 풀기 위해 전력을 쏟는 데 방해가 되는 계파정치·밀실정치의 힘이 약화되리라는 기대를 품을 수는 있다.

이관후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은 “미국의 버니 샌더스가 하는 게 청년 정치다. 중요한 건 새로운 콘텐츠와 아젠다, 기존과 다른 대안을 내놓는 것이 청년 정치”라면서 “앞으로의 청년 정치는 고졸, 지방에 있는 청년, 20대 미혼모 등 청년이면서도 사회의 관심에서 비켜나 있는 이들에게 관심을 쏟는 정치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취재진은 청년 정치의 ‘상’을 기성정치와 다른 ‘새 콘텐츠와 아젠다를 지닌 정치’ ‘대의민주주의와 정당정치를 바로 세우는 정치’로 잡고, 정치에 뛰어든 청년들을 심층 인터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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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내 ‘청년위원회’ 존재도 모르는 의원이 있다”

당에서 청년 문제를 다루는 시스템이나 소통은 여전히 걸음마 수준이다. 대학생위원회, 청년위원회, 미래세대위원회 등 당내 청년 기구는 존재한다. 하지만 소통 창구가 없고 의사결정 참여의 길도 막혀 있다.

이소라 더민주 서울시당 대학생위원장(22)은 의사소통의 부재를 지적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당시 문재인 대표가 청년 정책을 발표하기 전 당내 청년 당원들과 이렇다 할 소통이 없었고 외부인사로 청년 정치인을 영입하면서 단 한 번의 조언도 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더민주에는 지난해 ‘청년국’이 신설됐지만 여전히 소통 구조는 전무하다. 당내 대학생위원회나 청년위원회의 존재를 모르는 현역 의원도 있었다”며 “정당 내에서 청년의 의견을 수렴할 시스템도 구축하지 못하면서, 정당 밖 청년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을에 출마한 하윤정 노동당 후보(29)는 당내 ‘아재 정치’의 벽을 지적했다. 당내에서 남성이 과대대표가 된다는 것이다. 노동당의 총선 출정식에도 선대본부장은 여성 1명 빼고 모두 남성이었다고 했다. 하 후보는 “노동당을 비롯한 진보정당의 정책을 보면 남성의 시선이 느껴진다”며 “ ‘5시 퇴근법’도 사무직 남성을 중심으로 이름을 지은 게 아닌가 싶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퇴근시간이 5시인 경우는 많지 않다. 마트 여성 근무자들은 밤 12시 퇴근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남성 중심적인 문화 속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여성 청년들이 많다는 것이다.

진보정당을 두루 경험한 한 청년 정치인은 “징징대지 말고, 청년 당원들도 권력투쟁을 벌여 발언권을 얻어내라고 하는 기성 정치인이 있었다”며 정치에 갓 진출한 청년들이 언로가 막혀 있는 고통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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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도 ‘청년 정치’ 사각지대

대의민주주의와 정당정치 시스템이 공고히 자리 잡힌 나라에서는 청년들이 지방의회에서 실력을 쌓는다. 한국 정치에서는 이마저도 쉽지 않다. 지방자치가 아직 뿌리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상협 전 새누리당 중앙미래세대위원장(33)은 “지역이 중앙에 종속돼 있다. 지방의원들도 여의도 정치, 국회의원을 쳐다볼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공천권이 지역구 의원에게 달려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14년 제6대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전국 광역시·도, 시·군·구의원 3687명 중 40대 미만은 127명(3.4%)에 불과하다.

2010년부터 정당 활동을 시작한 송바우나 안산시의원(33·더민주) 의원은 “지방의원이 되려 해도, 지역 유지 자녀가 아니면 공천받기 쉽지 않다. 나이 든 지방의원들은 자식들에게 자리를 대물림해주기도 한다”며 “20·30대 지방의원이 일정 비율을 유지하는 건 부모에게서 의원직을 물려받은 자녀들이 있기 때문인데, 이렇게라도 청년 비율이 유지되는 게 역설적이게도 다행”이라고 말했다.

청년 조례 발의를 준비 중인 김은주 부천시의원(30·새누리당)도 “공무원들이 청년 문제를 단순히 일자리 문제로 인식할 정도로 이해도가 낮다. 함께 고민할 수 있는 또래 시의원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당들의 청년 활동 사진이나 4·13 총선 포스터. 위에서부터 새누리당·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녹색당.

정당들의 청년 활동 사진이나 4·13 총선 포스터. 위에서부터 새누리당·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녹색당.

■‘청년 정치’도, ‘청년 정치인’도 없다

청년 정치가 새로운 콘텐츠와 의제, 대안을 내놓는 것이라면 훈련이 필요하다.

박이강 비서관(28)은 우원식 의원실(더민주)에서 2012년부터 일하면서 나이만 어린 ‘청년 정치인’보다 전문성을 갖춘 청년 정치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중앙 정치를 몸소 겪어보니, 젊다는 이유만으로 정치를 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박 비서관은 “정당에서 노동·복지 등 각 분야의 청년 전문가를 육성하려 하지 않는다. 당에서는 각종 행사에 얼굴을 비추며 ‘얼굴마담’을 하는 청년 정치인을 원하는 것 같다”면서 “선거 때만 되면 급하게 외부에서 인재를 영입해온다. 전문성을 갖춘 청년 정치인이 보이지 않는 가장 큰 이유”라고 지적했다.

정당 내 청년위원회·대학생위원회 등 청년기구는 청년 정치인을 육성하지 못한다. 2014년 당시 새정치민주연합(더민주) 전국청년위원장이던 안희철 변호사(32)는 “각 정당 청년위원회 아래의 지역 청년위원회는 청년 정치인 육성이 아닌 줄세우기부터 습득하는 곳이었다”며 “지역 실세 의원에게 잘 보이지 않으면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했다.

돌고 돌아 악순환이다. 정당은 청년을 품지 못한다. 청년당원으로 활동하다 정당에 실망한 청년들은 ‘정치 혐오’를 안고 당을 떠난다.

17일 현재 20대 총선에 등록한 예비후보자 1671명 중 40세 미만은 92명(5.5%)에 불과하다. 92명 중에서 국회에 입성해 청년 정치를 실현할 수 있는 청년 정치인은 몇 명이 나올 수 있을까.

김주온 녹색당 비례대표 의원 후보(25)는 “4년 뒤 21대 총선에서는 100명의 청년을 국회로 들여보내자고 주장하고 싶다”면서 “다양한 청년들이 국회에 들어가 활동을 펼친다면 그들을 ‘청년 정치인’이 아니라 ‘정치인’으로 보는 시선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정은 정의당 국회의원 후보(30·광주광산을)도 김주온 후보와 비슷한 주장을 했다. 문 후보는 “당을 불문하고 300명 청년 후보를 내는 수준이 아니면, 청년들이 정치에서 소외된 지금의 상황을 결코 벗어날 수 없다”며 “4년 뒤 21대 총선까지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청년 후보 300명을 내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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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진·이혜리·이효상 기자 one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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