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서서 일하기? 이렇게 하면 ‘말짱 도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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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재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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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한 자세에선 좋은 글이 안 나와”

헤밍웨이는 소설을 서서 쓴 작가로 유명합니다. 누군가 그에게 왜 글을 서서 쓰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고 하죠. "편한 자세에선 좋은 글이 안나와..." 그래서 버지니아 울프나 찰스 디킨스 등도 줄곧 서서 글을 썼나 봅니다.



서서 일하기를 기업 차원에서 도입하기 시작한 곳은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IT 기업들입니다.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주커버그도 자주 서서 일한다고 얘기한 바 있죠. 이들이 서서 일하기 시작한 것은 업무 능률보다는 건강상의 문제가 더 컸습니다. 워낙 오랜 시간 컴퓨터에 매달려 앉아있다 보니 직원들이 자주 병치레를 하더라는 것이죠. 서서 일하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얘기는 아마 실리콘밸리에서부터 시작이 된 것 같습니다.

■ 서서 일하기 확산…높낮이 조절 책상 매출 ‘껑충’

우리 주위에도 서서 일하는 분들, 정말 많아졌습니다. 처음 용기 있는 한두 명이 서서 일하더니, 곧 두 명이 네 명으로, 네 명이 여덟 명으로 빠르게 늘기 시작하더군요.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는 책상은 가격이 만만치 않은데도 최근 두 달 사이 매출이 4배 이상 늘었다고 합니다.



행정자치부와 미래부의 스마트 오피스는 직원의 절반 이상이 서서 일하고, 회의도 서서 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 등 국내 IT 기업들 직원 상당수도 서서 일하고요, 모 국내 전자업체 같은 경우는 아예 서서 일하는 책상 밑에 트레드밀(러닝머신) 같은 기구를 연결해 운동하면서 일을 하는 직원도 있었습니다.

외국은 우리보다 서서 일하기 문화가 훨씬 빨리 확산됐는데요. 서서 공부하는 게 아이들 비만은 물론, 집중력 향상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며 의자를 전부 없앤 초등학교도 미국에 등장했을 정도입니다.

■ 서 있기만 해도 1년에 3.6kg을 뺀다?

"서 있는 게 얼마나 도움이 된다고 유난을 떠냐"는 시선도 분명 있지만 서서 일하는 분들은 분명 운동이 된다고 말합니다.

정형외과 의사들은 서서 일하면 교감신경이 활발해지면서 집중력이 높아지고, 허리와 혈액순환에 도움이 된다고 말합니다. 2012년 국제 당뇨병 학술지는 앉아있는 시간이 긴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당뇨병 위험은 112%, 심혈관 질환은 147%나 높더라는 연구 결과를 싣기도 했고요. 영국 체스터대 연구팀은 하루 3시간 서서 일하는 것만으로 하루 144kcal, 1년이면 3.6kg을 감량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지난해엔 시사 주간지 타임이 "앉아 있기가 흡연보다 나쁘다"는 기사도 실었습니다.

이쯤 되면 서서 일하기는 따로 시간을 내기 어려운 사무실 직장인들에게 거의 '구원'과도 같은 운동 방법이 될 것 같군요.

■ 서서 일했는데 오히려 역효과…왜?

그런데 최근 영국 러프버러 대학이 한 가지 재미있는 실험을 했습니다. 서서 일하는 사무직 노동자 40명에게 활동 시간과 운동량을 측정할 수 있는 장치를 붙여 24시간 추적 관찰한 것이죠. 여기서 주목할 것은 24시간이라는 측정 시간입니다. 그동안 대부분의 연구가 서서 일하는 업무 시간을 대상으로 삼았다면, 이번 연구는 업무 시간 외에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쉬고, 잠들고 다시 다음날 일어나 출근할 때까지를 모두 측정한 것이죠.



연구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40명의 활동 시간과 운동량을 석 달 정도 관찰해 평균 내봤더니, 활동 시간은 겨우 6% 느는 데 그치고, 운동량은 오히려 2% 줄어들었습니다. 이상하죠, 왜 서서 일했는데 운동량은 오히려 줄어드는 역효과가 난 것일까요?

■ 건강식품 챙겨 먹다 삼시세끼에 소홀한 격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습니다. 일종의 보상심리 때문인 것이죠. 연구에 참여한 사람들은 서서 일한 날엔 집에 돌아가 평소보다 더 자주, 오래 눕거나 앉아 있었습니다. "운동은 충분히 됐을 테니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일까요. 그래서 업무시간인 8시간을 기준으로 보면 활동 시간도, 운동량도 분명 많아지지만, 하루 전체인 24시간을 기준으로 보면 운동량이 오히려 줄어드는 것입니다.

옥선명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이 연구 결과를 두고 "건강 보조 식품은 잘 챙겨 먹는 사람들이 의외로 삼시세끼를 소홀히 해 건강을 해치는 경우와 같다"고 말합니다.

■ 서서 일하기 vs 앉아서 일하기

확실히 서 있으면 앉아 있는 것보다 30% 가까이 칼로리 소모가 많다고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서 있든 앉아있든 한가지 자세로 오래 있으면 칼로리 소모는 최소화된다는 것이죠. 멜빈 힐스던 영국 엑세터대 연구팀이 지난 16년 동안 5천 명의 생활 습관을 연구한 결과 "에너지 소비가 적은 어떤 자세라도 오래 유지하는 것은 모두 건강에 해롭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서서 일하든 앉아서 일하든 한 가지 자세를 오래 유지하는 것은 결국 건강에 좋지 않다는 얘기인 거죠.

■ 움직임의 일상화가 ‘답’

며칠 전 국제부 야간 근무를 서다 해외 특파원으로 나가 계신 선배 기자와 통화를 하게 됐습니다. 얼마 전부터 책상을 구입해 서서 일하기를 몸소 실천하고 있었는데, 관련 뉴스를 보고 그만해야 하나 고민이 되더라는 거죠. 삼시세끼 잘 챙겨 먹으라고 조언했더니 그동안 먹던 건강보조식품을 그럼 이제 그만 먹어야 하나 고민하는 것과 같은 경우입니다.



오늘부터라도 퇴근할 때 대중교통 이용하기, 버스나 지하철에서 서서 가기, 집에서 서성거리며 TV 보기 등, 움직임 자체를 일상화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모처럼 높낮이 조절되는 책상을 구입해 서서 일하기에 도전했다면, 평소에도 자주 움직이려는 노력을 함께 해야 제대로 된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서서 일하는 분들 모두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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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리포트] ‘서서 일하기’ 열풍…운동 효과 내려면? (2015.12.25.)


위재천기자 (we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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