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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 히스토리아] 생강이 인삼보다 귀한 이유

  • 입력 : 2015.01.19 09:10:10
옛날 임금은 특별한 날, 공을 세운 백성과 신하들에게 특이하게 생강을 하사했다. 조선시대 역대 임금의 치적을 모은 ‘국조보감’에는 인종이 12대 왕으로 즉위하면서 조정 신하들에게 생강을 선물했다는 기록이 나와 있다.

고려 때는 전몰장병 가족에게 위문품으로 생강을 지급했다. 서기 1018년인 현종 9년, 북방 거란족과의 싸움에서 수많은 장졸들이 전사했다. ‘고려사’에는 이때 부모들에게 차와 생강, 베를 계급에 따라 차등 지급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당시 생강을 받은 백성과 신하는 바다와 같은 은혜에 감격해 마지않았다.

도대체 왜 특별한 날, 생강을 하사했던 것일까?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옛날에는 생강이 인삼보다 귀했다. 그러니 최고로 귀한 물건으로 전사자 가족을 위로한 것이고 즉위 기념 선물로 내렸던 것이다. 생강이 얼마나 귀했는지 조선시대 기록 곳곳에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조선 말기인 고종 때 청나라에서 사신이 왔다. 궁궐에서 손님을 맞아 다과상을 차렸다. ‘승정원일기’에는 이런 경우 임금에게는 연한 생강차를, 사신에게는 인삼차를 내놓는 것이 예전부터 내려오는 관례라고 적혀 있다.

조선 후기 ‘영조실록’에도 생강차와 인삼차의 관계가 보인다. 영조가 원로대신인 홍봉한과 이야기를 나눌 때 당직 승지가 관례에 따라 임금에게는 생강차, 정승에게는 인삼차를 준비하겠다고 하니 영조가 말리며 홍봉한이 마실 차 역시 생강차로 인삼차를 대신하라고 분부한다. 홍봉한은 영의정을 지냈던 데다 사도세자의 장인, 정조의 외할아버지니 영조에게는 사돈이 된다. 임금과 신하 사이를 떠나 사돈을 최대한 예우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는 이렇게 임금이 마시는 차와 신하가 마시는 차의 등급을 달리했던 모양이다. 왕이 마시는 차가 생강차였으니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과는 달리 생강이 인삼보다 품격이 더 높았음을 알 수 있다.

생강을 귀하게 여겼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생강의 대부분은 주로 전주 지방에서 재배해 공급했다. 농민들이 생강을 재배하면 전주 상인이 생강을 등짐에 메고 지금의 평안북도 의주까지 가져다 팔았는데 이익이 열 곱절에 이른다고 했으니 생강 가격이 만만치 않았나 보다. 고려 말 조선 초 생강은 아예 나라에서 특별하게 관리하는 품목이었다. 금, 은, 동, 소금, 종이와 함께 생강 역시 강소(薑所)라는 특별 창고를 두고 관리했을 정도다.

임금이 특별한 날, 생강을 하사한 또 다른 이유는 귀한 것에 더해 의미까지 부여했기 때문이다.

‘논어’에는 공자가 식사 때마다 생강 먹기를 그치지 않았다고 했는데 주자(朱子)가 주석을 덧붙였다. 생강은 하늘과 통하며 더럽고 나쁜 것을 제거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공자에 더해 주자까지 이렇게 해석했으니 유교를 받들던 조선의 군주와 양반들은 생강을 고귀함과 청렴의 상징으로 삼았다. 때문에 인종이 즉위하면서 생강을 선물로 나눠주며 공자를 인용해 당부했다.

“생강 먹는 것을 그치지 않는 것은 하늘과 통하기 위함이요, 더럽고 악한 것을 제거하고자 함이니 공자를 사모해 작은 음식도 모범으로 삼고자 생강을 하사하니 서로 전해 그 뜻을 새기라.”

새해도 벌써 꽤 지났다. 작심삼일이라고 했으니 연초의 굳은 결심이 흔들리기 시작할 시기다. 이럴 때 커피 대신 생강차 한 잔을 마시며 초심을 바로잡아 보는 것도 좋겠다. 마침 교수들이 추천하는 올해의 사자성어도 근본을 바로 하고 근원을 맑게 한다는 정본청원(正本淸源)이라니, 역시 생강차가 어울린다 싶다.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 일러스트 : 정윤정]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791호(2015.01.14~01.2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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