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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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알고도 판매… 바이오산업 신뢰 흔든 ‘제2 황우석 사태’

국내 첫 유전자치료제 고의 조작 확인 / 코오롱, 그동안 “몰랐다” 발뺌 불구 / 2년전 해당 사실 인지하고도 은폐 / 신약개발 20년 공든탑 한순간 물거품 / 식약처도 부실 검증 책임 불가피
'인보사' 허가취소…코오롱 '빨간불' (서울=연합뉴스) 임헌정 기자 =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8일 의약품 성분이 뒤바뀐 코오롱생명과학의 골관절염 유전자치료제 '인보사케이주'(인보사)의 품목허가를 취소했다. 사진은 이날 서울 강서구 마곡동로 코오롱생명과학 본사. 2019.5.28 kane@yna.co.kr/2019-05-28 13:03:13/ <저작권자 ⓒ 1980-2019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2017년 인보사케이주(인보사)는 유전자치료 시장의 본격 개막을 알리며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코오롱생명과학(코오롱)은 1998년 처음 인보사를 개발하기로 한 뒤 약 20년 동안 1100억원을 쏟아부었다. 정부도 연구개발자금으로 400억원을 지원했다. 그러나 2017년 11월 공식 시판된 지 1년6개월 만에 허가가 취소되면서 여기에 들어간 시간과 돈, 노력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8일 발표한 대로라면 인보사의 처음과 끝은 사실상 허위였던 셈이다.

◆신장세포를 연골세포로 허위서류 작성

코오롱은 식약처에 신약허가서를 제출하면서 인보사 2액이 연골세포라고 밝혔다. 그러다 지난 3월 미국에서 임상 중인 제품에 대한 유전학적 계통검사(STR)를 실시해 보니 신장세포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국내 사용 세포에 대한 STR 검사에서도 인보사 2액이 신장세포로 확인됐다.

제출 서류와 달라진 이유를 조사한 식약처는 애초부터 신장세포였던 것으로 결론내렸다. 최초 세포, 제조용 세포 모두 STR 결과 신장세포였으나 코오롱은 연골세포로 서류를 작성해 제출한 것이다.

2액이 연골세포임을 증명하는 자료도 허위였다. 2액이 1액과 같은 연골세포임을 증명하려면 1액과 2액의 단백질 발현 양상을 비교·분석해야 하는데, 코오롱은 1액과 2액의 혼합액과 2액을 비교했다. 당연히 1액과 2액의 발현 양상이 같다는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

코오롱은 연골세포의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2액 세포에 삽입한 TGF-β1 유전자 개수와 위치가 변동된 사실을 알고도 이를 숨기고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

 

지난 2월까지 연골세포라고 알고 있었다는 코오롱의 해명도 거짓이었다. 코오롱의 미국 자회사인 코오롱티슈진은 2017년 3월 미국 임상용 제품의 위탁생산 과정에서 2액이 신장세포임을 알게 됐다. 코오롱티슈진은 2017년 7월13일 코오롱에 이 같은 검사결과를 이메일로 알렸다. 이는 인보사 품목허가(2017년 7월12일) 하루 뒤다.

강석연 식품의약품안전처 바이오생약국장이 28일 오전 충북 청주 식약처에서 코오롱생명과학의 골관절염 유전자 치료제 '인보사케이주'의 품목허가를 취소한다고 밝히고 있다.

강석연 식약처 바이오생약국장은 “이메일을 받은 것으로 보아 코오롱은 이미 2년 전에 해당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판단된다”며 “허가 하루 뒤에 알았더라도 도의적으로 밝히는 게 상식적인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바이오업계 신뢰 훼손… 부실 검증 책임도

이번 인보사 사태로 국내 바이오의약품 산업의 신뢰는 크게 흔들리게 됐다. 코오롱은 그동안 “몰랐다”는 입장을 고수했지만 신장세포를 연골세포로 고의로 속여 허가를 받은 정황이 드러났다.

시민단체들은 고의적인 데이터 조작이라는 점이 같다며 인보사 사태를 ‘제2의 황우석 사태’로 심각하게 보고 있다.

정부가 바이오헬스 산업을 ‘제2의 반도체’ 산업으로 키우기 위해 연구·개발(R&D) 지원 확대와 규제 완화를 추진하고 있는데, 인보사 사태로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평가다.

 

감독당국인 식약처도 이번 사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식약처는 국내에서 허가된 신약의 성분이 다르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해외에서 들통나면서 뒤통수를 맞았다. 부실검증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뒤늦게 조사를 시작했고 결국 허가 취소라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졌다.

엄태섭(왼쪽 세번째) 법무법인 오킴스 소속 변호사를 비롯한 피해 환자들이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코오롱 인보사 피해환자 손해배상 청소 소장을 제출하기 위해 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는 “코오롱이 대국민 사기를 벌였다면 식약처가 검증해야 하는데, 이러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 국장은 “전 세계 의약품 허가관리시스템이 대부분 서류 검토에 의존하고 있다”면서도 “개발단계에 대한 검증이라든지 검토가 조금 미비했던 점은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내부 직원 징계나 책임 범위 등은) 자체 점검을 하겠지만 현재 검찰수사가 진행되는 만큼 추이를 보고 결정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진경 기자 l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