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사우디 强대强 충돌…중동 종파갈등 폭발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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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6.01.03. 오후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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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숙인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가 병신년 새해 벽두부터 정면 충돌하고 있다. 싸움은 사우디가 지난 2일(현지시간) 이란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시아파 지도자인 셰이크 님르 바크르 알님르를 전격 처형하면서 시작됐다. 알님르는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에서 소수인 시아파를 이끌며 반정부 시위를 벌이다 체포돼 2014년 10월 사형 선고를 받았다. 이란 등 시아파 국가들은 지난해 알님르가 사형 선고를 받은 뒤 사우디 정부에 사형 집행 중지를 강하게 요구해왔다. 하지만 사우디는 사형을 밀어붙였고 이란은 물론 이라크 레바논 바레인 등 중동 시아파들은 격분했다. 곧바로 시아파 본산인 이란 시위대들이 테헤란 사우디 대사관을 공격하고 불을 질렀다. 분노한 시위대는 이란 제2 도시 마슈하드에 있는 사우디 총영사관에 난입해 사우디 국기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사우디 는 신의 복수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경파인 혁명수비대는 "가까운 미래에 사우디 왕족에 가혹한 복수가 가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사우디는 물러서지 않고 있다. 오히려 "알님르가 외부세력과 결탁해 정부를 전복하려 했다"고 되받았다.

사우디의 시아파 지도자 처형 집행은 중동 패권을 놓고 사사건건 대립해 온 이란과의 관계를 되돌릴 수 없는 상황으로 악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부터 양국은 끊임없이 대립했다. 지난해 2월 이란의 군사적 지원을 받은 시아파 후티 반군이 기존 수니파 예멘 정권을 몰아냈다. 그러자 사우디는 곧바로 예멘 반군을 겨냥한 대대적인 공습을 진행하는 한편 지상군 파병을 강행해 현재 예멘에서 이란과 사우디 대리전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시리아 내전 해결 해법도 사우디와 이란 대립으로 꼬였다. 이란은 정권을 잡고 있는 시아파 알아사드 정권을 지원하고 있는 반면 사우디는 시리아 국민 다수가 시아파인 점을 들어 알아사드 정권 퇴진에 앞장서고 있다. 이란 등 시아파 국가들의 격한 반발을 예상했음에도 사우디가 알님르 처형을 강행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와 관련해 먼저 사우디 알사우드 왕가가 최근 유가 급락, 예멘 내전 장기화 등으로 지역 내 리더십 약화에 직면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사우디는 유가 급락으로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커지자 무세금 정책을 포기하는 등 심각한 경제 위기에 직면한 상태다. 게다가 시아파 반군이 일으킨 예멘 내전을 해결하기 위해 중동 연합군을 주도적으로 구성했지만 내전은 장기화하고 있다. 또 이란이 미국과 핵협상을 타결하는 등 서방과 화해 무드에 들어가며 국제무대에 전면 복귀하자 큰 위기감을 느꼈다.

서정민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이란의 국제사회 복귀는 중동 역학 구도를 크게 바꿀 수 있는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사우디로서는 이 같은 흐름을 그대로 두다가는 역내 주도권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생각을 했고, 강한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는 진단이다.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가 계속 세를 얻고 있는 것도 사우디의 이번 행보에 영향을 줬다는 진단이다. 보수적 수니파 사상인 와하비즘을 근간으로 하는 사우디로선 수니파 IS가 계속 팽창해 수니파 주도권을 빼앗아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컸다는 분석이다. 중동 지역 맹주 자리를 놓고 시아파 이란과 수니파 종주국 사우디 간 종파 분쟁과 패권 다툼이 심화되면 그렇지 않아도 IS 때문에 불안한 중동 지역 정세가 더욱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국제사회에서 염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존 커비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알님르 처형으로 종파 갈등이 더 심화될 수 있음을 염려한다"며 "사우디는 긴장 완화를 위해 모든 공동체 지도자들과 협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문수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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