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보(報)의 뜻은 ‘갚다’, ‘돌려주다’이다. 은혜 갚는 것이 보은(報恩)이고, 원수 갚는 것이 보복(報復)이며, 받은 것만큼 돌려주는 것이 보답(報答)이다. 공공(公共)으로부터 입수한 소식을 공공에게 돌려주는 것이 보도(報道)이고, 지시받은 대로 관찰하거나 처리한 뒤 그 과정과 결과를 알리는 것이 보고(報告)다. 보고해야 할 영역과 대상이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다는 점에서 보고는 신고(申告)와 다르다. 신고는 아무 경찰서나 소방서에 해도 되지만, 보고는 반드시 자기 상급자에게 해야 한다. 신고는 미덕이지만 보고는 의무다. 신고자는 현장에서 이탈해도 무방하지만 보고자는 반드시 후속 지시를 기다려야 한다. 보고자는 지휘자의 이목(耳目)이자 수족(手足)이기 때문이다.
![[시대의 창]보고 의무와 지휘 책임](https://img.khan.co.kr/news/2016/04/28/l_2016042901003941700309891.jpg)
보고·지휘 체계는 국가 관료제뿐 아니라 기업, 사회단체 등 모든 집단의 핵심 운영 체계다. 아무리 구성원 사이의 평등을 지향하는 집단이라도, 보고와 지휘 관계라는 실무적 위계마저 부정할 수는 없다. 보고-지휘 관계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결코 회피할 수 없는 관계이며, 권력과 함께 출현했기에 인간의 고유한 습성처럼 된 관계이다. 군대, 관공서, 기업 등 모든 조직이 신참에게 혹독할 정도로 거듭해서 가르치는 것도 ‘철저·신속한 보고’다. 신참들은 아무리 작은 문제에 관한 것이라도 허위보고나 늑장보고가 조직 전체를 존망의 위기로 몰아갈 수 있다고 배운다. 전시(戰時) 등 특별한 경우에는, 늑장보고가 즉결처형의 사유가 되기까지 한다. 대신 그들은 보고 외의 다른 책임으로부터는 면제된다. 신참과 말단들의 첫 번째 좌우명이 ‘보고만 잘하면 조직 생활에 아무런 문제 없다’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관계와 체계가 있기에, 최고 권력자와 최고 경영자는 사무실에 앉아서도 천하를 살필 수 있다. 권력이란 보고받고 지시하는 권리에 다름 아니다. 최고 권력의 소재지는 보고가 최종적으로 들어가는 곳이자 지시가 최초로 나오는 곳이다. 보고받은 사실들을 종합·분석해 적절한 대응방안을 마련하고 그를 집행하도록 지시하는 것은 지휘자의 온전한 권한이자 책임이다. 사회생활의 현대화란 보고와 지휘 체계의 세분화, 정교화 과정이기도 하다. 보고-지휘 관계에서 보자면, 세상에는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 지휘만 하고 보고는 하지 않는 사람, 보고만 하고 지휘는 못하는 사람, 한편으로는 보고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지휘하는 사람. 각 부류가 책임져야 할 몫도 각각의 지위에 따라 결정된다.
며칠 전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세월호가 침몰해 가는 긴박한 순간에 청와대 관계자와 현장 구조 담당자가 통화한 내용을 들으면서, 분노와 황당함을 동시에 느꼈다. 청와대 관계자는 VIP에게 보고하기 위한 동영상과 사진을 집요하게 요구했고, ‘가장 중요한 게 구조인원 파악’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담당자는 구조를 뒷전으로 제쳐 둔 채 윗선의 요구대로 보고 내용을 정리하기에만 바빴다. 보고에 상응하는 지휘는 없었다. 정상적인 보고-지휘 관계에서라면, “승객들은 어떤 상태인가?” “승객 구조를 위해 가장 시급한 게 무엇인가?” 같은 질문을 해야 마땅했다. 해상 구조를 지휘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면, “선실에 있는 승객들을 전원 갑판으로 나오도록 해라” 정도는 지시해야 옳았다. 하지만 그 ‘관계자’는 VIP에게 보고할 내용을 확보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다. 담당자도 “구조에 도움이 되지 않는 전화는 삼가 달라”고 항변하지 않았다. ‘관계자’와 그 윗선의 보고-지휘 체계에도 문제가 있었던 게 분명하다. 그 체계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VIP가 침몰 후 7시간 만에 나타나 “아이들이 다 구명조끼를 입었다는데 그렇게 발견하기 힘듭니까?”라고 물었을 리 없다. 더욱더 황당한 것은 보고받은 사람은 아무 문책도 받지 않았고 ‘위에서 시킨 대로’ 보고 의무를 충실히 이행한 사람만 처벌받았다는 사실이다.
세월호 참사를 방조한 건, 보고 의무만 강조되고 지휘 책임은 면제되는 일방적인 관계였다. 참사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는, 이런 관계가 우리 사회 곳곳에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아랫사람들에게는 ‘보고 의무 철저’를 암송하게 하면서, 막상 지휘 책임은 지지 않는 ‘상사’들은 곳곳에 널렸다. 권위주의의 핵심에는 조직을 인간의 신체에 비유하면서도 문제가 생기면 수족에게 책임을 몽땅 떠넘기는 태도가 자리 잡고 있다. 두뇌의 작용 없이 수족이 단독으로 짓는 죄가 세상에 어디 있는가? 보고-지휘 관계는 해체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하지만 보고 의무와 지휘 책임은 상응해야 한다. 그게 민주주의다. 세월호 참사의 교훈 중 하나는, 권위주의는 생명조차 가볍게 여긴다는 점이다. 민주주의가 퇴보하는 만큼, 국민 생명의 가치도 떨어진다. 민주주의가 생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