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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어처구니없는 황교안 대표의 단식투쟁

2019.11.20 20:35 입력 2019.11.20 21:11 수정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20일 “죽기를 각오하겠다”며 난데없이 단식투쟁을 선언했다. 당초 청와대 앞 광장에 텐트를 치고 농성을 이어갈 계획이었으나 경호상 문제로 제지당하자 이날 저녁 단식농성 장소를 국회 본청 앞으로 변경했다. 황 대표는 청와대 앞에서 발표한 ‘대국민 호소문’을 통해 “더 이상 무너지는 대한민국의 안보, 민생, 자유민주주의를 두고 볼 수 없다”며 “절체절명의 국가위기를 막기 위해 무기한 단식투쟁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황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 철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 포기,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철회 등 세 가지를 요구했다. 이들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무기한 단식을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뻔히 수용 불가한 요구를 내걸고 ‘단식’이란 극한 수단을 동원했다. 안이한 시국인식과 남루한 정치력의 바닥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절박한 문제의식이 있다면 제도정치 속에서 협상력과 투쟁전략을 발휘해 이를 반영하고 관철시켜나가는 게 책임있는 제1야당 대표의 자세다.

황 대표는 지난 9월 ‘조국 법무부 장관 파면’을 촉구하며 삭발투쟁을 벌인 바 있다. 갈등 현안이 발생하면 정치를 통해 조정하거나 해결하기는커녕, 삭발에 이어 단식까지 매번 떼쓰듯 고루한 극단 방식에 매달리니 “황교안스럽다”는 비아냥을 듣는 것이다. 야당의 가장 강력한 ‘투쟁’ 장소는 국회다. 황 대표 주장대로 안보와 민생의 위기라면 국회에서 싸울 것은 싸우고 협력할 것은 협력하면서 대안을 제시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특히나 여야 3당 원내대표가 ‘방위비’ 초당 외교를 위해 방미길에 오른 날, 국회를 팽개치고 단식농성에 돌입한 것은 어깃장으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절체절명의 국가위기를 막기 위해서”라는 그의 단식투쟁 명분을 무색하게 한다.

‘조국사태’ 후 연이은 헛발질로 지지율이 급락한 가운데 김세연 의원의 불출마 선언을 계기로 ‘쇄신’ 요구가 치솟고, 보수통합과 인재영입도 수렁에 빠지면서 황 대표는 리더십 위기에 직면한 상태다. 뜬금없는 영수회담 제안에 이어 단식농성을 들고나온 것은 아마도 당내 위기를 외부 극약처방을 통해 돌파하려는 술책일 터이다. 대통령·정부와 각을 세움으로써 쇄신 등 당면 현안을 회피하고 ‘지도부 용퇴론’을 우회하려는 것이다. 다분히 정치공학적 발상에서 나온 단식투쟁은 결코 여론의 공감을 받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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