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독재자와 새마을운동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요웨리 무세베니 우간다 대통령은 1986년 쿠데타로 집권해 32년째 대통령을 하고 있다. 철권통치자인 그를 국제사회에서 좋게 볼 리 없다. 지난 12일 5선 취임식에서는 그의 국제형사재판소(ICC) 비난 발언에 항의해 미국과 유럽 특사들이 중도 퇴장하기도 했다. 이달 말 아프리카 3개국 순방에 나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바로 이 무세베니와 정상회담을 할 예정이다. 그가 국제사회가 기피하는 독재자를 굳이 만나려는 속내는 ‘새마을운동’을 가장 성공적으로 해외에 전파한 대표적 사례로 꼽는 나라가 우간다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자신이 한국형 개발원조(ODA) 모델로 적극 키우고 있는 새마을운동의 우수성을 홍보하고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 업적을 부각시키려 한다.

박 대통령은 새마을운동이라는 단어만 들어가면 예산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지난해 9월 유엔개발정상회의에서는 새마을운동을 빈곤퇴치와 세계발전 패러다임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새마을운동은 농촌운동이기에 앞서 유신독재를 유지하기 위한 농촌 장악 수단이었다. 관(官) 주도의 강압적 국민동원형 의식개조 운동이자 전시행정의 표본으로 꼽힌다. 강력한 충격으로 단기간에 농촌을 변화시켰지만 지속가능하지 않은 정책이었다. 1970년대 급격한 이농(離農)·농촌 황폐화 현상이 이를 단적으로 입증한다. 살벌한 시절임에도 ‘함평 고구마 사건’과 같은 농민저항운동이 일어난 것만 봐도 새마을운동이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우간다에서 통일벼가 아닌 일반미를 심었다고 면사무소 직원이 장화발로 논바닥을 뭉개거나, 갈퀴로 초가지붕을 강제로 뜯어내고 슬레이트를 얹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지금 빈곤국 새마을사업은 현대화된 농촌사업이다. 다만 그 이름을 새마을이라고 붙였을 뿐이다. 모든 ODA 사업에 ‘새마을’ 딱지를 붙여 새마을운동의 부정적 이미지를 지우고 ‘박정희 브랜드’의 성공적인 농촌개발운동으로 포장한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같은 맥락의 ‘박정희 우상화’ 작업이다.

박 대통령의 아프리카 순방으로 새마을운동이 다시 화제가 되는 것은 나쁘지 않다. 역사바로잡기 차원에서 새마을운동에 대한 재평가의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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