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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변화, 그리고 쓸쓸함에 대하여

입력
2016.03.24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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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제조한 ‘의자와 슬픔’, ‘가위, 바이올린, 자상함, 트랜지스터, 댐, 농담, 찻잔’ 등등의 물목으로 꽤나 풍요로운 ‘여기 지구’, 그러나 주로는 ‘전쟁, 전쟁, 전쟁’이고 잠시의 휴지기에 얼마 안 되는 ‘선함’을 동원해 집을 짓고 살아가는 지구의 슬픈 시간을 아이러니한 어조로 개관한 뒤,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는 조금은 단호하게 말한다. “여기 지구에서는 그 무엇도 작은 흔들림조차 허용되지 않아.”(시집 ‘충분하다’, 문학과지성사, 최성은 옮김) 1923년에 태어나 한 세기 가까이 이 행성에서 보내다 2012년 세상을 뜬 시인은 생전의 마지막 시집 ‘여기’(2009)의 표제작에서 그렇게 쓴다. ‘다른 곳’은 결국 없었던 셈인가.

시인은 지금 자신의 서재에서 시를 쓰고 있는 모양이다. “가까이 와서 이것 좀 보라고./탁자는 본래 있던 그 자리에 정확히 서 있어./책상 위에는 본래 있던 그대로 종이가 놓여 있고,/반쯤 열린 창으로 한 줌의 공기가 스며들어오지,/벽에 무시무시한 틈바구니 따위는 없어,/혹시 널 어디론가 날려버릴지도 모를 틈바구니 따위는 말이야.” 시의 마지막이다. 컴퓨터는 쓰지 않았던 것일까. 시집에는 아주 작은 글씨로 쓴 원고가 실려 있다. 생각해보면 시인이 보낸 한 세기 동안 지구는 얼마나 많이 흔들렸나. 말 그대로 전쟁, 전쟁의 연속이었다. 시인의 조국 폴란드는 아우슈비츠의 땅이었고, 또 한동안은 구소련의 위성국가여야 했다. 자유노조의 민주화 운동과 소비에트 블록의 해체까지 다시 한번 격동의 역사가 흘렀다. 노년의 시간이었을 테지만, 전자정보혁명이 열어놓은 새로운 세상도 지켜보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시인이 “벽에 무시무시한 틈바구니 따위는 없어” 하고 말할 때, 적어도 이 시의 진실과 기운 안에서라면 나는 충분히 설득되고 있었던 것 같다.

쉼보르스카의 시를 변화에 대한 환멸이나 거절로 읽는 것은 서툰 독법일 테다. 변화는 불가피하다. 시인의 말대로 “여기서 지속적인 건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여기’ 아닌 ‘다른 곳’을 향한 인간 열망의 기차가 멈춘 적도 없는 것 같다. 다만 시인이 그 열망을 모르지 않은 채로 “여기 지구에서는 그 무엇도 작은 흔들림조차 허용되지 않아”라고 말할 때, 우리는 그 변화라는 것에 대해 겸허해질 수 있는 시간을 얻는다. 변화라는 말은 우리 시대의 지상 명령이 되어 있다. 변화에 대한 홀림과 강박은 거의 우리의 존재 양식이 된 느낌이다. 시인은 말해준다. “여기서 무지(無知)는 과로로 뻗어버렸어,/끊임없이 뭔가를 계산하고, 비교하고, 측정하면서/결론과 근본적 원리를 추출해내느라.” 세상은 ‘휴지기’를 잊어버린 듯하다.

집에는 오래된 바둑판이 있었다. 선친이 동네 목수에게 부탁해서 짠 것으로, 다리까지 갖춘 제대로 된 바둑판이었다. 그 바둑판으로 선친에게 바둑을 배웠다. 바둑판 위에서 숙제도 하고 밥도 먹었다. 선친이 세상을 뜨고 서울로 집을 옮겨야 했을 때도 바둑판을 들고 왔다. 어머니는 조선간장을 챙겨 오셨던가. 그 바둑판으로 아이에게 바둑을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겠다. 그러지는 못했고, 그 후 여러 차례 이사 와중에 버렸던 것 같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을 보면서 그 바둑판 생각이 났다. 중학교 때였나, 존경하는 인물을 적는 난에 김인 국수의 이름을 쓰기도 했다. 컴퓨터가 전문 기사를 이긴다는 것은 나의 머릿속에는 없는 그림이었다. 미지의 영역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바둑을 계산 이상의 인간 표현으로 만든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결과는 우리가 본 대로다. 이런 것도 결국은 감당해야 할 변화일 테다. 그러나 뭔가 허전하고 쓸쓸한 것은 또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탁자와 종이가 본래 있던 그대로 거기 놓여 있다는 사실은 시인에게 은밀한 기쁨이자 위안일 수도 있었겠다. 갈라지고 희미해져 가던 그 바둑판이 그립다.

정홍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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