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보수야당의 참패,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

6·13 지방선거에서 예상대로 여당이 압승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전국 17개 광역단체장 중 대구·경북·제주를 제외한 14곳을 석권했다. 국회의원 재·보선 12곳 중에서도 민주당은 후보를 낸 11곳 모두 당선됐다. 보수야당의 궤멸적 참패다. 역대 선거에서 보수정당이 이렇게까지 패한 것은 처음이다. 시민들은 야당을 철저히 심판했다. 야당에 대한 민심 이반의 원인은 여러 가지다. 우선 여당과 치열한 정책 경쟁을 벌이는 수권정당의 모습을 보여주기는커녕 사사건건 정부·여당의 발목을 잡으며 ‘반대를 위한 반대’로 일관한 데 대한 반발이 컸다. 한국당은 급기야 역사적인 한반도 데탕트 흐름조차 정쟁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며 냉전보수의 몽니를 부렸다. 홍준표 대표는 연이은 막말로 보수의 품격을 떨어뜨렸고, 대안 없는 비판으로 시민을 짜증나게 했다. 무엇보다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무참한 패배를 맛보고도 구태의연한 수구정당 행태에서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했던 게 많은 시민의 등을 돌리게 했다. 한술 더 떠 시·도지사 후보마저 흘러간 ‘올드보이’를 줄줄이 기용했으니 유권자의 감동이 있을 리 없다. 이번 선거는 문재인 정부의 지난 1년 국정성과를 평가받는 첫 심판대라 할 수 있었지만 시민들은 되레 야당에 회초리를 들었다.

이제 보수야당은 당의 존폐까지 걱정해야 할 정도로 총체적 위기에 처했다. 홍 대표는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고 했는데 당연한 얘기다. 관심은 향후 보수야당의 재편이다. 지금 한국당 지지율은 11%, 바른미래당은 5% 안팎 정도다. 두 정당의 지지율을 다 합쳐도 민주당 53%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선거 결과 한국당은 ‘TK(대구·경북) 자민련’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민주주의는 보수와 진보, 국정은 여당과 야당의 두 축이 균형을 잡아야 제대로 굴러갈 수 있다. 지금은 그 한 축의 작동이 멈춘 상태나 마찬가지다. 보수진영은 통렬한 반성으로 재기의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종북 이데올로기로 시민을 편가르기했던 극단적인 정치로는 미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새로운 보수의 구심점이 되겠다는 바른미래당도 울림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바른미래당은 광역단체장과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전패했다. 특히 서울시장 선거에서 안철수 후보는 한국당 김문수 후보에게조차 밀려 3위에 그쳤다. 대통령과 각을 세워 보수 표심을 끌어모으겠다는 손쉬운 정치로는 새로운 보수를 갈망하는 시민에게 다가갈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했을 것이다. 민주당은 선거 승리에 도취해선 곤란하다. 민심은 냉정하다. ‘불패 신화’로 오만해진 집권세력의 독선에 시민들이 등을 돌린 사례는 허다하다. 정부·여당은 총선·대선·지방선거 3연속 승리라는 타이틀은 내려놓고 국정에 전념해 경제와 개혁, 협치에 성과물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지역주의의 단단한 벽에 의미 있는 균열을 냈다. 민주당 불모지인 부산·울산·경남에서 처음으로 단체장을 배출한 것은 수십년간 지속된 일당의 지역주의 패권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평가할 만하다. 전체 투표율이 60.2%로 23년 만에 마의 60% 벽을 돌파한 것도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다. 선거를 거듭할수록 높아지는 시민의 성숙한 주권의식과 참여 열기가 발휘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선거는 끝났다. 남은 것은 준엄한 주권자의 뜻을 정치권이 겸허히 받아들이는 일뿐이다. 수구보수의 몰락은 한국 사회에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건강한 보수의 출현으로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진보와 보수 간 선의의 경쟁 속에 발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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