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그 사랑을 드러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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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폴리아모리 다룬 19금 웹툰 <독신으로 살겠다>의 선정성 작가

“‘사랑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을 사랑해도 된다’는 태도로 통념을 넓혀간다면”




‘19금 웹툰’ 하나를 두고 누리꾼들 사이에 설왕설래가 오가고 있다. 누군가는 19금이 아니라 ‘30금’이라고 한다. 서른 줄에 접어든 내공이 아니면 쉬 받아들이기 어려운 콘텐츠란 의미다. 그 이름도 ‘선정적인’ 작가 선정성의 네이버 웹툰 <독신으로 살겠다>는 35살 독신여성인 유희와 그녀의 6년차 애인 형민의 연애담을 그리고 있다. 여기까진 무난. 그들에겐 각자 애인이 있다. 여기부턴 파격.

그들의 사랑에 대해 이 무슨 막장이냐며 악플을 다는 독자도 있지만 섬세하게 그려낸 욕망과 현실에 탄복하는 독자도 있다. 지나치게 솔직해서 불편하지만, 그것이 매력인 웹툰. ‘문제적 작가’와 전화로 이야기를 나눴다. 선정성 작가는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없는 이들의 사랑 안에 사실은 진짜 사랑이 있을 수 있다는 역설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웹툰은 독자들에게 묻는다. “당신은 진짜 사랑을 하고 있습니까?”



‘사랑한다’, 어른만이 할 수 있는 사랑 방식


- 좀 생소한 소재인데, 어떻게 폴리아모리(Polyamory·다자간 사랑 또는 다자연애)를 웹툰으로 그리게 됐나요.

= 저의 지난 연애 경험과 이런저런 책에서 봤던 생각들이 맞닿았어요. 기질적으로 새로운 것에 끌리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런 소재를 선택하게 됐고.

네이버에 게재된 선정성 작가의 웹툰 〈독신으로 살겠다〉는 폴리아모리(다자간 사랑)를 본격적으로 다루며 인터넷상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선정성 제공

- 제가 취재를 하면서 현실에서 다자연애하는 분들을 만났는데, 다들 작가님 웹툰의 감정선이 자신들이 느끼는 것과 많이 비슷하고 디테일이 살아 있다고 하더라고요. 혹시, 경험 있으신가요.

= 정말요? 그러면 다행인데. (웃음) 다자연애를 직접 경험한 적은 없어요. 주위에도 많이 없고요.

-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감정선을 구체적으로 그릴 수 있나요.

= 제가 연애를 하면 매번 오래 만나는 편인데요. 연애를 오래 하다보면 처음의 열정이 자연스레 식잖아요. 이후엔 여러 갈등이 생겨나죠. 그때 느꼈던 감정을 분석하고 기억했다가 자연스레 녹여냈던 것 같아요.

- 그런 갈등들 끝에 다자연애에 대한 관심이 생겨났다고 보면 되나요.

= 지금 우리 사회에서 사랑에 대한 이야기와 모습들은 환상으로 가득 차 있어요. 내가 어떤 대상을 어떻게 사랑해야 되겠다, 이렇게 주체적으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 어떤 사람이 나를 사랑해줬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많이 하고 아주 멋진 사람이 나타나서 나를 무작정 사랑해줬으면 하는…. 부모님이 나를 무작정 사랑하는 것처럼 그런 사랑을 기대하고, 또 그런 환상을 가지고 있잖아요. 특히 여성들의 경우 가부장제 안에서 위치가 너무나 취약했기 때문에 사랑받는 데 천착했고, 압축성장을 겪으며 그 잔재와 문화가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서 현대의 나르시시즘과 뒤섞인 것 같아요. ‘사랑받는다’가 아닌 ‘사랑한다’라는 것은 강하고 성숙한 어른만이 할 수 있는 사랑 방식이죠. 다자연애는 그런 사랑에 대한

환상을 깨는 데서 시작되고요.

- 다자연애가 최근에 늘어났다고 볼 수 있을까요.

= 전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동안 계속 있었을 거예요. 다만 지금 같은 일부일처제 사회에서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아닐까요.

- 최근 드라마나 영화, 문학에서 다자연애가 자주 소재로 등장하는데 그건 어떤 의미일까요.

= 말씀드렸듯이, 사랑에 대한 환상을 걷어내고 진짜로 사랑이 뭔가 하는 질문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나가는 과정이 그런 결과물로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 웹툰에 달리는 댓글 중에 비판적인 댓글도 많더라고요.

= 아, 엄청나요. 단편적인 얘기만 보고 막장이라고 하시는 거죠. 오독이 되는 사례가 있는 것 같아요. 댓글 다는 분들의 성향이 있는데, 웹툰 올라오고 바로 댓글 다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데 보면, 시간이 지나고 올라오는 댓글들은 진지해요. 생각을 곰곰이 해보고 올리는 내용 같아요. 초반에 올라와서 쫙 추천받은 베스트 댓글 때문에 오독되는 사례가 굉장히 많죠. 겉으로 드러난 스토리보다도, 사랑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다면 더 재밌게 감상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나쁜 사랑이 진실한 것일지도


- 왜 그렇게 다자연애에 비판적인 의견이 많을까요.

= 기본적으로 욕망을 인정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겠고요. 거기에 대해 자기 마음이 불안한 거죠. 어떤 분들은 다자연애를 하는 사람이 많이 생겨나고, 그런 담론이 사회 전반에 퍼지면 자기의 안정이랄까 그런 부분이 위협받는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대부분 보수적인 분들이죠. 누군가의 행복추구권에 대해 우리가 관여할 권리는 없다고 봐요. 어떤 사람이 자기 삶을 선택하는데 거기에 대해 다른 사람이 가치 판단을 할 이유가 있나요. 사랑도 마찬가지죠.

- 사회적으로도 보면, 성적으로 보수적인 사람들이 의외로 뒤에선 바람피우고, 그런 경우 많잖아요.

= 맞아요. 역설적인 상황이죠. 겉으로는, 밖으로는 아닌 척하면서 욕망을 안으로 이상하게 분출하는 거죠. 인간의 욕망은 다 비슷한데, 자신은 아닌 척 욕망을 숨기고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고.

- 이런 사회에서 이 작품이 어떻게 읽히면 좋을까요.

= 작품의 주인공이 하고 있는 사랑들이 사실 불편한 건 맞거든요.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걸 드러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해요. 곪아 있는 것들을요. 우리 사회가 사랑에 대한 욕망을 억압하고 감시한다고 해야 하나. 사랑과 관련해서도 상당히 보수적이거든요.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욕망을 불편해하고 숨기는데 사실은 우리 모두에게 이런 욕망이 있지 않을까요. 작품에 등장하는 사랑들이 나쁜 사랑처럼 보이지만 그들이야말로 진실로 사랑하고 있을지 몰라, 이런 생각을 해보시면 좋겠어요. 너무 사랑을 하나로만 규정짓지 말고요.

- 질투, 소유 같은 기존의 일대일 연애관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과정이 평범한 사람에게 가능할까요. “다 형민이 정도 성인(聖人)이니까 하는 거지, 우리는 못한다”고들 하더라고요.

= 질투나 소유욕은 분명히 자기애와 깊은 관련이 있지, 상대방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감정은 아니라는 게 기본 전제예요.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하지 않은 상태, 상대방이 원하는 모든 것을 허용하겠다는 마음과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자신감을 내재화하지 않은 상태라면 늘 이 문제로 고통스러울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 형민은 인격적으로 성숙한 존재예요. 독립적이고, 주체적이고, 자기 불안을 다스리는 확고한 방식이 있죠. 제가 또 다른 관점에서 보고 싶은 건 ‘통념’이에요. 통념은 시대마다 변하고, 사람은 통념을 바탕으로 생각을 해요. 일부다처제로 살았던 윗세대는 일부다처제를 당연하게 받아들였거든요. ‘사랑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을 사랑해도 된다’는 태도로 통념을 넓혀간다면 큰 갈등 없이 다자연애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결국 사랑은 실패하는 거니까


-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작가 입장에서 볼 때, 다자연애를 잘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 어려운 질문인데요. 심지어 독자들도 본인들 관계에 대해 제게 연락을 해와요. 전반적으로 독자들은 “실패했다”는 이야길 많이 해요. 그런데 사랑이라는 게 결과적으로는 항상 실패로 돌아가는 거잖아요. 그런 부분은 어쩔 수 없을 것 같고요. 연애 기간에 한정지어 좀더 성공적인 다자연애에 대해 생각해본다면, 제가 듣기로는 동시에 같이 시작하는 관계가 감정적으로 초기 스파크(열정)가 오래간다고 하더라고요. 또 주체성이 강한 분들이어야 할 것 같고요.

- 본인은 어떤 사랑을 하고 싶어요.

= 연애를 하면서 어느 날 그런 생각을 했어요. 남녀관계가 끝나더라도 인간적으로 좋았던 사람이라면 인생의 친구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친구로 두고 싶은 사람이 되도록 저부터 많은 노력을 하려고요.

강예슬 인턴기자 milklef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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