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날아드는 해고 통지가 코로나보다 더 무섭다는 노동자들

2020.04.01 20:49 입력 2020.04.01 20:53 수정

코로나19 전담병원인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에서 지난달 계약직 노동자 50여명에게 ‘계약 만료’를 통보했다. 감염병 검체를 채취하는 임상병리사 10여명, 간호조무사 20여명, 조리원 21명에게 4월에 계약이 끝난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병원 측은 “노동법과 관행에 따라 한달 전 계약 만료를 알린 것”이라며 휴업 중인 조리원들에겐 월급 70%를 지급해왔다고 밝혔다. 자체 수입은 없고, 정부가 이달 중 주겠다고 한 ‘손실 보상’도 구체적인 공문은 받은 적 없다고 했다. 주름 깊어진 경영의 직격탄을 밑바닥 계약직들이 먼저 맞은 셈이다. 방호복 입고 땀 흘리던 그들이 받았을 허탈감, 비슷한 처지의 병원 비정규직들이 삭일 아픔이 작지 않을 터다. 그러지 않아도 의료진은 지금 지쳐가고 있다. 병원 측이 1일 노조와의 협상 끝에 재검토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정부는 코로나19 전담병원에 약속한 손실 보상을 서두르고, 병원은 고용 유지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민주노총이 1일 ‘코로나19 피해 상담 사례’를 공개하는 자리에서도 다급한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넘쳐났다. 항공 수하물을 분류하는 하청회사 노동자는 지난 보름 새 ‘급여 70%를 주는 6개월 유급휴직’→희망퇴직 신청→‘4월만 유급휴직, 5월부터 무기한 무급휴직과 정리해고’ 통지가 이어졌다고 했다. 대리운전 노동자는 “코로나19보다 생계 위협이 더 무섭다. 코로나 걸려서 자가격리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자가격리돼 생계지원을 받는 게 차라리 낫다고 서로 눈물나는 얘길 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하물 노동자는 정부 근로감독을 바랐고, 특수고용노동자는 법과 고용보험의 사각지대를 바꿔달라고 호소했다.

실물경제 한파에 후행하는 게 고용위기다. 코로나19가 번지는 미국에선 3월 둘째주 28만명이던 실업수당 신청자가 셋째주 328만명으로 12배 늘었다. 미국보다 해고 요건이 까다로운 한국도 2월 실직자는 29%나 급증했다. 4월 중에 발표될 3월 숫자는 전문가들도 얼마나 더 치솟을지 가늠키 어렵다고 한다. 한국에도 저생산-고실업-저소비의 경기침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휴업수당 상향, 4대 보험료 감면 식의 응급처방을 넘어 엄습해오는 해고 한파를 막는 데 선제적 대책과 재정을 집중할 때가 됐다.

미 동부 애팔래치아산맥 정상을 따라 755㎞의 ‘블루리지’ 산악도로가 놓여 있다. 환상적인 드라이브·관광 코스가 된 이 길은 1930년대 실직 노동자들이 닦았다. 대공황을 넘긴 뉴딜의 중심에 사람과 일자리가 있었던 것이다. 사람을 살리고 일자리를 지켜야 경기 회복도 빨라진다. 정부도 기업도 이 경험칙과 해법을 새기며 코로나19 역경을 넘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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