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출판사 엘스비어 지영석 회장 "출판사들, 치킨집 말고 스타벅스 꿈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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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5.12.11. 오전 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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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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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의 출판사라는 엘스비어(Elsevier)를 이끄는 지영석(54) 회장을 지난 8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나 한국 출판계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이 개최한 ‘테크플러스 2015’에서 강연한 직후 인터뷰에 응한 지 회장은 “책의 콘텐츠를 재가공하라” “합병을 통해 몸집을 키워라” 등을 주문했다.

엘스비어는 세계에서 생산되는 의·과학 논문의 25%가량을 출판하는 회사로 연매출이 3조원을 넘는다. 지 회장은 미국 국적 한국인으로 랜덤하우스 사장을 지냈고, 현재 국제출판협회(IPA) 회장이기도 하다.

-“책의 콘텐츠를 재가공해서 솔루션을 제공하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는 콘텐츠의 디지털화를 전제로 하나?

“디지털화가 안 돼 있으면 솔루션이 나올 수 없다. 디지털화된 콘텐츠들을 합치고 분석하고 관계를 맺어서 새로 만들어지는 게 솔루션이다.”

-디지털로 재가공한다는 게 무슨 뜻인가?

“우선 책을 다 뜯어야 한다. 챕터, 문장, 단어들을 다 뜯어서 전산화시키면 재구성의 기회가 생긴다. ‘김영삼 자서전’이라는 책이 있다고 치자. 책 내용을 전산화시킨 뒤, 김영삼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쓴 기사나 책, 영상들을 다 합쳐보면 거기서 자주 하는 말, 독특했던 말, 흥미로운 말 등이 다 추출된다. 그게 재가공된 콘텐츠라는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이 돌아가셨을 때, 재가공을 통해 김영삼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게 바로 출판사가 할 일이다.”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으려면 독자들이 지금 뭘 요구하는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출판사나 언론사에는 독자들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다.

“도로를 내줬으니까 그런 거다. 유통을 다 남한테 넘겨주지 않았나. 독자들이 뭘 원하는지 아는 출판인들이 얼마나 될까? 우리는 안다. 누가 우리 사이트에 들어와서 ‘기후변화, 동아시아, 물’ 이렇게 찍으면 그에 관계된 논문이 다 나온다. 우리는 그가 무슨 단어를 검색했고, 검색된 논문 중 몇 번째를 선택했으며, 그걸 읽느라 몇 초를 보냈고, 우리 사이트에서 어디로 나갔는지, 그 흔적을 다 안다.”

-그걸 아는 게 왜 중요한가?

“독자들의 궤적을 알고 분석해야 한다. 이 기사를 읽는 사람의 35%는 그 다음에 저 기사를 읽더라, 혹은 그냥 나가더라, 그런 정보가 있으면 다음 콘텐츠에 적용할 수 있다. 그리고 기사를 읽는 동안 다음에 읽을 기사를 추천할 수 있다.”

-콘텐츠 재가공이 돈이 되는가?

“물만 팔면 10원을 받지만, 물을 병에 넣어서 팔면 1000원을 받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로(raw) 콘텐츠만 가지고는 점점 더 돈을 벌기 어렵다. 출판사도 신문사도 앞으로 로 콘텐츠의 가격은 확 떨어질 것이라고 각오해야 한다. 잃어버린 돈은 로 콘텐츠를 재가공해서 다른 곳에서 팔아서 벌어 와야 한다. 전산화에서는 태깅(tagging·주제어 분류)이 중요한데, 태깅한 정보는 가격이 높다. 태깅을 해놓으면 다른 사람들이 그걸 가져다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전산화를 하려면 비용이 많이 들 것 같다.

“많이 든다. 정말 많이 든다. 작은 회사들은 그 코스트를 감당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디지털시대에 몸집이 없으면서 영향력이 있는 사업은 없다. 카카오택시, 쿠팡, 요즘 잘 나가는 기업들을 보라. 다 몸집이 크다. 기술에 들어가는 기본 액수가 워낙 크다 보니까 그걸 감당 못 하면 디지털화를 할 수가 없다.”

-디지털시대에도 자본이 관건이라니, 조금 낯설게 들린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지금은 돈이 없어도 아이디어만 좋으면 얼마든지 확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투자가 따라오게 돼 있다. 지금처럼 투자가 활발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지금 세상에서 돈줄이 없어서 뭘 못 한다는 건 다 거짓말이다. 아이디어가 없어서, 겁이 많아서 못 하는 것이다.”

-한국 출판사들은 덩치가 적은데.

“한국에서는 올해 매출 300억원을 넘는 단행본 출판사가 하나도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에서 출판이 이 정도라는 건 정말 창피한 일이다.”

-뭐가 문제일까?

“한국에서는 출판이 뜻있는 사람들이 책 몇 권 내서 베스트셀러가 되면 그걸로 한 5년 먹고 사는 것으로 돼 있다. 그건 치킨집이나 하는 짓이다. 스타벅스가 될 생각은 왜 안 하나? 출판사들이 돈을 벌면서도 투자를 안 하는 게 나는 정말 이상하다. 출판에 성공하면 왜 빌딩을 사나? 나 같으면 회사들을 인수해 덩치를 키우겠다.”

-출판사가 덩치를 키우려면 뭘 해야 되나?

“한국 출판에서 원로들은 민주화를 이뤄내신 분들이다. 대단히 중요한 일을 했고 존경스럽다. 그러나 이제는 물러나야 한다. 젊은이들, 콘텐츠를 사랑하면서 테크에 대한 무서움이 없는 사람들, 기술의 발전을 위협이 아니라 기회로 여기는 사람들이 대거 출판계에 들어와야 한다. 또 책의 영원함을 알면서 테크를 무서워하지 않고 경영을 잘 아는 전문경영인들이 출판사를 맡아서 사업을 만들어야 한다. 코스트를 없애고, 투자를 유치해 합병하고 커져야 한다. 유통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그러면 젊은 사람들이 삼성전자 안 가고 출판으로 온다. 왜냐고? 삼성전자보다 제품이 훨씬 더 재미가 있고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초의 주문형 출판사라는 벤처기업도 차려봤고,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정통 출판사인 랜덤하우스에서 사장도 했다. 지금은 세계 최대의 출판기업을 이끌고 있다. 여러 분야의 출판사에서 일하면서 모두 성공을 거둔 셈인데, 본인의 성공요인이 뭐라고 생각하나?

“결국 사람이다. 나는 직원들 때문에 성공했다. 좋은 사람들을 뽑고 키우고 그 다음에 가만히 뒀다. 그러니까 그들이 다 알아서 하더라. 나는 직원들에게 간섭을 안 했다. 잘 하는 사람들은 간섭하면 정말 싫어한다. 자신이 있는 사람들이니까 그렇다. 잘 하는 사람들을 모아놨는데 왜 잔소리를 하나? 유능한 사람 뽑아가지고 자신감을 주고 뒤에서 가만히 두고 보면 된다. 넘어져도 가만히 둔다. 도와달라고 먼저 말할 때까지 그대로 둔다. 필요하면 그들이 손을 든다.”

-출판사에서 오래 일했다. 베스트셀러가 될지 안 될지 아는 눈이 생기나?

“처음 20페이지 정도만 읽으면 금방 안다. 무엇보다 자기 보이스(voice)가 있어야 한다. 그게 없으면 사람들이 그 책을 왜 읽겠나. 요즘 사회는 집중력이 짧아서 동영상도 3분 넘으면 아무도 안 본다. 책도 처음 3분에 흥미를 못 주면 소용이 없다. 그게 소설이든 비소설이든 마찬가지다. 사람들을 유혹하기 위해서는 처음을 잘 설명해야 한다. 그걸 못 한다면 작가가 될 능력이 없는 사람이다. 처음에 맘을 뺏어올 수 없는 사람은 작가가 될 수 없다. 시작, 처음이 제일 중요하다.”

-처음의 역할이 예전보다도 더 중요해졌다는 것인가?

“그렇다. 그건 뉴스도 마찬가지다. 첫 패러그래프를 읽고 다 읽을지 말지 결정한다. 타이틀도 정말 중요하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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