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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고용유지에 쓸 돈 다른 데 쓰다 바닥날 판이라니

입력 : 
2020-05-28 00: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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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어려워졌을 때 직원을 줄이지 않고 휴직시킬 수 있게 돕는 고용유지지원금의 올해 예산 5000억원이 바닥날 형편이다. 지난 4월까지 751억원이 집행됐고, 5월 이후 7211억원이 추가로 들어가야 해서다. 정부는 고용유지 사업 차질을 막으려고 고용보험기금에서 만일에 대비해 쌓아두는 준비금 3000억원을 끌어다 쓰기로 했다고 한다. 전용할 돈은 법적으로 해당연도 기금 지출액과 같은 액수로 고용안정 계정에 적립해두는 여유자금인데 계획이 변경되면서 적립배율이 종전의 절반 아래로 떨어지게 됐다. 2018년까지만 해도 1.1배를 유지하던 준비금 적립배율은 코로나 직격탄을 맞기 전인 지난해에 이미 0.8배로 떨어졌고 올해 1차 추경 때 0.6배로 추락했는데, 곧 0.5배를 밑돌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서 당장 실업이 폭증하고 있으니 급한 대로 여윳돈을 전용하려는 당국의 고민을 이해 못할 바 아니다. 하지만 그동안 일자리를 지킨다며 고용보험기금을 펑펑 써댄 데 대한 반성 없이 여유분을 전용하는 행태는 멈춰야 한다. 고용보험기금을 쌈짓돈처럼 제멋대로 쓰다보니 지출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준비금 자체도 작년 말에 비해 1조원 가까이 줄었다. 실업급여가 급증한 이유도 있지만 실직을 막기 위해 고용안정·직업능력개발 계정에서 취지에 맞지 않는 곳으로 씀씀이가 컸던 탓이 크다. 대표적인 게 청년추가고용 장려금 사업으로 기금에 기여하지 않은 청년들에게 기금을 지출했다. 그외에 출산·육아휴직 급여 등도 모두 고용보험기금에서 쓰는데 이것 역시 적절치 않다. 청년고용 등에 필요한 돈은 일반회계에서 지출하는 게 맞는다.

끌어 쓰기 손쉽다고 고용보험기금에 손대는 것은 돈 낸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는 보험의 원칙에 어긋난다. 더욱이 앞으로 기금을 쓸 곳이 더 늘 텐데 지금처럼 원칙을 훼손해가며 막 쓰다가는 닥쳐올 위기에 대응할 실탄이 부족해질 터다. 정부는 민간고용을 활성화하는 게 궁극적인 일자리 대책이라는 걸 인식하고 고용보험기금이 그 마중물 역할에 충실하도록 운영을 개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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