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리투아니아 공연 중인, 놀애 박인혜와의 출국 전 만남 ① [인터뷰]

2013. 4. 21.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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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닷컴 MK패션 차평철 기자] 리투아니아 4개 도시 리사이틀을 앞둔 소리꾼 놀애 박인혜를 떠나기 하루 전날 지난 4월 16일에 만났다. 2011년 창작음악 놀애 박인혜 1집 '청춘은 봄이라'를 선보인 그는, 2011~2012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차세대 예술가에 선정됐다. 한편 올해 월간 객석에서 '차세대를 이끌 젊은 예술가 10인'에 선정됐을 만큼 국악계 안팎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한편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허스키해서, 마치 김해송이 작곡한 블루스곡을 멋지게 소화했던 가수 이난영과 통화하는 느낌이었다.

"제가 말할 때와 노래할 때 다른 것 같아요. 노래할 때 목소리가 더 얇거든요. 성대 결절이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우리 성대가 서로 부딪힐 때 목소리가 나오는데. 저는 약간 부어있어요. 그러면 중간마다 새면서 쉰 소리가 나는 거죠. 물론 소리하는 사람마다 달라요. 어떤 사람은 깨끗하기도 하고 또 훈련된 방식에 따라 다른 것 같고요. 월간객석에서는 10명의 예술가를 선정하셨는데 발레나 극작 등 다양한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그중에 국악인은 저와 신혁식이라는 아쟁연주자 2명이 있고요" 2012년 10월 20일 그가 리투아니아 아닉쉬체이에서 열린 국제연극축제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것은 많은 화제가 됐다. 바로 그 도시 출신의 대문호 안타나스 바라나우스카스의 장편 시 '아닉쉬체이의 숲'을 판소리로 각색해 무대에 올린 것이다. 생전 안타나스는 그런 예언을 했다고 한다. 언젠가 노래꾼 하나가 멀리서 찾아와서 내 시를 노래할 것이라는.

"1800년도에 쓰인 이 시는 리투아니아 사람이 다 알고 있어요. 중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배운대요. 시는 책 한 권 분량으로 엄청나요. 그런데 제가 리투아니아에 가보니 거의 다 숲이더라고요. 시는 숲과 사람이 서로 얼마나 아끼며 살았는가 하는 공존의 내용이에요. 첫머리는 지금 사람들한테 묻듯이 시작해요. 너희의 그 울창했던 숲은 어디 갔니. 아름다웠던 산기슭은 어디 갔니 하고요. 예전 유럽에 흑사병이 났었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먹을 게 없으니까. 사랑했던 숲의 나무를 베어 팔아서 살았는데. 이게 더 욕심을 내다보니 숲은 다 사라졌다는 이야기에요. 그래서 제가 공연할 때 판소리 아니리 같은 부분을 4줄 정도를 그 나라 말로 해요. 하지만 제 발음이 이상해도 다들 잘 알고 있는 시라 알아들으시더라고요" 그는 노래하다 보면 객석의 반응을 느낌으로 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공명하고 있는 것은, 눈빛이나 그 기운에서 체감한다는 것이다. 아닉쉬체이에서도 노래 중간에 그들이 이 공연을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사람들이 치는 손뼉 속에 그렇게 음악을 통해 서로 통하는 것을 확인한 그에게 리투아니아 국제 연극축제는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그들에게 익숙한 '아닉쉬체이의 숲'이 그의 손을 거쳐 새롭게 해석된 음악과 접근에 뜨거운 반응을 보인 것이다. 한편 여전히 젊은 세대에게 낯선 판소리에 대해 어려운 한자성어나 옛 표현을 바꾸는 작업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전통 판소리 사설을 현대화 하는 작업은 어떻게 보면 조금 의미가 없어요. 그 안에 함축된 것들이 너무 많거든요. 또 이미 심청가 춘향가 이야기는 모르는 사람이 없잖아요. 젊은 세대가 할 일은 이 시대가 공감할 수 있는 소리를 만드는 것으로 생각해요. 하지만 전통판소리는 3~400년의 역사를 가졌기에, 저도 음악을 만들면서 그 예술성을 따라가기 불가능하다고 느낄 정도예요. 그렇다면 우리 젊은 사람들은 어떤 장점을 활용해서 얼마나 깊이 있는 판소리를 만들어야 하는가 고민해야겠죠. 최근에 만들어진 창작 판소리들이 많은데, 나중을 보고 한다면 음악성과 예술성에 대해서 진중하게 다가서야죠" 12살 때부터 소리를 시작한 그에게 판소리는 여전히 어려운 파도 파도 끝이 없는 음악이라고 했다. 어쩔 땐 답답해 죽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따라서 우선 판소리를 창작하는 수가 많아져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제법 있지만, 여전히 비중을 볼 때 창작보다는 전통에 많이 치우쳐있다는 것. 전통판소리의 계승 발전과 함께 창작하는 이들이 많아져야 새롭고 좋은 판소리가 많이 나올 것이라는 생각을 밝혔다.

"이런 상황에는 교육도 문제가 있다고 봐요. 예술가라는 직업이 새로운 것을 만들고 창작하는 과정의 희열을 느낄 수 있는 장점이 있는 직업인데, 전통 음악인들 같은 경우는 도제식 교육을 받고 있죠. 물론 도제식 교육은 필요해요. 전통이 깊은 음악이다 보니 곧게 배우려면 다른 방식으로는 힘들죠. 반면에 세대가 변해가니까, 교육과정에서 얼마나 창의적인 예술가를 만들 것인가 하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는 거죠. 저도 돌이켜 보니 음악을 만드는 과정을 배웠던 기억은 별로 없더라고요. 제가 가끔 후배들에게 홍대 인디밴드들은 자신 있게 무대에서 이 곡을 만드는데 얼마가 걸렸다는 라는 말을 한다고. 그러니 우리도 역시 창작에 대해서 대담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해요" 2000년대 중반 무렵 한창 퓨전국악이 붐을 이뤘다. 밴드 세션에 전통 국악기만 섞여 외국곡을 연주해도, 퓨전국악이라는 고유명사가 쉽게 붙었다. 그렇게 국악에 대해 이해나 인식이 부족한 상황에서 '퓨전'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음악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하지만 간혹 이라도 전통 국악을 접했던 사람은 이들은 큰 기대를 걸었던 퓨전국악에 실망감을 표했다. 한편 그는 2007년부터 2011년까지 민요그룹 아리수의 보컬팀장으로 활동하며 2장의 앨범에 참여했다. 소통의 측면에서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민요 역시 직장 상사를 욕하거나 동료 흉을 보는 직장요가 등장해야 아닐까 싶었다.

"퓨전국악이라는 정형화된 이미지가 있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요즘 서울에서는 그런 팀들이 별로 없어요. 하지만 국악을 모티브로 창작하는 친구들을 보면 다양해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젊은 세대뿐 아니라 윗세대의 곡들도 그렇고요. 여전히 그런 이미지가 강한 건 한편으로는 좋은 음악을 들려줄 자리가 별로 없으니 사람들이 들을 기회가 적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제가 창작음악으로 활동했을 때, 국악한마당에 나갔었는데 게시판에 판소리를 저렇게 부르면 어떻게 하느냐는 글이 올라왔더라고요. 하지만 제가 만든 노래는 꼭 판소리도 아니었고, 저 역시 단지 전공자일 뿐인데 사람들이 전통에 대한 획일화된 시선이 있다고 느꼈어요. 전통과 늘 비교를 당하는데, 이건 저희의 몫이기도 하고요. 또 국악인들이 만드는 창작음악을 꼭 국악이라는 테두리에 가둘 때 일어나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자유로운 창작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작년 서바이벌 TOP밴드에 국악연주자가 태반이고 서양악기는 기타가 있는, 고래야라는 팀이 나갔거든요. 16강까지 올라가서 송창식의 왜 불러를 했는데, 그런 시도가 참 좋았고 앞으로 응원하고 싶어요" [매경닷컴 MK패션 차평철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 송선미 기자, 박인혜 제공]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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