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신용평가사 피치가 본지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가 재무 건전성을 지킨다는 약속을 못 지키면 신용등급 하락 위험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피치는 지난 2월엔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 46%'를 한국의 신용등급 강등의 기준으로 제시했었다. 그 위험선이 다가오고 있다는 경고다.

코로나 충격에서 회복되지 못한 상황에서 국가 신용도마저 떨어진다면 한국 경제엔 최악의 시나리오다. 환율과 국채 금리가 급등하고 외국 자금이 빠져나가면서 금융 불안과 실물경제 침체가 연쇄 반응하는 악순환의 덫에 빠질 수 있다. 2000년대 중반까지 '트리플 에이(AAA)'의 최우량 등급을 자랑하던 스페인의 국가 신용도가 9단계나 강등되는 데는 불과 5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한국도 지난 6개월 사이 나랏빚이 100조원이나 늘었다. 올 들어 한국의 재정 악화 속도는 그리스에 이어 OECD 33국 중 둘째로 빠르다.

그런데도 정부·여당은 '전시(戰時) 재정'을 내세우며 돈 쓸 궁리만 하고 있다. 정치권은 전 국민 재난지원금 추가 지급이며 전 국민 고용보험 같은 현금 살포 경쟁을 벌이고 있다. 연간 200조~300조원의 천문학적 재원이 필요한 기본소득은 이제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의 기본 메뉴처럼 돼버렸다. 지금 기류가 계속되면 여야가 서로 누가 더 많은 돈을 퍼주느냐의 포퓰리즘 경쟁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나라가 망하는 지름길이다.

이런 비극을 막는 유일한 방법은 국가부채·재정적자 비율을 일정 수준 이하로 관리하는 '재정준칙'을 법으로 강제하는 것뿐이다. OECD 회원국을 포함해 세계 89국이 헌법 등을 통해 재정준칙을 도입해 운용하고 있다. 웬만한 나라는 다 하는데 G20에 이어 G11이 될 기회를 얻은 한국이 재정준칙을 못할 이유가 없다. 대통령도 과거 야당 대표 때 '국가채무비율 40%' 재정준칙안에 찬성한 바 있다. 청와대와 여야가 마음만 먹으면 된다. 그런 다음에 복지정책 대결을 벌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