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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규정까지 바꿔 금융사 끼워맞추기식 제재한 금감원

입력 : 
2020-02-11 00: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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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이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를 판매한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우리은행장 겸임)을 겨냥해 '끼워 맞추기'식 제재를 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본지 취재에 따르면 당초 금감원은 우리은행 영업부문 겸 개인그룹 부문장(수석부행장)에게 "관리자로서 WM(자산관리) 그룹장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며 문책 경고(중징계)를 통보했다. 하지만 금감원 제재심의위는 지난달 30일 영업부문장을 돌연 '관리자'에서 '행위자'로 바꾸고, 손 회장을 실질적 관리자로 판단했다. CEO인 손 회장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 전례도 없는 '관리자의 관리자'까지 중징계한 것이다.

금감원이 제재 과정에서 '내부통제 기준 마련 의무' 위반을 적용한 것도 석연치 않다. 금융회사지배구조법 24조는 '금융사는 임직원이 준수할 기준과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고 돼 있을 뿐 제재규정이 없다. 더구나 내부통제 기준 미비에 대한 징계를 놓고 금융권에서조차 의견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금감원이 일방적 제재를 내린 것은 과잉조치로 비칠 수 있다. 금감원은 '내부통제가 실효성 있게 이뤄져야 한다'는 시행령을 들어 제재 근거가 충분하다고 하지만, 실효성의 범위가 애매해 설득력이 떨어진다. DLF 사태의 핵심이 투자자에게 위험성을 알리지 않고 판매(불완전판매)한 것인데, 금감원이 자본시장법을 적용하지 않는 것도 의문이다. 일각에선 자본시장법상 문책경고 등 중징계는 금융위가 결정한다는 점을 들어 "징계에서 금융위를 배제하려는 꼼수"라는 지적도 있다.

금감원이 소비자 보호에 나서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절차와 규정을 무시한 채 금융사들을 궁지로 내모는 것은 곤란하다. 키코(KIKO) 분쟁조정 및 금감원 부원장 인사에서 보듯, 금융위의 지휘·감독을 받는 금감원이 금융위보다 더 큰 권한을 휘두르는 지금의 행태는 정상으로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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